우리는 희망을 쏘아 올렸다

[창립46주년 특집 대담] 이근행 MBC 노조위원장·엄경철 KBS 새노조 위원장



   
 
  ▲ 이근행 MBC 노조위원장(왼쪽)과 엄경철 KBS 새노조위원장(오른쪽)이 최영묵 성공회대 교수의 사회로 8월5일 서울 중구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 앞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사진=민왕기 기자)  
 
이근행 MBC 노조위원장과 엄경철 KBS 새노조위원장. 두 사람은 지난 4월과 7월 각각 39일, 29일간 MBC와 KBS의 파업을 이끌었다. 두 방송사 노조가 내세웠던 파업의 기치는 공영방송 사수였다. 노조가 정치권력에 의한 언론장악 문제, 공정성 훼손 문제를 내세우는 것은 그만큼 이명박 정부 들어 공영방송 장악 시도가 노골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방증이다. 두 사람이 파업을 되돌아보는 대담을 가졌다. 대담은 8월5일 최영묵 성공회대 교수의 사회로 한국기자협회 회의실에서 이뤄졌다.


최영묵 교수(사회)=이명박 정부 이후 공영방송의 정치적 독립성과 공영성 훼손이 심각하게 진행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MBC 노조와 KBS 새노조가 파업을 했다. 파업에 돌입한 계기가 뭔지 얘기해 달라.



   
 
  ▲ 이근행 위원장  
 
이근행 MBC 노조위원장(이근행)=
정권 교체 이후 청와대는 MBC를 손보겠다는 의사를 여러 차례 표명했다. 지난해 8월 들어선 김우룡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 체제는 엄기영 사장에게 직간접적으로 퇴진을 요구했다. 버티던 엄 사장은 결국 퇴출되고 김재철 사장이 들어왔다. 처음엔 김 사장을 견제하면서 긴장관계를 유지하려고 했다. 그러나 김 사장이 황희만씨를 부사장에 임명하면서 합의를 파기하고, 그 과정에서 김우룡 이사장의 ‘신동아’ 인터뷰 파문이 터졌다. MBC를 장악하기 위해 막후에서 진행했던 음모들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그랬을 것이라고 추측했던 음모가 사실로 드러나자 완전히 다른 영역이 됐다. 파업을 결행한 결정적 요인이 됐다.

엄경철 KBS 새노조위원장(엄경철)=새노조 파업은 외통수였다. 노사협상 과정에서 회사는 안하무인이었다. 차수만 쌓아가며 하나마나한 협상을 반복했다. ‘이래도 파업 안해. 들어와라. 들어오면 잡겠다’는 계산이 깔려 있었다. 파업을 기다렸다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정연주 사장이 불법적으로 해임된 지난 2년 동안 KBS는 권력에 의해 접수됐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의 공간을 열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합법적으로 열 수 없는 상황이 왔고, 균열을 내기 위해서는 정상적인 방법으로 불가능했다. MBC가 지키고 싶어서 파업을 했다면 우리는 권력이 점령한 KBS에 균열을 내고 근거지를 만들어보자는 싸움이었다.

사회=김재철 MBC 사장이 노조와 약속을 일방 파기한 것이나, KBS가 새노조에 대해 무시전략을 벌인 것이나 공통적으로 ‘너희들이 하면 얼마나 하겠느냐’는 오만함이 깔려 있다. 파업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판단이 선다. 파업 과정을 간단히 말해 달라.

이근행=김재철 사장과 김인규 사장의 막후에 권력이 있다. 그래서 사측이나 사장이 움직이는 공간이 좁다. 두 사람은 권력의 힘에 얹혀 있는 존재에 불과하다. 시작할 때 예상보다 파업이 길어진 것은 그 때문이다. 김우룡 이사장이 말한 MBC에 대한 정권 차원의 장악 시도에 관해 조사하거나 황희만 부사장에 대한 인사를 철회하면 될 문제였기 때문에 1~2주면 파업이 끝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요지부동이었다. 2주가 지나면서 파업이 길어질 수 있겠구나 생각했다.



   
 
  ▲ 엄경철 위원장  
 
엄경철=
파업에 들어가기 전에 솔직하게 자신이 없었다. ‘파업을 할 수 있을까. 하면 얼마나 모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화를 돌려 파업 참가를 독려하면서도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런데 첫날 뚜껑을 열어보니 자신감이 생겼다. 파업을 하면서 기본적인 콘셉트를 ‘즐겁고 재미있게 파업하자’로 가지고 갔다. 웃으면서도 주장할 수 있고, 조합원들의 건강성을 유지할 수 있다. 그러다보니 파업을 접자는 얘기를 누구도 못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사회=MBC와 KBS 파업은 시민들에게 언론인들이 죽지 않았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엄혹한 세상에 공정방송을 위해 투쟁하고 있다는 이미지를 다시 살려준 것이다. 두 분이 생각하기에 이번 파업의 성과는 무엇인가.

이근행=10년차 이하 젊은 조합원들이 MBC 파업을 이끌었다. 파업이 1~2주 지나면서 젊은 조합원들은 왜 싸워야 하는지 자각했다. 스스로 파업 프로그램을 짜고, 싸움도 적극적으로 했다. 비대위가 파업을 끝내기로 했을 때 조합원의 30%인 2백~3백명에 이르는 조합원들이 비대위 결정에 격렬하게 항의했다. 김재철 사장 퇴진이라는 가시적 성과를 얻지 못했지만 젊은 조합원들이 언론노동자로서 각성하는 계기가 됐다. 이들은 방송현장에서, 또 다른 모멘텀에서 엄청난 힘을 발휘할 것이라고 본다.

엄경철=KBS 노조 역사상 처음으로 조합원 스스로 강력한 자발성을 만들어냈다. 집행부가 파업 프로그램의 개략적인 안을 잡아오면 자기 구역에 맞게 재미와 건강성, 의미를 담아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그런 것들은 되레 조합원 수의 증가로 나타났다. 8백50명으로 시작한 조합원 수는 파업이 끝날 때쯤 1천명을 넘어섰다. ‘새노조는 종이호랑이가 아니다. 건강하고 능력이 있는 조직이다’는 인식을 많은 구성원들에게 심어줬다.



   
 
  ▲ 최영묵 교수  
 
사회=파업의 성과만큼이나 아쉬웠던 점도 많을 것 같다. 이번 파업을 통해 더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없었나?


이근행=비상식적인 집단에 너무 신사적으로 대응했다는 후회가 있다. 김재철 사장은 자신의 정치적 미래를 위해 버텼다. 또 김 사장 배후에서 작동한 권력은 MBC를 수중에 틀어쥐겠다는 의지가 확고했다. 39일간 파업을 벌였지만 그들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죽기 살기로 싸웠어야 했다는 아쉬움이 있다.

엄경철=아쉽고 미안하게 생각된 지점이 하나 있다. 조합원들을 과소평가했다. 지난 2년 동안 억압당하고 봉쇄당한 구조에서 조합원들이 쌓이고 억눌린 것들이 많았다. 그런 것들이 이번 파업의 장에서 자생력을 가지면서 폭발했다. 그런데 집행부는 강한 확신을 갖지 못했다. 지금 복기해보면 더 잘할 수 있고,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근행=조합원들의 정서를 못 읽는다는 게 그런 것 같다. 지난 10년 동안 언론사 노조는 큰 싸움을 하지 않았다. 미디어법 파업이 있었지만 대개 평화로운 시기였다. 투쟁의 시기로 국면이 바뀌었지만 경험상 문제가 발생했다. 지난 10년간 조합에 이어져왔던 조직의 자산이 상실되거나 유지되지 못했다.

사회=MBC는 현장투쟁으로 전환했고, 새노조는 임단협에 들어갔다. 파업 이후 어떤 변화가 있고, 내부에서 어떻게 싸우고 있나.

이근행=파업을 접으면서 우리의 투쟁은 계속된다고 얘기했다. 핵심은 조합원들이 현장에서 어떻게 투쟁할 수 있느냐다. 파업이라는 정치투쟁도 필요하지만 언론 노동자는 프로그램이나 뉴스를 통해서 말을 해야 한다. 조합은 민주방송실천위원회를 통해서 공정방송 감시활동을 하고 있다. 뉴스 등이 보수화되지 않고 있는지 우려와 긴장감을 갖고 모니터하고 있다. 아직까지는 괜찮은 것 같다. 파업 투쟁의 여파다.

엄경철=파업을 겪으면서 조합원들이 많이 변했다. 냉소나 비아냥 속에 도사리고 있던 자기 검열의 덫에서 벗어나게 됐다. 현장에서 뭐든지 시도해보겠다는 마음가짐이 생겼다. 단협은 진행 중이다. 임시사무실이나 전임자 문제는 일정 정도 얘기가 됐다. 우리를 대하는 사측의 태도가 전과는 많이 달라졌다.

사회=공영방송의 문제는 무엇이고, 어떻게 가야 한다고 생각하나.

이근행=MBC는 방송문화진흥회라는 독특한 소유구조를 갖고 있다. 민주화의 성과물이라고 평가하는 분들도 있지만 냉정하게 보면 정권의 전리품이다. 정권이 방문진 이사를 선임하고, 그 이사들이 사장을 선출하는 구조에서 노조의 투쟁은 반복적으로 일어날 수밖에 없다. 방문진 이사진 구성, 사장 선임 절차를 제도적으로 정비해야 한다.

엄경철=2008년 8월8일 KBS에 경찰이 난입했을 때 내부 저항 정도는 약했다. 5천명이 넘는 조직에서 기껏 7백~8백명이 참여했다. 새노조가 할 일은 KBS 구성원들에게 지켜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 각인시키는 일이다. 그리고 각성된 의식으로 한국사회를 성찰하고 고민하는 프로그램을 많이 만들어야 한다.

사회=언론의 가치를 지키는 파수꾼 역할을 하는 공영방송 노조의 책임자로서 각오를 말해 달라.

이근행=스스로 경계하거나 자기를 보는 거울이 없으면 금방 무너진다. 그런 측면에서 MBC 노조와 KBS 새노조는 협력적 동반자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한국사회에서 언론의 문제는 민주주의의 문제다. 양 방송사 노조가 파업을 거쳤지만 우리 힘만으론 부족하다. 학계, 시민사회, 정치권이 언론 문제에 관심과 노력을 기울였으면 한다.

엄경철=파업이 끝난 다음에 그런 말을 했다. ‘우리가 제 역할을 하고 있는지. 제자리에 있는지, 우리를 통하면 시청자나 국민들이 한국사회를 제대로 볼 수 있는지’를 되묻는 연습이 필요하지 않으냐. 민주주의, 여론 다양성, 약자나 소수자에 대한 배려, 강자에 대한 견제 등 여러 가치가 그 질문에 포함돼 있고 스스로에게 질문하면 답이 나온다. 그 답을 향해서 갈 것이다.

정리=김성후 기자 [email protected] 김성후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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