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률 국세청장 그림 로비 의혹

221회 이달의 기자상 취재보도부문/헤럴드경제 이영란 기자


   
 
  ▲ 헤럴드경제 이영란 기자  
 
몇 년 전 일본 아사히신문을 찾았을 때 나는 내 눈을 의심해야 했다. 넓은 편집국에, 백발의 노(老)기자들이 너무나도 많이 포진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은 어떤가? 40대 중후반이면 현장을 떠나 집(데스크)을 지켜야 하는 게 대부분이다. 그러니 연식(?)이 오래 되고, 인물이 곤란하며, 개인기까지 달리는 나 같은 ‘선수’는 난감할 때가 많다. 현장에 나가면 “아니, 왕고참께서 어찌 취재를?” 하며 애통(?)해하는 이들을 종종 목도하니 말이다. 나야 현장을 누빌 수 있어 더없이 행복하지만 상대는 꼭 그렇지만도 않은 법이다. 하지만 어쩌랴. 다시 태어나도 신문기자가 돼, 눈썹 휘날리며 현장을 누비고, 찰진 뉴스를 독자들에게 빠르고 정확하게 전하고 싶으니 말이다.

취재후기가 아닌 사설이 좀 길어졌는데 이번 ‘국세청장 그림로비 의혹’ 특종은 한 분야를 오래 파고들며 닦은 현장경험과, 이를 토대로 한 전문성과 네트워크 때문임을 말하고 싶어서다.

이번 ‘한상률 국세청장 그림로비 의혹’ 특종은 한 조간신문의 ‘전군표 전(前) 청장 그림 매물로 나왔다’는 보도가 계기가 돼 그 의혹의 실체를 규명하다가 밝히게 된 것이다. 당시 조간은 “그림을 내놓은 전 전(前) 청장 부인과 수차 통화를 시도했으나 연결이 안됐다”고 보도했는데, 이 대목에서 기자는 ‘보다 진일보한 팩트 확인’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파헤쳐보면 무언가 ‘똑 부러진 게’ 나올 것 같아 곧바로 그림을 위탁받은 화랑을 찾아내 작품 입수경위와 위탁자를 취재했다.

또 기자와의 접촉을 극도로 피하는 전군표 전(前) 청장의 부인(이미정씨)을 끈질기게 설득한 끝에 단독인터뷰를 성사시켰다. 그런데 이씨가 인터뷰에서 “아침 신문에 남편이 마치 모처의 세무조사를 무마해주는 대가로 그림을 받은 것처럼 보도됐는데 정말 분통 터진다. 사실은 남편의 부하 직원이었던 한상률 당시 차장이 ‘정적인 TK 출신 인사를 제거해달라’며 건넨 것인데 말이다”며 메가톤급 폭탄선언을 터뜨렸다. 귀를 의심케 하는 폭탄발언이어서 신빙성을 확보하기 위해 두번, 세번 반복 체크해야 했다.

이 같은 이씨의 증언은 석간 헤럴드경제 1, 3면에 단독 보도됐고, 이후 전 일간신문과 방송에 전재되며 엄청난 파란을 몰고 왔다. 이후에도 헤럴드경제는 후속보도를 주도했고 결국 (당사자의 극구 부인에도 불구하고) 청장사퇴로 일단락됐다.

‘그림로비’라는 반갑잖은 신조어를 탄생시킨 이번 사건은 요직을 둘러싸고 로비와 뇌물상납 의혹이 여전한 국세청의 부정적 면모가 또다시 드러나면서 국민들에게 큰 실망감을 안겨줬다. 특히 정적을 제거하기 위해 온갖 공작을 펼쳤다는 폭로는 사실여부를 떠나 큰 절망감을 느끼게 했다. 사건 이후 석달 째 청장이 공석 중인 국세청이 앞으론 로비라든가 상납 같은 뉴스로는 더 이상 언론에 오르내리지 않길 기대해본다. 헤럴드경제 이영란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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