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영방송인 정신 일깨워줬다"

MBC노조 집행부 '파업지속 득 없다' 중단 결정
보도·프로그램으로 공정방송 실현 의지 천명


   
 
  ▲ 이근행 MBC 노조위원장이 11일 열린 노조 조합원 총회에서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노조원들은 연이틀 격론을 벌였으나 파업 중단 여부에 대해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MBC 노조 제공)  
 
MBC 노조 집행부가 공정방송 의지를 보도와 프로그램을 통해 보여주기 위해 지난달 5일부터 시작한 총파업을 중단하기로 했다. MBC 구성원들이 김재철 사장에게 ‘정치적 사망선고’를 내리는 성과를 거뒀고, 현 정권과 김 사장이 파업을 방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파업을 지속해봤자 ‘얻을 것이 없다’는 현실적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노조 집행부의 파업 중단 결정은 갑작스러웠다. 10~11일 연이틀 열린 조합원 총회에서 상당수 노조원들이 집행부 결정에 격렬하게 반발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하지만 파업 중단은 이근행 노조위원장이 단식에 들어가면서 감지됐다. 마지막 저항수단인 단식은 거꾸로 ‘할 만큼 했다’는 걸 대외적으로 알리는 메시지였다.

장기화될수록 노조에 불리

무엇보다도 파업이 장기화될수록 노조에 불리한 형국이다. 노조도 이런 상황을 감안했다. 곧 지방선거가 있고, 선거가 끝나면 월드컵 국면으로 접어든다. MBC 파업 사태는 세간의 관심에서 더욱 멀어지게 된다. 게다가 두 달, 세 달씩 파업을 끌고 갈 만한 힘이 노조에겐 없다. 제풀에 지친 노조를 향한 정권과 김재철 사장의 무자비한 진압의 빌미만 제공할 가능성이 높다.

최악의 경우 MBC 노조는 재기 불능 상태에 빠질 수도 있다. 합법 파업에도 불구하고 1만4천명 파업 참가자 전원이 징계당하고 해고자만 1백50명이 넘은 철도노조 파업은 대표적인 사례다. 신정수 부위원장은 “이 싸움이 끝이 아니라면 다음 싸움을 할 수 있는 힘을 남겨두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파업 중단은 노조의 역량을 보존하기 위한 전술적 선택임을 강조한 말로 해석된다.

‘망가진 MBC를 구성원들이 살려야 한다’는 절박감도 파업 중단 결정을 이끌었다. 현 정권과 김재철 사장이 파업 사태를 방치하면서 지난 2월 초 엄기영 사장 전격 사퇴 이후 시작된 경영 공백은 더욱 악화되고 있다. MBC 한 PD는 “이번 싸움의 목표가 공정방송을 지키는 것이라면 김 사장 들어 망가진 회사를 정상화해 공정방송을 할 수 있는 물적 토대를 갖추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선거국면에서 보도투쟁 집중

이번 MBC 파업은 연차를 가리지 않고, 직종에 관계없이, 서울과 지역을 막론하고 열기가 뜨거웠다. 80년대에 입사한 국장급 사원들과 보직부장들이 연명으로 성명을 냈고, MBC 기자회 등 7개 직능단체 구성원 1천28명이 사장 퇴진을 촉구했다. MBC 한 해설위원은 “노조만이 아니라 회사원 전체가 투쟁에 나선 것은 언론계에서 전례가 없는 일”이라며 “MBC의 힘을 확인하는 파업이었다”고 말했다.

MBC 구성원들이 비판적 공영방송인으로 살아가는 각성의 계기가 됐다는 점에서 이번 파업의 의미는 남다르다. MBC 차장급 한 기자는 “파업을 통해 스스로를 일깨우고, 싸울 수 있는 능력을 향상시켰다”며 “보도국에 올라가도 파업 참여 정신을 발휘한다면 부당한 지시나 압력 등에 맞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기자는 “1인 시위를 하고, 단식을 하면서 ‘내가 노동자’라는 사실을 자각했다”며 “이제부터라도 제대로 기자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현장투쟁’ 전환을 선언한 노조는 우선 지방선거에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이근행 노조위원장은 “지금과 같은 선거 국면에서 보도 투쟁의 중요성은 매우 크다”고 말했다. 옥시찬 전 방송문화진흥회 이사는 “정권 쪽에서 MBC의 파행 방송이 지방선거에 유리하다며 파업을 즐기고 있다는 말들이 나오고 있다”며 “방송을 정상화해 국민의 선택권 행사에 도움을 주는 것도 방송인의 의무”라고 말했다.

징계문제 등 재충돌 가능성 상존
하지만 노조가 파업을 중단했다고 해서 MBC 사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당장 노조 집행부 13명에 대한 형사 고소와 징계 문제로 노사가 다시 충돌할 가능성이 높다. 일각에서는 김 사장이 유화책을 쓸 것이라는 시각도 있지만 김 사장이 청와대 눈치를 볼 경우 집행부 대량 해고 등 사태가 더욱 악화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특히 집행부의 파업 중단 결정에 대해 노조 내부에서 반대 여론이 만만치 않아 현장투쟁 과정에서 집행부 지도력이 파업 당시만큼 발휘되기 어렵다는 분석도 나온다. 특히 이틀간 벌어진 조합원 총회 과정에서 ‘노노 갈등’이 일부 노출돼 이를 봉합해야 하는 과제도 안게 됐다. 김성후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배너

많이 읽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