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조현오 '막말' 특종 속사정

'추적60분'은 안되고, 뉴스는 되고?

KBS가 단독보도한 조현오 경찰청장 내정자의 ‘막말’ 발언이 파문을 낳고 있는 가운데, 문제의 동영상을 처음 입수한 ‘추적60분’ 제작진이 취재에 착수했으나 담당 국장이 거부해 제작이 무산된 뒤 우여곡절 끝에 ‘뉴스9’가 보도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일고 있다.

23일 ‘추적60분’ 제작진에 따르면 6월 말 익명의 제보자를 통해 조 서울 경찰청장의 동영상을 입수한 ‘추적 60분’은 조 서울청장의 경찰청장 내정 사실이 알려진 지난 8일부터 발언 내용을 확인하는 취재에 들어갔다.

취재를 통해 노무현 전 대통령 차명계좌 보유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단한 제작진은 전체 팀원 회의를 통해 오는 18일 방송 예정으로 아이템을 추진하기로 결정하고 13일 이화섭 보도제작국장에게 보고했다.

하지만 이 국장은 “실제 차명계좌가 있는지 여부를 밝히지 않으면 방송하기 부적합하다. 천안함 유족 비하 발언도 아이템 가치가 없다”며 “추적60분이 보도할 내용이 아니라고 판단한다”고 말했다.

이에 제작진은 “여러 채널로 취재한 결과, 차명계좌 존재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보이며 청문회 이후에 동영상을 공개한다면 시의성이 떨어진다”고 주장했고, 이 국장은 “차명계좌가 있다는 이야기도 소문으로 들었다며 계속해서 아이템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

이 국장은 이 과정에서 보도국 사회팀에 동영상 존재 사실을 통보했다. 이 국장은 ‘추적60분’ 제작진의 동의를 구하거나 동영상을 맨 처음 입수한 기자에게 의견도 묻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국장의 보고로 동영상 존재 여부를 이날 처음 인지한 사회팀은 당일 취재에 들어가 저녁 6~7시경 문제의 영상파일을 외부에서 입수했다. 이후 ‘뉴스9’는 조 내정자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살 이유를 차명계좌 때문이라고 언급해 논란이 일고 있다고 보도했다.

KBS 한 기자는 “특종성 보도를 제작하지 못하게 하면서 제작진과 상의도 없이 보도국에 관련 사실을 알린 것도 문제고, 추적60분이 입수한 동영상을 활용하지 않고 보도국이 다른 경로로 동영상을 구해 보도한 것도 전례가 없다”고 말했다.

‘추적60분’ 제작진은 이 보도로 ‘추적60분’의 특종은 날아갔고 제작진의 자율성 침해와 함께 프로그램 경쟁력에도 심대한 영향을 끼쳤다고 반발했다.

제작진은 “소속 국장에 의해 아이템이 엎어지는 KBS 사상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며 “추적60분이 조현오 동영상을 공개하기 적합하지 않는다는 논리는 추적60분을 비롯한 탐사취재 프로그램에 대한 무지와 편향된 의식이 반영됐다”고 밝혔다.

‘추적60분’ 기자와 PD들은 23일 성명을 내고 보도위원회 소집을 통한 실체 파악과 이화섭 국장에 대한 문책을 요구했다. KBS 기자협회는 조만간 보도위원회 소집을 요구할 계획이다.

이에 대해 KBS 시사제작국은 “통상적인 사전 협의를 거쳤을 뿐 제작진의 자율성을 침해한 것이 아니다”고 밝혔다.

시사제작국은 이날 자료를 내어 “조현오 내정자의 ‘발언의 적절성’만으로 방송을 하는 것은 ‘추적60분’의 통상적 취재나 제작방식에 비춰 대단히 이례적이니 ‘노 전 대통령 차명계좌, 있었나 없었나’로 심층취재를 하는 방향으로 의견이 모아졌다”며 “또한 신속성을 살리기 위해 보도국 사회부에 검토를 의뢰하기로 했고, 당시 조 내정자의 영상파일을 입수해 리포트를 준비하던 사회부가 리포트를 하는 것으로 결정됐다”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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