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력' 있다던 김인규 사장 사면초가

수신료 인상 난항·파업 견고·블랙리스트 일파만파
"충성파만 득세"…'일방독주 리더십' 구성원 등돌려


   
 
  ▲ 김인규 KBS 사장이 새 노조 파업을 통해 구성원의 응축된 불만이 터져 나오면서 어려운 지경에 처했다. 지난 1일 열린 7월 직원 조회에서 김 사장이 조회사를 하고 있다. (KBS 제공)  
 
지난해 11월 김인규씨가 KBS 사장에 공모했을 때 KBS 안팎에서는 “김인규 후보가 능력은 있다”는 말이 돌았다. 이명박 대통령 대선캠프 경력을 세탁하기 위해 만든 말이든, 그렇지 않든 이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구성원들이 적잖았다. 그도 의식했던지 사장 취임사에서 “사장 선임 과정에서 많은 사원들이 ‘김인규 능력 있고 좋은데 대선캠프에서 몸 담았던 점이 마음에 걸린다’는 생각을 했던 것을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가 강조한 ‘능력’이 취임 8개월 만에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호방한 캐릭터에 보스 기질의 카리스마는 조직규모가 상대적으로 작았던 본부장이나 국장 시절에 어울리는 말인지도 모른다. 4천5백명이 복잡다단하게 움직이는 KBS라는 냉엄한 벽에 그의 호방함도 더 이상 통하지 않는 것 같다. 새 노조 파업, 블랙리스트 논란, 수신료 인상 제동 등이 터져나오고 있지만 방향감각을 상실한 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빠졌다.

월드컵 중계 실패로 체면 구겨
남아공월드컵 중계권 협상 실패는 그의 능력이 과대 포장됐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서막에 불과했다. 대통령과 친분을 갖고 있는 그라면 월드컵 중계 정도는 따낼 줄 알았다. 뉴스를 통한 대대적 여론몰이, 그가 자랑한 마당발 인맥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월드컵 중계권 실패로 체면을 구긴 김 사장은 조직개편에 이어 수신료 인상 카드를 던졌다. 하지만 구성원들의 동의를 구하지 않고 일방 추진해 불신을 자초했다.

26억원이라는 거액을 들인 컨설팅 결과를 토대로 한 조직개편은 구성원들을 납득시키지 못했다. ‘기자와 PD 직종을 통합해야 한다’는 신념을 맹신한 그는 일선 현장의 목소리를 무시하며 ‘추적 60분’을 보도본부로 옮겼다. 방송인 김미화씨가 언급한 ‘블랙리스트’ 의혹도 감정적인 대응으로 사건을 키웠다. 시사평론가 진중권씨 등이 김씨를 옹호하고 정재승 카이스트 교수가 이를 뒷받침하는 발언을 하면서 ‘블랙리스트’ 의혹은 KBS의 공정성 논란으로 확산됐다. 명예훼손 혐의로 김씨를 형사고소한 것이 화근이었다.   

‘일방독주 리더십’은 KBS의 최대 숙원이라는 수신료 인상도 어렵게 하고 있다. 구성원조차 반대하는 KBS 2TV 광고를 폐지한 6천4백원안을 1순위로 제시하면서 ‘조·중·동 종편 지원용’ 수신료 인상이라는 프레임이 만들어졌다. MB 홍보방송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는 마당에 종편 프레임까지 가세하면서 수신료 인상은 더 어려워지고 있다. KBS 한 관계자는 “이만하면 인상을 요구할 수 있겠구나 하는 내부 공감대가 있어야 하는데 지금은 아니다. 국민들은 훨씬 냉정하다는 걸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신뢰 잃은 김 사장 중대 기로
김 사장은 상당수 내부 구성원들에게 신뢰를 잃었다. 김 사장에게 신뢰의 신호를 보내고 있는 구성원들은 보직간부들이나 간부 자리를 노리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KBS 새 노조가 파업에 들어가자 본부장·국장·부장급 등 다수 간부들은 사내 게시판에 파업 중단을 호소하는 글을 경쟁적으로 올렸다. 김 사장에 대한 ‘눈도장 찍기’라는 말들이 나왔다. 한 기자는 “김 사장이 강경, 충성파들에 포위돼 판단을 못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 사장은 취임 초 “KBS 조직이 어느 계파 사람, 어느 사장의 인물로 서로를 나누면서 파편화됐다”며 탕평인사를 강조했다. 하지만 그의 KBS 입성에 공을 세운 측근들을 주요 보직에 등용하고, 함량 미달의 인사를 핵심 요직에 배치하면서 탕평책은 허언으로 끝났다. KBS 내부에서 “사장 주변이 예스맨들로 채워지면서 ‘직언’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없다”는 분석이 나오는 까닭이다. 이런 예스맨들의 충성 경쟁은 새 노조를 인정하지 않는 쪽으로 정책 결정을 내리면서 사실상 새 노조 파업을 촉발시킨 측면이 있다. 전적인 책임은 그런 인사들을 곁에 둔 김 사장이 자초했다.

김 사장은 이명박 대통령 대선특보 출신이라는 태생적 한계를 가지고 있다. 그 원죄로 인해 ‘시청자가 주인이 되는 공영방송’을 만들겠다는 그의 진정성은 의심받고 있다. 최근 8개월간 내부 소통과 통합에 실패하고, 외부의 입김에 무기력한 모습을 보였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새 노조 파업으로 내부 불만이 터져 나오면서 최대 위기에 빠진 김 사장이 26개월 후 ‘KBS맨’으로 남을지, 아니면 초라하게 퇴진할지 갈림길에 서 있다. 김성후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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