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기자에서 언론노동운동가의 길을 걷기 시작한 지 8년째. 또다시 발 디딘 산별위원장 자리가 끝나는 2002년이면 언론노동운동가로서의 그의 경력도 10년이 된다. 93년 말 MBC 노조 6대 사무국장을 시작으로 MBC 노조 7대 위원장, 언론노련 6대 위원장 그리고 첫 언론산별노조 위원장을 맡기까지 끊임없이 언론노동운동가로서의 길을 걷고 있는 최문순 위원장(44). MBC 노조위원장 시절 ‘강성구 사장 퇴진투쟁’으로 해직됐다가 11개월만에 복직되는 등 결코 순탄치 않은 길을 걷고 있는 그가 또다시 첫 언론산별노조인 ‘전국언론노동조합’ 초대 위원장을 맡았다.
“그러고 보니 진짜 산별 위원장 임기가 끝나는 2002년이면 꼭 10년째네. 솔직히 말해서 몸담고 있는 게 아니라 떠나지 못하는 거예요. 정말 이번이 마지막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하는 거죠.”
줄기차게 언론노동운동에 몸담고 있는 이유를 묻자 최 위원장은 이렇게 말한다. 그래서 또다시 떠나지 못하는 이유가 뭐냐고 물었다.
“이 운동이 그래도 계속돼야 하니까…. 작은 힘들이 서로 합쳐져야 설득력을 얻고 힘을 얻으니까…. 쑥스럽네. 이 얘기는 뒤로 빼줘요.”
최 위원장은 이런 사람이다. 그냥 사람 좋은 옆집 아저씨 같은. 그러나 최 위원장을 잘 아는 사람들은 그가 그렇게 만만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잘 안다. 본격적으로 언론산별노조 추진과정을 묻자 정색을 하고 말하기 시작한다.
“사실 96년 방송산별노조를 추진하다 실패한 경험이 있어요. 그때 이미 EBS는 산별전환을 결의했었고, KBS가 통과하면 MBC가 투표할 생각이었죠. 그런데 당시 KBS 사측이 투표를 방해하는 바람에 통과가 안됐어요. 이번에는 그때를 교훈 삼아 준비를 더 철저히 했다고 할까. 또 그 안에 여러 가지 내외부의 환경변화가 산별 건설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고 보는데, 무엇보다 IMF를 겪으면서 조합원들이 개별노조에 대한 한계를 철저히 절감하기 시작했어요. 언론노련이 IMF를 가장 혹독하게 겪었을 겁니다. 실직률이나 임금삭감률이 가장 높았어요. 그 이유는 노조가 작게 분화돼 있어 거대 흐름에 저항하지 못하고 끌려갔기 때문입니다. 조합원들이 이에 대한 인식을 했다는 것이 96년과 다른 점입니다.”
-산별을 추진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뭐였습니까.
“언론노련 출범 이후 몸에 벤 타성과 관성을 깬다는 것이 가장 어려웠던 것 같아요. 사실 기업별 노조가이제 어느 정도 활동방식이 양식화되는 과정에 있었거든요. 그걸 깨는 게 어려웠죠. 산별노조라는 것은 아직 실험해보지 않은 것이기 때문에 미래의 불투명성에 대해 모두가 조금은 불안해 했다고 할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년간 산별노조를 추진하고 결국 첫발을 내딛었는데요.
“우리나라 노조는 굉장히 비효율적이에요. 분산돼있기 때문에 집중력이 떨어집니다. 특히 언론노조는 더 심한데, 규모가 작은 노조가 너무 많아요. 이를 경쟁력 있는 체제로 바꿔야 합니다. 자본 쪽은 구조조정을 하고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적대적인 M&A를 통해 생존력을 높여나가는데 노동운동은 힘에서 밀리고 있어요. 이에 대항할 수 있는 조직을 만들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게 산별노조라고 보는 겁니다.”
최 위원장은 또 산별노조로 가는 것이 파업손실률이 적기 때문에 기업이나 국가로 봐서도 득이라고 주장한다. 기업별노조가 있는 일본이나 우리나라는 노사가 직접 부딪혀 전투적이 되는 경향이 있는데, 유럽의 경우 파업을 할 때는 굉장히 크게 하지만 그 전에 정치적으로 해결하는 경우가 많아 웬만해서 파업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직까지도 산별이 되면 뭐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모르는 사람도 많습니다.
“가장 크게 바뀌는 건 지금은 기업이 먼저 있고 그 안에 노조가 있는 형태이기 때문에 기업에서 노조를 먼저 만들고 연맹에 가입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제는 산별이라는 큰 노조에 개인 자격으로 바로 가입할 수 있습니다. 또 전에는 작은 사업장에서는 조합비도 적고 전임자도 둘 형편이 안돼 노조를 만들기가 어려웠고 사측에서 집행부만 날리면 노조를 깨기도 쉬웠습니다. 그러나 이제 1명만 산별노조에 가입해도 그 사업장에 지부가 생기게 되고, 사측이 부당행위를 하거나 할 때 중앙에서 대응할 수 있기 때문에 쉽게 깰 수가 없습니다. 만들기 쉽고 깨기 어렵다고 할 수 있겠네요. 이외에 당분간은 크게 달라지는 건 없을 겁니다.”
-산별이 되면 중앙에 권한이 집중돼 현장조직이 약화될 것이라는 우려도 있는데요.
“그렇지는 않아요. 우리가 지금 가는 산별은 그렇게 권한이 중앙에 집중된 산별이 아닙니다. 지부의 역량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어요. 유럽의 경우 단위사업장과 산별노조와 내셔널센터, 이를테면 우리의 민주노총이 되겠죠. 이곳에 내는 조합비 비율이 4:4:2에요. 그러나 우리는 조합비 분배에있어서 지부가 절대적으로 우위에 있기 때문에 단위사업장의 역량이 약화되거나 하지는 않을 겁니다.”
-언론사마다 여건이 상당히 다른데 협상은 어떻게 합니까.
“법적으로는 교섭력이 산별위원장에게 다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여건이 다 다르기 때문에 신문은 중앙일간지, 지방지, 경제지, 스포츠지, 방송은 공중파, 케이블, 지역방송 등으로 그룹화해서 시도해볼 생각입니다. 이것도 당장은 잘 안될 것이기 때문에 지금처럼 교섭력을 지부에 위임하고 사측에서 무성의하게 나오는 사업장에 대해서 중앙에서 집중적으로 공략하는 방식을 취할 겁니다.”
-조선, 중아, 동아, SBS 등 주요언론사가 아직 산별에 합류하지 않았는데요. 이들과의 관계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80% 가량이 산별에 합류했습니다. 나머지 언론사들은 지금처럼 연맹 소속입니다. 연맹 소속 언론사들이 산별에 모두 들어올 때까지 연맹은 존속하는 것으로 규약을 만들었습니다.”
산별노조 추진배경과 의미, 앞으로의 계획 등을 물은 이후에 최 위원장에게 개인적인 질문 몇 가지를 던져봤다. 먼저 카메라출동 등 주로 고발기사를 많이 썼고, 방송협회가 주는 방송대상을 수상하는 등 기자로서 상도 많이 받았는 데 기자로서 활약하고 싶은 생각은 없냐는 질문에 최 위원장은 “솔직히 아쉬울 것은 별로 없다”고 잘라 말했다.
“IFJ선언문을 보면 기자들이 공포, 협박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하고, 가난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고 명시돼 있는데, 우리나라는 기자들에 대한 공갈 협박은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에요. 그렇지만 IMF를 겪으면서 경제적 자유가 매우 약화됐어요. 특히 지방지가 심하죠. 내 생각엔 중앙지도 근로조건이 악화돼 경제적 여건은 괜찮지만 정신적으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가난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고 봐요. 이걸 바로 잡아서 우리나라 전체 언론인이 제대로 기사를 쓸 수 있도록 하는 일이 내가 혼자 들어가서 기자노릇 하는 것보다 낫다고 보는데 그렇지 않나요?”
최 위원장은 이같이 반문하고 “기자들이 IMF를 겪으면서 점점 자긍심을 잃고 글공장, 말공장 종업원으로 특정 기업 사주의 이익에 복무하는 사람으로 전락했다”며 “기자들이 보편적 이익과 시민, 대중을 대변할 수 있도록 바꾸는 틀거리를 만드는 것이 바로 산별노조”라고 강조했다. MBC, KBS, 조선일보 종업원이 아니라 보편적인 언론인이라고하는 사고 방식을 확대시키는 틀거리를 만드는 데 언론산별이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최문순 위원장은 끝으로 “언론노조 조합원들이 밖에서 보기에는 전투력이 약하고, 언론개혁도 제대로 못한다고 비난을 받기도 하지만, 시대의 흐름을 잘 알고, 그 방향으로 가야할 때 사적이익을 버리고 동참하는데 굉장히 큰 장점을 보인다. 여러 가지 논란에도 불구하는 나는 언론조합원들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며 “첫 언론산별위원장이 된 것을 정말 영광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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