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기자의 취재정보를 이용한 불법 주식투자 혐의를 놓고 언론과 기자의 윤리문제가 도마 위에 올랐다.
금융감독위는 지난달 26일 취재과정에서 입수한 미공개정보를 이용, 동생 명의의 계좌로 주식투자를 해 4억원대의 시세차익을 남긴 혐의로 중앙일보 산업팀 길진현 차장에 대한 검찰수사를 의뢰했다. 혐의내용을 전면 부인하고 있는 길 차장은 이 사실을 대대적으로 보도한 조선일보와 디지틀조선일보를 상대로 "진실에 반하거나 독자를 오도하는 허위기사를 게재해 명예를 훼손시켰다"며 2억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기자가 취재정보를 이용해 거액의 차익을 남긴 혐의로 사법당국의 조사를 받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며, 신문사 사장부터 취재기자를 상대로 부당해고 등이 아닌 명예훼손 혐의로 소송을 제기한 것도 사례를 찾기 힘든 일이다.
금감위는 길 차장이 지난해 8월 18일 무세제 세탁기를 개발했다는 신동방의 보도자료를 입수해 19일자 신문 보도에 앞서 동생 명의의 계좌로 주당 3000원씩 1억2000여만원의 신동방 주식을 매입, 같은 해 9월까지 여러 차례 주식을 매각해 4억원대의 차익을 남긴 혐의를 두고 있다.
당시 신동방 주가는 언론의 무세제 세탁기 보도 직후 14일간 연속 상한가를 기록하는 등 단기급등세를 보였다.
이에 대해 길 차장은, 주식을 매입한 동생의 계좌 2개 가운데 1개에 본인 명의의 수표가 입급된 것은 매입 한달 전인 7월 17일 모친이 동생에게 돈을 보내달라고 요청해 모친의 부동산 거래대금을 자신의 계좌를 통해 보내 준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주식 매입은 7~8년 동안 주식투자를 해온 동생의 자체 판단이었으며 무세제 세탁기 개발 사실을 알려준 바도 없다고 밝혔다.
길 차장은 "모든 자금 흐름은 통장거래·입출금·수표내역 등 구체적인 자료를 통해 입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증권거래법 188조 2항은 일반인에게 공개되지 않은 중요한 정보를 직무와 관련해 알게됐거나 입수한 사람이 해당 주식거래에 이용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또 지난 96년 신문협회·편집인협회·기자협회가 새로 제정한 신문윤리강령 실천요강 제14조는 [기자는 주식 및 증권정보에 관해 최근 기사를 썼거나 가까운 장래에 쓰고자 할 때 그 주식이나 증권의 상업적 거래에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참여해서는 안된다]고 명시했으며 기자협회윤리강령에도[취재활동 중에 취득한 정보는 보도 목적에만 사용한다]고 규정돼 있다.
'기자윤리 저버린 것' '악의적 보도 일관' 양사 공방
중앙일보 길진현 차장의 소송을 계기로 [내부거래 혐의 수사] 파문은 조선-중앙 양사간 공방으로 비화하고 있다.
길 차장은 5일 조선일보 사장, 편집국장, 부국장, 경제과학부장, 사회부장, 취재기자, 디지틀조선일보 사장 등 9명을 상대로 명예훼손에 의한 2억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길 차장은 소장을 통해 "내근 차장으로서 송고된 신동방 기사를 손질한 것뿐이며 당시 연합뉴스, 동아일보, 한국일보, 매일경제, 한국경제, KBS, MBC 등에서도 잇따라 보도한 기사를 마치 중앙일보만이 사전에 정보를 입수, 기사화한 것처럼 오도했다"고 밝혔다. 이메일 기사에 대해서도 "혐의내용을 범죄행위로 단정해 본인은 물론 중앙일보의 명예를 실추시켰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조선일보는 1일자 1면에 스트레이트 기사로 혐의내용을 보도했으며 4면에 [K차장의 주식투자 의혹 전말]과 중앙일보 사진, [무세제 세탁기 과연 나올까], [신동방 주가 추이]와 그래프, [K차장의 반론] 등의 관련 기사를 게재했다.
조선일보는 전체 기자윤리를 심각하게 훼손시킨 사건으로 규정하고 있다. 편집국의 한 부장은 "하루 늦은 보도였지만 1면 머리기사로 실었어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독자들로부터 전체 기사의 신뢰도를 잃게 하는 심각한 케이스"라는 것이다. 29일자 이메일(e-mail)에는 이와 관련 "사건의 핵심은 내부자 거래로 주가를 억지로 올리지 않았는가 하는 것이며, 한마디로 기사를 크게 보도하면서 동생에게 해당회사 주식을 사도록 했다는 것"이라며 "외국 같으면 본인은 물론 담당부장이나 국장, 사장 사임까지 갈 수도 있는 엄청난 사안"이라고 규정했다.
조선일보의 한 기자는 "금감위에서 언론사 현직 차장을 상대로 검찰수사를 의뢰할 정도면 결정적인 단서를 쥐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이를 보도한 신문사에 화살을 돌리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말했다.
반면 중앙일보 노조(위원장 이기원)와 지회(지회장 김승욱)는 4일 성명을 통해 "조선일보는 이 사건을 취급한 타지들과는 달리 제목과 편집·기사의 전개방식에서 마치 중앙일보 지면이 불법투자에 앞장선 것처럼 몰아가 독자들을 호도했다"고 비판했다. 노조와 지회는"과연편집회의에 참석하지 않는 차장기자가 특정기사를 키우고 줄일 수 있는 위치에 있는가" 반문하며 "신문제작 메카니즘을 모를 리 없는 조선일보가 이를 외면하고 기사를 몰아간 것은 악의적인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한 기자는 "중앙일보를 고작 주가 올리기 위해 기사를 키우는 신문으로 밖에 보지 않는거냐"며 조선일보 보도에 강한 불만을 피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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