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군 군악대장 무죄 확정
219회 이달의 기자상 취재보도부문/한겨레21 이순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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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겨레21 이순혁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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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초 어느 나른한 주말. 지인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그런데 그가 말하는 내용이 너무 황당했다. 반신반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여군 대위가 상관에 대한 항명 혐의로 군사재판을 받고 있는데, 유죄가 선고될 것 같다. 여군 대위는 상관으로부터 스토킹을 받았다는데, 군에서는 그냥 무시하고 넘어갔다고 한다.’
거듭 황당했다. 아무리 군대라지만 좀 심한 얘기였다. 조심스레 취재를 시작했다. 당사자인 육군 ○○사단 군악대장 박아무개 대위의 친구가 국가인권위에 진정을 낸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박 대위를 사단 헌병대에 남몰래 수사의뢰한 당사자는 바로 박 대위의 상관인 송아무개 소령이었다. 사단장은 ‘남자친구와 사귀지 않기’ 등을 담은 각서를 작성하도록 강요하고, 한 달에 수백 통의 문자를 보내는 등 송 소령의 스토킹 사실을 확인하고도 경고장만 주고 말았다. 그렇다면 송 소령이 수사 의뢰한 내용은 정말로 죄가 되는 내용이었을까? 아니었다. 수사 의뢰된 수십 가지 혐의 대부분 범죄 혐의가 성립되지 않아 군 당국 스스로 기소조차 못 했다. 헌병대의 조사를 받고 있던 박 대위의 행동이나 태도에서 꼬투리를 잡아 이를 기소하고 유죄로 선고한 것이다.
사실 기자이기 전에 평범한 한 사람으로서 화가 났다. 군에 다녀온 남자로서 창피했다. 하지만 의식적으로 ‘팩트 위주로 기사를 쓰자’고 다짐했다. 한겨레21 705호(4월15일 발행)에 첫 보도가 나간 뒤, 송 소령과 박 대위 주변 사람들의 얘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더욱 한숨이 나왔다.
다행히 여성단체들과 인권활동가, 임종인·차혜령 변호사 등이 나서 대책위를 꾸리고 박 대위를 도왔고, 대법원은 지난 11월 박 대위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내 일처럼 기뻤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한숨이 나왔다. 과연 복직한 박 대위는 군 생활을 무사히 잘 마칠 수 있을까? 주변 남성 군인들의 이상한 시선과 보이지 않는 차별은 없을까? 승진 누락 등 눈에 보이지 않은 불이익은 없을까?
한숨을 쉴 일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얼마 전 군 관계자가 전언하길, 사건 뒤 후방지역 군부대에 배속된 송 소령은 잘 지내고 있단다. 그런데 그 부대 구성원 아무도 그가 ‘스토킹 가해자’인 그 송 소령인 줄 모른다나. 상을 받고도 부끄러움과 한숨이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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