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대학교재·베스트셀러도 불온서적
제216회 이달의 기자상 취재보도부문/한겨레 노현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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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겨레 노현웅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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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편의 촌극이었습니다.”
지난 7월31일 한겨레 지면을 통해 국방부의 ‘불온서적’ 지정 및 통제 소식을 전하면서 가장 처음 들었던 생각이었습니다. 인터넷만 있으면 전 세계 곳곳의 정보를 찾아볼 수 있는 2008년, 대한민국 국방부는 23권의 책에 ‘불온’하다는 딱지를 붙이고 있었습니다.
이 책들의 반입을 통제하기 위한 대책도 기가 막혔습니다. 병사들에게 편지가 도착했을 때 간부 입회 하에 개봉하고 내용물을 확인하라고 합니다. 불시에 장병 생활실을 점검하고 ‘불온서적’ 발견 시 기무부대에 통보하라고 했습니다. 국방부가 지정한 23권의 책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과, 이 사실이 기무부대에 통보까지 해야 할 위험성을 가지고 있다는 판단을 등치시키는 국방부의 뱃심은 역시 ‘사내’다웠습니다.
무엇보다 재미있는 것은 영문을 알 수 없는 불온함의 기준이었습니다. 노동자의 삶과 투쟁을 담담하게 그린 ‘소금꽃나무’와 박정희 정권의 공과를 냉정하게 평가하는 ‘나쁜 사마리아인들’이 같은 ‘반정부·반미’ 항목에 묶여 있었습니다. 불온서적 저자라는 동류항에 묶인 저자들 사이에서도 의아할 만한 일이었습니다.
기사에 대한 반응은 즉각적이었습니다. 해당 서적의 매출은 급격히 뛰어올랐고, 이는 발빠른 업계의 마케팅 용도로 활용될 정도였습니다. 군 내부에서도 비판이 나왔습니다. 군법무관들은 이념과 사상의 자유라는 헌법적 가치에 반하는 국방부의 지시에 헌법소원 청구라는 용기를 냈습니다.
무엇보다 대중은 창발적이었습니다. ‘불온서적을 읽는 사람들의 놀이터’라는 카페를 만들어 노암 촘스키와의 이메일 인터뷰를 성사시키기도 했고, 서평 공모전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국방부의 ‘헛발질’에 누리꾼들은 일본 애니메이션 캐릭터 유형인 ‘츤데레’라는 별명을 붙였습니다. 좋아하는 마음을 까칠하게 표현하는 일본 만화 여주인공 캐릭터처럼, 국방부도 애써 까칠하게 ‘불온서적’이라는 딱지를 붙이고, 서적 매출에 사실상 도움을 줬다는 조롱이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국방부는 귀를 닫고 있습니다. 군이라는 조직의 특성 탓에 사상의 통제는 당연한 일이라는 고전적인 인식이 여전하기 때문입니다.
국방부는 여전히 ‘돌격’ 명령에 앞뒤 재지 않고 달려가는 용사를 기대하는 백병전 수준의 역사관을 벗어나지 못한 것 같습니다. 합리성과 비판의식이 결여된 군사력이 어떤 참극을 빚어왔는지, 국방부가 우리 현대사의 아픔에서 아직 많은 것을 배우지 못한 듯해 마음이 아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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