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정도쯤이야'하는 윤리 불감증이 문제

기협방담-기자들의 주식투자 어떻게 볼 것인가

정현준 사설 펀드 투자자 명단에 언론인들이 거론되면서 또다시 기자들의 주식투자 문제가 논란이 되고 있다. 과연 기자들은 기자들의 주식투자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지난 10일 저녁 7시 30분 기자협회 회의실에 몇몇 기자들이 모였다. 익명으로, 자유롭게 얘기해보기 위해서. 그래서 나온 얘기는 과연 어떤 것일까. <편집자주>





-오늘 주제는 기자들의 주식투자입니다. 정현준 사건이 일어나기 전부터 기자들의 주식 투자는 계속 문제가 돼 왔는데요. 우선 주식투자가 기자들 사이에서 얼마나 성행하는지부터 이야기해볼까요.

-청와대를 출입하고 있는데, 어제 8급 직원 한 명이 정현준 사건에 연루돼 오늘 검찰에서 조사를 받았습니다. 분위기가 이렇다보니 요즘에는 주식투자 얘기 안 하지만, 얼마 전만해도 공무원이나 출입기자나 주식투자를 했는데 어떻게 됐다더라 하는 게 화제였습니다.

-저는 미국연수 갔다가 돌아왔는데 미국에서 샌프란시스코에 있었기 때문에 실리콘벨리 언저리에 좀 있었습니다. 와서 느낀 것은 기자들이 벤처에 대한 잘못된 이해를 하고 있다는 겁니다. 벤처가 대박 터지는 걸로만 생각하는 식이죠.

-아직도 주식투자가 기자들의 가장 큰 화제가 아닌가 싶어요. 주식 모르면 그룹에서 소외되는 분위기니까요. 그러나 벤처의 본질은 쪽박 가능성이 있다는 건데, 기자들이 그 쪽박 가능성에 대해서는 얘기 안하고 부화뇌동 한 거죠. 이번 사태도 기자들에게 큰 책임이 있다고 봅니다.

-그럼 본론에 들어가서 기자들이 주식 투자를 해도 되는 건지. 아니면 금지해야 되는 건지 얘기해보죠.

-제가 오늘 빛 바랜 기자윤리실천요강을 가져 왔는데, 14조를 보면 정보의 부당 이득 금지, 증권의 거래 금지를 분명히 명시하고 있어요. 이걸 아는 기자가 얼마나 될까요. 이런 요강이 있다는 건 반대되는 모순 상황이 끊임없이 빚어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중앙일보 길진현 차장 사건이 났을 때 중앙일보 기자윤리강령을 만들었는데 주식투자 부분을 어떻게 할 것인가가 고민이었습니다. 몇차례 수정하며 관철시킨 것이 경제부처와 경제산업을 다루는 기자들은 주식투자를 금한다는 내용인데요. 일부에서는 심하다, 재산권 침해다, 뭐 그런 얘기도 나왔습니다. 그래서 문구를 처음에는 ‘금한다’고 썼다가 ‘직접투자는 금한다’고 명시했습니다. 투신사를 통한 간접투자는 괜찮다는 거죠.

-한 10여년 전에 증권기자를 했었는데 그때 매경은 석간이고 한경은 조간이었습니다. 오전에는 한경 기사 따라 주가가 뛰고, 오후에는 매경 기사 따라 주가가 흔들렸습니다. 장난치는 경우도 많았죠. 심지어 제가 오전 11시30분쯤 모증권회사에서 취재하고 있는데 경제신문 편집회의 메모가 들어오는 경우도 봤습니다. 그 당시 경제신문의 경우는 ‘경제신문 기자가 증권 모르면 안된다’고 증권투자를 권유하기도 했다고 들었습니다. 물론 자기가 투자하면 더 빨리 배우게 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내돈이 100만원만 들어가 있어도 오르게 유도하는 기사를 쓰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래서 직접 그 기사를 쓰는 사람은 주식투자를 못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동감입니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IMF를 겪으면서 주식을 모르면 바보처럼 여겨지면서 다들 공개적으로 주식을 하고, 함께 윤리 불감증에 걸린 것 같아요. 또 그때는 월급을 제대로 못받기도 하고, 생활이 어려워지면서 기자들도 돈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 아닐까요.

-그것이 이유가 될 수는 있겠지만 제 생각에는 그것 때문에 주식투자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그럼 이 시점에서 기자들이 주식투자를 하는 이유에 대해 얘기해보죠.

-기사 쓸 때 보면 아주 잘 된 케이스와 못된 케이스 가지고 쓰지, 보통의 경우는 안 쓰잖아요. 남보다 많이 주워들으니 잘 된 케이스에 혹하는 경우가 많아요. 내가 다른 사람보다 많이 알고 있다고 착각하는 거죠. 사회부, 체육부에 있으면서 경제부 동료한테 ‘뭐 없냐’ 묻고 주워들은 얘기도 정보로 착각하는 겁니다.

-저는 솔직히 주식투자를 한번도 안 해 봤는데요. 제가 아는 선배기자 한 명은 하루 종일 단말기만 쳐다봐요, 우리가 민정수석 만나러 갈 때 그 선배는 경제수석 만나러 가더라구요. 주식투자가 일에도 영향을 미치는 거죠. 제 생각엔 기자는 주식투자 안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그럼 거꾸로 기자들은 왜 주식투자를 하면 안 되는 지에 대해 얘기해보죠. 꼭 기자만 정보를 다루는 것도 아닌데요.

-두 가지 측면에서 말하겠습니다. 경제부 기자가 안 된다고 한 이유는 기사에 영향을 주기 때문입니다. 기자가 다른 것에 영향을 받아 기사를 왜곡하면 그것이 정치적 탄압이건, 광고주에 의한 탄압이건 안 되는 것과 같은 맥락에서 주식투자로 기사를 왜곡해서는 안됩니다. 두번째로는 기자가 권력의 하나로 취급받고 있고, 기자도 자신을 권력의 일부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정현준 펀드에 들어가는 사람도 일반인은 아닙니다. 정치인이거나 관리인 또는 언론인이죠. 모두 권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끌어들인 게 아닙니까.

-그러나 누구나 주식투자를 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자들에게만 무조건적인 윤리강요가 가능할까요.

-역차별 얘기도 나올수 있죠. 무조건적인 강요는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타협한 게 직접투자를 금지하고 공적펀드에 가입하는 정도로 자제하자는 겁니다.

-솔직히 기사 잘 쓰라고 노트북 사주고, 랜 깔아줬더니 하루 종일 단말기만 들여다보는 사람 많아요. 쉽게 말해서 주식은 부업인데, 본업과 부업이 뒤바뀐 거죠.

-요즘 언론사는 굉장히 바쁘게 움직입니다. 본업에 소홀하거나 영향을 줄 정도로 시간과 노력을 소모한다면 일에서 펑크가 날 것이고, 내부에서 먼저 문제 삼을 거에요. 이런 자리에서 논할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기자도 개미군단 중에 하나에요. 기자가 떼돈을 벌기 때문에 주식투자를 금지하는 게 아니라 아까도 말했지만 기사를 왜곡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기자들은 일반 투자자보다 빨리 알 수 있는 위치 아닙니까. 그런 면에서 준내부자로 볼 수도 있지 않습니까.

-일본의 경우를 보면 아사히신문이 모든 기자의 주식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증권거래법에 ‘경제기자는 내부자로 본다’는 내용이 들어 있어요. 그것을 범죄행위로 규정하는 것이죠.

-미국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대체로 경제담당기자는 내부자로 봅니다. 하지만 우리는 부서가 계속 로테이션 된다는 점에서 미국과 일본하고는 상황이 좀 다릅니다. 예를 들어 사회부 할 때 산 주식을 경제부 가서 팔아야한다는 얘긴데, 좀 복잡하죠.

-또 미국, 일본의 경우는 경제문제가 경제부서에서 해결되지만 우리는 청와대를 비롯해 모든 분야에서 영향을 받잖아요. 그런 면에서 보면 경제부만 금지할 경우 경제부 기자들이 좀 억울하다고 하지 않을까요.

-그렇다고 모든 기자의 주식투자를 금지하는 건 또 너무 확대시킨거 같은데요.

-제 생각엔 기자의 주식투자도 문제지만 보다 큰손인 언론사의 주식투자가 더 문제라고 봅니다.

-각 사별로 대응방안을 마련하던가 뭔가 대책이 필요한 시점 같습니다.

-기자윤리강령을 다시 한번기자들에게 각인 시키고 자정노력을 하지 않으면, 언론은 조만간 시민단체로부터 엄청난 비난을 받게 될 것입니다.

-NGO들이 다음 개혁대상을 언론으로 삼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제 생각에는 언론윤리표준기구 같은 것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언론인과 여야 정치인, 사회 각계 각층이 참여해 준칙을 만들어서, 언론사나 언론인이 주식투자나 부동산으로 이익을 얻었을 때 그것이 정당한 것인지 검증하고, 부당한 것이라면 제소하거나 공시해서 제재를 가하는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동감입니다. 언론재단에서도 후배기자들 연수시킬 때 윤리교육 시킨다는 얘기 못 들었습니다. 또 각 나라의 사례연구나 세미나를 통해 자정 붐을 일으킬 필요가 있습니다.

-정현준펀드에 들어간 사람들을 보면 30대 고려대 출신으로 정씨와 가까웠던 사람들입니다. 거기다 손실보존약속도 해줬습니다. 들어가기만 하면 먹는 건데 각자 그런 유혹을 받았다면 어땠을까요. 물론 옛날 구악 선배들 얘기 들어보면 요즘 기자들 많이 나아졌습니다. 그러나 예전보다는 나아졌지 않느냐,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불감증이 문젭니다. 골프 얘기를 하자면 제돈 내고 골프 치는 사람 없으면서 이걸 문제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없어요.

-기자들이 왜 더 엄격한 윤리 적용을 받아야 하느냐 불만 갖는 사람이 많은데요. 기자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기사 하나하나가 사회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작년말부터 기자 사회에 관행화된 것들을 개선해보려는 시도를 많이 했는데요. 계속 벽에 부딪힙니다. 관행을 바꾸려고 하는 사람들이 힘을 모아야 해요.

-윗사람은 치받을 수는 있으나 바꿀 수는 없어요. 그렇지만 아래는 바꿀 수 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다수가 되면 바뀌지 않겠습니까.

-그 기간이 얼마나 될까요. 독자나 시청자들도 점점 조직화되고 있습니다.

-그래도 10년전과 비교해보면 많이 변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희망이 있다고 봐야죠.

정리=박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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