탤런트 장자연씨의 자살사건으로 나라가 시끄럽다.
신인배우의 단순한 우울증으로 인한 자살인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었다. 그동안 소문으로만 떠돌던 연예계와 방송 권력의 검은 커넥션의 실체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
장씨가 자살 전 작성했다는 문건에는 신인 여배우들의 술자리 접대와 성상납 강요의 행태가 적나라하게 적혀 있다. 심지어 이른바 ‘장자연 리스트’에는 유력 언론사 대표, 방송사 PD 등 언론계 인사들의 이름도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파문이 일고 있다. 문건의 진위를 둘러싼 논란은 여전하지만, 연예계와 `스폰서’와의 고질적인 악의 고리가 실재하고 있음은 틀림없어 보인다.
우리는 장자연씨의 자살사건에서 두 가지 점에 주목하고자 한다.
첫째 언론계의 접대문화다. 장씨의 자살사건에서 드러난 여배우들의 언론권력에 대한 접대를 단순히 연예계만의 문제로 치부할 수 있을까. 주변을 둘러보자. 방송, 신문 할 것 없이 일반 취재현장에서 벌어지는 접대는 바로 이 시간에도 이뤄지고 있다. 술, 식사, 골프에 이르기까지 언론권력은 접대문화에 취해 있다. 취재원이 밥값을 내고, 술을 사고, 골프 비용을 대는 것을 당연시하는 후진적 취재행태가 여전함을 우리는 안다.
선진국은 어떨까. 멀리 갈 필요도 없다. 일본만 해도 기자들이 취재원으로부터 술과 골프 접대를 받는 일은 오래된 과거의 관행일 뿐이다. 얼마 전 한국 주재 일본 특파원이 한 기업체의 지방공장 취재를 요청했다. 해당 기업에서는 차편, 식사 등을 준비했지만 이 특파원은 정중히 거절했다. “취재는 자사 비용으로 하는 것이 원칙”이라는 게 이유다. 접대에 익숙한 한국 언론들만 상대해 봤던 이 기업의 홍보 관계자는 오히려 당황했다고 한다.
접대문화는 그 나라 언론의 도덕성을 재는 척도다. 장자연 사건은 한국 언론의 도덕 수준을 웅변해주고 있다. 언론권력의 도덕불감증이 한 신인 여배우의 꿈과 목숨을 송두리째 앗아갔음을 언론 종사자들은 절감해야 한다.
또 하나, 장자연씨 자살사건에서 주목할 것은 경찰의 수사행태다.
수사는 방향도 못 잡고 허둥대고 있고 언론이 의혹을 제기하면 그 뒤만 따라가는 뒷북 수사로 일관하고 있다. 우리가 눈여겨보는 대목은 장자연 리스트에 적혀 있는 것으로 알려진 `유력 인사’들에 대한 수사다. 성상납을 받은 것으로 거론되는 인사들에 대한 경찰의 너무나 신중한 수사태도를 보면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물론 확인되지 않은 사실로 선의의 피해자가 생겨서는 안 되는 점은 두 말할 필요 없다.
하지만 혹시 경찰수사의 신중함이 언론권력의 눈치 보기라면 여론의 지탄을 면치 못할 것이다.
우리는 얼마 전 이명박 정부의 경찰이 용산사태에서 5명의 희생자를 내고도 `법과 원칙에 따른 엄정한 집행’을 소리높여 외쳤다는 점을 분명히 기억하고 있다. 힘없는 사람에게는 엄하고, 권력에는 관용적인 공권력이 국민의 신뢰를 받을 수는 없는 법이다. 경찰은 이런 의심을 받지 않기 위해서라도 스스로 천명한 `원칙에 따른 엄정한 집행’에 충실하길 바란다. 경찰의 수사를 끝까지 지켜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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