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협회보가 숱한 우여곡절 끝에 오늘자로 지령 1000호를 냈습니다.
폭압적인 군사정권 시절 기자협회 집행간부들이 대거 구속되고 협회보 편집진이 영어의 몸이 되는 사태와 폐·복간을 거듭하는 시련을 이겨내고 오늘에 이르렀 습니다. 이는 오로지 기자협회와 기자협회보를 사수해야 한다는 선배들의 굳은 의지와 결단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기자협회보는 ‘기자협회의 얼굴’ 이자 ‘신문의 신문’임을 자임해왔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과거 선배들이 보여준 불굴의 투쟁정신을 올바르게 계승해 민주, 개혁언론의 실현이라는 역사 적 사명을 제대로 이행하고 있는가를 되물어볼 때 자괴감이 들 뿐입니다.
오늘의 언론, 언론계, 기자들은 총체적인 정체성의 위기를 겪고 있다는 진단이 언론계 안팎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언론이 서 있어야 할 자리를 정확히 찾지 못한 채 혼돈 속에서 헤매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취재보도 활동은 여전히 기존 의 관행과 관성에 의존하고 있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순간 겸허하게 스스로를 되돌아보게 됩니다. 이 시점에서 현장을 뛰는 기자 들은, 과연 언론의 정체성 위기는 어디에서 오는가를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물론 언론사 경영진과 간부들도 지금과 같은 정체성의 위기에 책임을 통감해야 한다고 감히 말씀드립니다.
언론개혁은 제반 개혁의 처음이자 끝입니다. 언론 개혁은 더 이상 언어의 농단이 아니라 실체적 진실로 우리 곁에 다가와야 합니 다. 언론개혁이 안되고 있는 것이 결국 다른 분야의 개혁을 지지부진하게 하는 주된 요인임을 떳떳이 자인해야 합니다. 한 법학자는 “개혁의 어려움은 반개혁 세력의 두꺼운 포진에 기인하기보다 개혁세력의 자기개혁의 빈약에 있다. 개혁의 실패는 절반 이상 개혁주체들의 도덕적 해이에 그 책임이 있다. 개혁의 발목을 잡는 것은 변화를 싫어하는 기득권세력과 이기주의집단 때문만은 아니다. 개혁의 주체가 자기개혁에 실패해 스스로 넘어지기 때문”이라고 이야기 했습니다. 취재현장을 지키는 우리 기자들은 이제 언론개혁의 기수가 돼야 한다고 굳게 믿습니다. 정권에 봉사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바로 국민과 독자, 시청자 들에게 봉사하기 위해서입니다. 국가와 국민의 명운이 걸려있는 개혁을 좌초시키기 위해 살쾡이같은 눈으로 기득권 보전, 배타적 이익확대의 기회를노리는반개혁 세력을 진정 부끄럽게 만들도록 하는 데 우리 기자들이 힘을 합쳐 선봉에 나서야 합니다.
언론계의 대선배 한 분은 몇년 전 “민주언론운동의 불길은 가장 깊은 나라사랑이자 겨레사랑”이라며 “구체성과 실천성을 확보하는 새로운 민주언론의 깃발을 올리자”고 촉구했습니다. 세월은 흘렀어도 이 명제는 바뀔 수 없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절체절명의 과제인 언론개혁운동과 맞닿아 있기 때문입니다. 이 선배가 지적했듯이 민주언론, 개혁언론 탄생이 뼈를 깎는 자정과 자기변신, 개혁 으로부터 비롯된다면 이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개혁언론의 함성을 질러야할 때가 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상생(相生)의 삶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상극이 아닌 상생의 단초는 바로 온몸을 던져 참언론의 역할을 되살 리는 데서부터 열린다면 지나친 비약입니까?
비록 사회주의 중국에 자본주의를 접목시키고자 하는 경제정책에 국한된 것입니다만 중국총리 주룽지(朱鎔基)는 급진적 개혁, 전체의 개혁, 심층적 개혁이 개혁의 요체라고 갈파했습니다. 중국의 유력 격주간지 신저우칸(新周刊)은 여론조사에서 주 총리가 중국에서 가장 남자다운 의인(義人)’으로 뽑혔다는 것과 총리자신의 신조는 ‘의롭게 죽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그뿐’이라는 것이라는 뉴스를 본 적이 있습니다. 의로운 것이 무엇인지를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지령 1000호를 계기로 기자협회 보는 언론의 구조적 개혁을 소망하는 5600여 기자회원들의 목소리를 충실히 담아 낼 것입니다. 새로운 밀레니엄에 앞서 언론개혁을 완수하기 위해 필요한 기자의 역할이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 방향과 비전을 제시하는 조타수가 될 것임을 약속드립니다.
조성부 한국기자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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