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KBS 사장 인선 비밀 대책회의
제216회 이달의 기자상 취재보도부문/경향 김정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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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향 김정섭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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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의 기쁨보다 씁쓸함이 앞선다. 상을 받게 된 기사의 내용이 말해주듯 ‘민주화’를 넘어 ‘밀레니엄’을 운위한지 8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후진적인 사회에서 기자로 일하고 있다는 자괴감에서다. 어느날 귓가에 다가온 “청와대가 KBS 사장 인선을 위해 유력 후보들과 서울 시내 호텔에서 비밀 대책회의를 가졌다”는 한마디의 소문. 방송통신위원회를 비롯해 미디어업계를 취재 영역으로 삼고 있는 기자로서는 참으로 경악할 만한 일이었다.
역대 정권에서 공영방송 사장 선임시 정권의 의중을 반영했다는 말은 더러 들었어도 실제 청와대가 후보들을 불러 대책회의까지 벌였다는 얘기는 ‘울트라 첨단 버전’이었다. 품격 사회를 소망하는 기자는 처음에는 후진 사회임을 자인하고 싶지 않아 사실이 아니길 바랐다. 그러나 소문은 교차 확인 등의 취재를 통해 점차 사실로 무르익어 갔다.
청와대의 ‘비밀 대책회의’는 사장후보 공모에 앞서 이뤄진 것으로 방송 장악의 방증이자 공영방송의 정체성을 훼손하는 위법·탈법이 응축된 초유의 ‘사건’이었다. 방송법상 KBS이사회는 권력과 독립적으로 사장후보를 제청해야 한다. 대통령은 이사회가 추천한 사장후보 1인에 대해 임명을 할 뿐 후보 선임 과정에 개입할 수 없다. 하물며 방송통신위원장은 KBS 사장 선임에 관여할 어떤 법적 권한도 없다. 그런데도 대통령의 측근인 정정길 대통령비서실장과 이동관 대변인, 사실상 ‘권력의 2인자’인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은 대책회의를 기획·주선했다. 유재천 KBS이사장은 언론학자의 양심을 내팽개치고 회의를 주도했다. 참석한 방송계 인사들조차 ‘인생 최대의 모욕’으로 느꼈다고 한다.
청와대는 비밀 대책회의 이후 본지가 먼저 ‘KBS사장 선임 청와대 개입설’을 보도하자 정정 보도를 요구했다. 다음날 비밀 대책회의가 이뤄진 사실을 보도하자 “우린 듣기만 했다”고 변명했다. 그러나 KBS이사회는 비밀 대책회의에 참석한 뒤 사장후보에 공모했던 김은구씨를 심사에서 탈락시킴으로써 권력의 방송장악 음모를 ‘공인’하고 말았다.
대책회의 파문 한달 뒤. 뭔가 크게 바뀌었어야 정상적인 사회다. 그러나 KBS를 비롯한 국내 방송계는 ‘선진화’를 모토로 내건 현 정권의 힘에 의해 여전히 국민들의 민주화 의식 수준과 점점 동떨어지는 ‘후진화’의 길을 걷고 있다. MBC ‘PD수첩’ 수사, YTN의 낙하산 사장 임명 등의 여진은 계속되고 있다. 미디어가 ‘권력의 통치기구’라는 인식은 이제는, 적어도 민주사회에서는 화석화된 이론이다. 지금은 민심 이반과 국론 분열을 격화시키는 ‘역주행식 권위주의 언론정책’을 하루 빨리 바로잡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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