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았다. 이 기자는 "지난 4개월간 편집국을 떠나있으면서 기자의 본분과 언론의 사명이 무엇이고, 지켜야 할 원칙이 무엇인지 새삼 생각을 가다듬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구 묘역에서 어린 아기를 안고 '이철규 열사'의 묘소에 참배하는 한 젊은 부부를 만날 수 있었다. "조선대 86학번으로 이철규 열사의 후배"라고 밝힌 김현철씨는 "해마다 5월이면 이곳에 왔다"고 한다. 참배하는 동안 부인 김은정씨는 "이분은 이철규 열사라는 분이야"하며 태어난 지 103일째 된다는 딸 단비에게 얘기를 건네고 있었다.
어쩌면 단비는 먼 훗날 5·18에 대해 알고 싶어서 당시 신문을 뒤적이다 고개를 갸우뚱할 지도 모를 일이다. 단비는 또 80년 이후 20여년간 신문지면에 당시 보도에 대한 사죄나 반성이 없는 것을 의아해할지도 모르겠다. 기억을 더듬어봐도 광주지역 언론과 97년 5월 부산일보 사설을 제외하곤 언론이 공식적으로 그날의 보도를 사죄한 적은 없었다.
전남대 송정민 교수는 5·18 보도를 분석하며 "언론이 지배구조의 틀 속에서 바라보는 사건이나 문제들은 그 구조와 관점을 넘어설 수없다. 혁명적인 방법이 아니고는 그들로 하여금 지배구조 밖으로 나오도록 할 수도 없다. 80년 당시의 5·18 보도가 군부와 언론의 합작에 의해 '폭도와 난동자들의 폭동과 난동'으로 왜곡되었다고 개인적으론 자인하면서도, 언론이 아직도 그 잘못을 국민 앞에 공식적으로 시인하지 않고 있음을 볼 때,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결론지었다.
99년 5월 언론은 새 천년, 광주민중항쟁 20주년을 맞기 앞서 아직 해야 할 일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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