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제방송화' 견제세력 부상

KBS 새 노조 29일간 파업 의미와 전망

노조 외연 확대하고 공방위 설치 확약 성과
집행부 징계수위·단협안 따라 충돌할 수도


파업을 중단하고 업무에 복귀한 지난달 30일 KBS 새 노조의 엄경철 위원장은 “파업 이후 조합원들의 표정에서 당당함이 묻어난다”며 “되돌아간 방송 현장에서 KBS의 변화를 일으킬 것”이라고 말했다. ‘단체협약 쟁취’와 ‘공영방송 사수’를 걸고 지난달 1일 파업에 들어간 새 노조가 29일 만에 KBS 사측과 공정방송위원회 설치, 사회적 합의를 통한 수신료 현실화 실현에 합의하며 파업을 접었다.

“무능 김인규 패러다임 퍼져”
새 노조는 이번 파업으로 출범 7개월 만에 노조의 기틀을 다지고 사측을 견제할 힘을 갖게 됐다. 또 파업기간 조합원 수가 1천명을 돌파하면서 새 노조의 외연을 확대하는 성과도 거뒀다. 엄 위원장은 “지난 2년간 신뢰도·공정성 추락을 겪으며 자괴감에 시달려 온 조합원들이 ‘정권홍보 방송화’를 견제할 세력으로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노사는 3일부터 이내규 부위원장과 김영해 부사장을 양쪽 대표로 교섭을 시작했다. 새 노조는 늦어도 9월 중엔 단협을 마무리 짓고 10월 초에 첫 공방위를 열 계획이다.

반면에 김인규 KBS 사장의 리더십은 크게 훼손됐다. 김 사장은 새 노조 파업, 블랙리스트 논란, 수신료 인상에 대한 국민적 저항 등으로 KBS가 총체적 위기에 내몰렸지만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못하면서 그의 능력에 의문부호가 붙었다. 새 노조 관계자는 “이번 파업으로 ‘무능 김인규 패러다임’, ‘허당 김인규 패러다임’이 사내에 광범위하게 퍼졌다”고 말했다. 또한 파업기간 새 노조와 사측의 물밑접촉을 방해하면서 실체를 드러낸 사내 강경세력은 입지가 좁아지게 됐다.

하지만 KBS 사측이 김윤지 아나운서 등 파업 참가자 3명을 방송에서 배제하고 노조 집행부에 대한 징계를 예고하는 등 새 노조에 무기력하게 끌려가지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김인규 사장은 지난달 30일 낸 담화문에서 “여러 차례 경고한대로 파업에 참가한 조합원들에게 필요한 조처를 취할 것을 분명히 밝힌다”고 강조했다. 노사 합의로 중단됐던 파업은 단협이 지지부진하고 집행부에 대한 고강도 징계가 나올 경우 재개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KBS 내부 기류도 심상치 않다. 5일로 예정됐던 KBS 기자들과 보도본부 수뇌부 간 ‘무한토론’이 무기한 연기됐다. 보도본부 내 소통 강화를 위해 열릴 예정이던 토론은 보도본부 수뇌부들이 파업에 참가했던 기자와 아나운서를 방송에서 하차시키는 데 관여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사실상 무산됐다. KBS 한 기자는 “진행자를 하차시킨 프로그램 모두 보도본부 소속이고, 그 과정에 보도본부장과 보도국장 등 수뇌부들이 개입됐다”며 “이런 환경에서 무슨 생산적인 대화가 되겠느냐”고 말했다.

파업 중단으로 수신료 인상 탄력
새 노조의 파업 중단으로 KBS 수신료 인상 추진은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새 노조는 사회적 합의를 전제로 수신료 현실화를 위해 공동 노력하겠다고 합의했다. 이에 따라 사측은 파업으로 인한 혼란을 접고 수신료 인상에 전 사(社)적으로 집중할 수 있게 됐다. KBS 이사회도 최근 연내 정기국회 처리를 목표로 인상안을 심의·의결하기로 합의했다. 이사회는 여론 수렴을 위해 10일 광주를 시작으로 대구(17일), 대전(18일), 서울(24일) 등에서 공청회를 개최한다.

KBS 이사회 대변인 고영신 이사는 “연내 국회 처리를 위해선 9월 중순까지는 방통위로 인상안을 넘겨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며 “지역 순회 공청회가 끝나면 여야가 인상안에 대한 적정선을 제시한 뒤 압축하는 작업을 거쳐야 한다. 이 과정에서 KBS는 공영성 강화를 약속하고 담보할 수 있는 청사진을 내야 한다”고 말했다. 변수는 인상폭이다. 국민 여론 등을 감안할 때 이사회 논의 과정에서 인상안이 조정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KBS 사측은 인상안으로 1안(광고 폐지+6천5백원 인상)과 2안(광고 20% 유지+4천6백원 인상)을 제시한 상태다. 한 여당 이사는 “원칙적으로 KBS가 제시한 두 가지 인상안을 선택하지 않고 수정안을 의결해도 된다”며 “여당 이사들이 인상 액수에 대해 공식 의견을 나눈 적이 없지만 야당 이사들도 생각이 다른 만큼 조정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KBS 이사회가 수신료 인상 시한을 연내로 정한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금 KBS는 국민들에게 수신료 인상을 요구할 자격이 없는 만큼 KBS 정상화가 먼저라는 것이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은 논평을 내어 “수신료 인상 논의는 KBS가 공영방송으로서 정상화된 이후에나 가능하다”고 밝혔다. 방송독립포럼도 “수신료 논의에 앞서 방송 장악과 정권홍보 편파방송에 대한 사과, 책임자 퇴진, 제작 자율성의 제도적 보장 등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성후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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