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판결문 보도 엠바고 파기 잦다

대부분 타 부처 기자, 업체 보도자료 등 다른 경로 통해 입수

“국민 알권리 위해 검토후 보도”…“편의주의적 발상” 비판도

언론사들이 최근 대법원 판결문 엠바고(Embargo·일정 시점까지 보도 자제)를 파기하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대법원 출입기자들이 아닌, 다른 부처 출입기자들에 의해서다. 이 때문에 대법원 판결문 엠바고 문제에 대해 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A신문사 인터넷팀 한 기자는 지난달 중순 ‘아파트 재건축 의결 정족수 기준’과 관련한 기사를 온라인을 통해 보도했다. 대법원 출입기자들이 2~3일 뒤 석간용으로 처리하려던 기사였다. 그는 부동산 담당 기자로 업체의 보도자료 등을 참조해 기사를 썼다.

이보다 앞선 한 달 전에는 인터넷신문 B사가 엠바고를 깼다. 역시 대법원 출입기자가 아닌 타 부처 기자에 의해서였다.

기자단은 B사의 엠바고 파기 직후 제재 조항을 만들었다. 타 부처 기자에 의해 엠바고가 깨진 경우 해당 법조팀을 ‘대검 기자실 1주일 출입정지’ 조치키로 했다. 이후 각 언론사 사내 게시판에는 법조 관련 기사를 쓰기 전, 법조팀에 문의해 달라는 공지들이 속속 올라왔다.

대법원 출입기자는 30명 정도다. 이들 대부분은 대법원 판결문 엠바고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매달 둘째 주와 넷째 주 대법원 선고가 있는데 수백 건에 달하는 판결문을 일일이 살펴볼 수 없을뿐더러, 한꺼번에 보도하면 중요한 기사가 자칫 묻혀버릴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이다.

대법원 출입기자들은 대법원 선고가 내려지면 판결문 책자를 조를 나눠 살펴본다. 중요한 기사를 선택해 대법원 출입기자단 간사에게 전달하며 이들 중 다시 선별 작업을 거쳐 엠바고를 정한다. 매일같이 일정 분량의 법원 판결 기사가 나오는 것은 기자들이 정한 엠바고 시점이 각기 다르기 때문이다. 다만 출입기자들이 중요하지 않다고 봤거나, 기자 개인이 관심을 두고 있던 사안이 대법원 선고 15일 이후에도 보도되지 않았을 시에는 ‘단독’ 형태로 보도해도 엠바고 파기로 보지 않는다.

대법원 측에서도 기자단이 택한 사건들에 대해 1심과 2심 판결문 내용을 기자 이메일로 전송해준다. 전체 사건의 흐름과 내용을 알게 되는 셈이다.

기자들은 엠바고가 걸려 있지 않으면 중요한 사건이 한꺼번에 쏟아지는 경우 신문은 지면의 한계로, 방송은 시간의 제약으로 다 담아내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한다. 또한 사건을 충분히 파악하지 못한 채 대법원 판결문에 의존해 보도하는 경향이 두드러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다. 선고가 나오면 해당 당사자(개인, 기관, 기업)가 보도 자료를 내거나 입소문을 낸다. 이러한 경로를 통해 다른 부처 기자들이 판결문 내용을 알게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의학전문지나 법전문지, 부동산전문지 등 해당 분야 전문지에서 판결문을 입수해 보도하는 경우도 있다. 대검 기자단에 가입돼 있지 않은 인터넷신문들이 먼저 기사화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이렇다 보니 대검 기자들이 먼저 알아놓고도 뒤늦게 써서 이른바 ‘물을 먹는’ 사례가 생기기도 한다.

C방송사 기자는 “1·2심 때부터 관심을 두고 있던 사건이 대법원 판결이 내려져 보도자료 등을 참고해 기사화했다. 그러나 같은 회사 대법원 출입기자가 엠바고가 걸려 있어 쓰면 안 된다고 해 결국 방송되지 못했다”며 “많은 이들이 이미 판결이 난 사실을 알고 있는데 보도를 며칠 뒤에 하는 것은 너무 편의주의적 발상이 아닌가”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대검 기자단 김남일 간사(한겨레신문)는 “판결의 중요한 법리적 해석, 판례,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사건을 찾아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 엠바고를 두는 것”이라고 말했다.

서강대 임지봉 교수(법학)는 “균형 잡힌 알권리 보장 측면에서 엠바고를 기자들 스스로 내걸었다면 가급적 깨지 않는 게 바람직하다”며 “대법원도 일정 절차에 따라 공개를 원칙으로 하고 있는 만큼 시대에 맞게 수정할 필요는 있다”고 말했다. 곽선미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배너

많이 읽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