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케이션 기술의 발전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각종 뉴미디어들로 기존의 미디어 세계는 질적인 변화를 겪고 있다. 가장 오래된 매체인 종이에 근거한 신문은 물론, 20세기의 가장 탁월한 발명품의 하나인 라디오나 텔레비전과 같은 전파매체에 이르기까지 모든 대중매체들은 존재방식의 변화를 요구받고 있다. 미디어 역사를 볼 때 새로운 매체가 결코 기존 매체를 없애지는 못할 것으로 보이나 여기에는 ‘변화에 적응할 것’이라는 전제가 붙는다.
변화의 진원지는 디지털기술이다. 미디어기술의 변천사를 다룬 <미디어의 변형>의 저자인 미국의 미디어 비평가 로저 피들러는 “0과 1의 조합으로 모든 정보를 처리하는 디지털은 아주 적은 양의 데이터로 정보의 처리, 저장, 표현, 전송을 가능케 한다”고 분석했다. 또 “정보를 재생시킬 때 정보가 갖고 있는 원래의 질(Ouality)에 거의 손실을 주지 않으며 이런 정보를 재가공할 때도 원래 정보의 형태를 정확하게 되살린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디지털은 현실에서 방송과 통신영역으로 나뉘어 각종 미디어들을 하나로 융합(Convergence)하는 위력을 발휘한다. 이 융합은 기술의 융합, 산업의 융합, 서비스와 시장의 융합 등으로 나타난다. 이중 최종단계인 서비스와 시장의 융합은 미디어와 수용자의 관계를 재정립시킨다. 지난해 EU가 내놓은 디지털 녹서(green paper)에 의하면, 미디어 서비스와 시장의 융합에 따라 방송사업자는 데이터방송, 인터넷방송, 통신 등의 서비스를 할 수 있게 되고, 통신사업자는 비디오 온디맨드와 같은 동화상정보 제공과 케이블 텔레비전사업을 할 수 있게 된다. 또 인터넷 정보공급자는 동화상정보 제공사업과 전화사업을 할 수 있게 된다.
디지털기술은 특히 뉴스분야에서 커다란 변화를 불러오고 있다. 디지털시대의 뉴스연구에 주목할만한 성과를 보이는 곳은 미국 방송뉴스책임자들의 모임인 RTNDF. RTNDF는 5년 전부터 기술발전에 따른 뉴스의 변화에 대비하기 위해 ‘다음 세기의 뉴스(NNC)’ 프로젝트를 추진해왔다. RTNDF는 최근 이 프로젝트의 한 결과를 다채널 다매체의 사이버공간을 통한 양방향기술이 보여줄 차세대뉴스의 시나리오를 내놓았다.
이에 의하면 우선 디지털화로 추가채널을 얻게될 기존 방송사들은 너나 할 것 없이 24시간 뉴스채널을 만들 것으로 보인다. 수용자들을 세분화해 그에 맞는 뉴스를 차별적으로공급하고제2외국어 뉴스를 늘리게 된다. 또 폭증하는 뉴스를 컴퓨터에 저장해놓고 수용자의 바쁜 일정에 맞추어 필요한 시간에 공급하는 ‘시분할 뉴스’도 등장할 전망이다. 한마디로 뉴스의 선택폭을 넓히되 뉴스를 가공할 수 있는 미디어의 재량폭을 확대하는 것이다.
뉴스의 질적 변화를 더욱 강화시키는 것은 미디어의 양방향성이다. 양방향성은 아날로그에서도 초보적으로 가능했지만 디지털기술로 인해 더욱 발전하고 있다. 미국의 미디어 컨설턴트인 피터 졸만은 “양방향 미디어는 뉴스의 정의부터 수용자의 뉴스소비행태, 뉴스생산과 유통과정, 광고나 판매 등 뉴스산업 전반에 걸쳐 변화를 가져온다”고 지적했다. 그는 “과거의 뉴스는 ‘사회공동의 관심사와 관련된 최근의 정보’라고 정의한다면 양방향시대의 뉴스는 공동의 관심사가 아닌 개별적인 관심사에 초점을 맞추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즉 “뉴스산업은 기술발전에 민감하게 대응하면서 이를 이윤지향적으로 몰아가 개별뉴스마다 비용을 지불하게 만들 것”이라는 것이다. 이에 따라 기존의 언론사 외에 다양한 개별뉴스 조직이 양산되어 뉴스의 내용과 형태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뉴스가 이렇게 변한다면 당연히 뉴스의 생산자인 기자도 변할 수밖에 없다. 미디어 칼럼니스트인 칼 스텝은 “앞으로 기자는 기사는 물론 사진, 음향, 비디오 등 인쇄매체부터 전파매체는 물론 사이버저널리즘까지 뉴스와 관련된 모든 기술에 익숙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강조했다. 하나의 정보가 다양한 매체를 통해 재가공되어 공급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가넷그룹의 인력충원 담당자인 메이 케이 블레이크는 이런 맥락에서 “기자를 뽑을때 컴퓨터 마인드가 확실하고 이를 토대로 모든 매체에 적합한 기사를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최우선시한다”고 밝혔다.
뉴스제작의 다변화는 이미 현실로 등장하고 있다. 종이신문뿐 아니라 인터넷을 통한 사이버신문을 비롯해, CD-롬, 사이버 매거진, 팩스신문, 나아가 E메일 개인신문 등에 대한 투자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전세계 350여개 신문과 방송의 뉴스를 수용자가 원하는 주제에 따라 제공하는 ‘전자신문 가판대’를 비롯해 ‘포인트케스트’ ‘인퀴지스트’ ‘C네트’ 등이 그런 예. 이밖에 인터넷정보를 자동적으로 개인의 PC로 송출하는 ‘푸시기술’을 이용해 로이터통신, CNN, 뉴욕타임즈 등은 뉴스,주가정보등을 40개 이상의 채널로 제공하고 있다. 아사히신문, 마이니치신문 등 일본언론들도 기사데이터베이스에 접근할 수 있는 유료인터넷 서비스를 실시하고 있다.
이처럼 디지털기술은 미디어의 뉴스정보제공 고도화를 이룩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지만 정보의 개인화와 사유화를 불러온다는 부정적인 면도 갖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영국의 미디어학자 빈센트 모스코는 디지털혁명을 ‘페이-퍼(Pay-per) 혁명’이라고 칭했다. 필요한 정보를 돈만 주면 구할 수 있는 동시에 반대로 돈이 없으면 정보도 없는 정보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저널리즘학자들은 바로 이같은 뉴미디어의 사유화, 개인화 현상에 근거해서 사회통합을 지향하는 기존 저널리즘의 기능이 디지털시대에 더욱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사회통합이라는 고전적인 언론의 기능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의 하나는 ‘공공저널리즘(Civic Journalism 또는 Public Journalism)’이다. 현재 미국에서는 미디어의 지나친 상업적 경쟁 때문에 경쟁지가 존재하는 도시가 2% 미만으로 떨어질 정도로 언론의 다양성이 위기에 처해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런 가운데 주목을 받고 있는 공공저널리즘은 철저한 여론수렴의 기반 위에 사회 전체의 나아갈 길을 제시함으로써 언론의 정기능을 강화할 수 있는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허버트 갠스, 마이클 슈더슨과 같은 비판적 언론학자들이 주장해온 공공저널리즘은 일반시민들이 언론의 의제설정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골자다. 때문에 공공저널리즘은 지역에 밀착하는 지역언론사들이 심층취재를 공동으로 추진하는 형태를 대부분 띠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위스콘신주 메디시의 언론사들이 시도했던 ‘우리는 위스콘신 사람들’이라는 프로젝트. ‘위스콘신 스테이트 저널’을 비롯한 주내 5개 신문사와 방송사들은 선거에서 의료보장제도, 주정부예산문제 등에 이르기까지 지역이슈마다 지역주민들을 포커스그룹, 자문단 형태로 참여시켜 이들과 함께 심층적인 추적취재를 벌였다. 프로젝트에 참여한 각 언론사들은 이 심층취재의 결과를 자사의 형편에 맞게 기사화해서 보도했다.
미국의 언론학자들은 이같은 공공저널리즘을 통해 언론은 사회문제들에 보다 다양하게 접근할 수 있고 동시에 문제의 해결책까지 제시하는 등 언론의 대사회적 기능을제대로수행내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비용이나 추진상의 어려움 때문에 공공저널리즘적인 취재는 장기간 지속하기 어렵다는 것이 문제로 지적됐다. 이에 미국정부는 공공저널리즘 차원에서 장기적인 심층보도를 추진하는 언론사에 대해서 보조금을 지원하는 정책의 도입을 적극 검토하고 있는 중이다. 이와 함께 ‘퓨리서치 센터’와 같은 비영리 언론단체는 매년 공공저널리즘 기획취재안을 공모해 제작비를 지원하고 있다.
공공저널리즘은 뉴미디어들이 개인화, 사유화라는 방향으로 진행됨으로써 언론 본연의 기능이 외면되고 있다는 점과 관련해 시사하는 바가 많다. 즉 뉴스가 특정계층이나 집단의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사회구성원 전체의 상호작용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공공저널리즘은 이 상호작용을 가능하도록 논의의 양방향성을 보장해준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뉴미디어의 도전에 대해 기존언론이 위상을 재정립할 수 있는 길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차세대뉴스는 기술발전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 기술발전은 수용자와 언론관계의 수평적이고 민주적인 관계의 정립이라는 새로운 역학관계를 형성한다. 그러나 개인화, 상업화라는 한계도 동시에 갖고 있다. 사회통합이라는 전통적인 저널리즘에 대한 천착이 이런 문제의 해결책이 될 것이다. 결국 차세대뉴스는 뉴미디어의 기술과 전통저널리즘의 정신을 한데 묶어야 한다는 과제를 안고 있는 셈이다.
김사승의 전체기사 보기
Copyright @2004 한국기자협회.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