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 바랜 BK21
제215회 이달의 기자상 기획보도 방송부문/ KBS 유광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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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BS 유광석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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쫓는 자와 쫓기는 자, 중앙아시아의 한복판 우즈베키스탄의 한 골프장에서 난데없는 추격전(?)이 벌어졌다. 국제학술대회에 참가해 발표가 진행되는 시간에 골프를 치는 이유를 따져 묻는 기자, 곤혹스러운 질문에 연방 기자를 피하다 이내 달아나는 교수.
사실 해외 취재를 떠나기 전까지만 해도 이런 장면이 연출되리라고는 취재진도 예상하지 못했다. 취재의 시작은 외국에서 열리는 국제학술대회가 이름과는 전혀 달리 ‘한국인들만의 학술대회’로 전락하고 있음을 밝히는 데 있었다. 그래서 사전에 학술대회 참가자 명단을 입수해 참가자의 4분의 3이 한국인인 사실을 확인했다. 관광과 골프 일정도 확인했다.
이제 참가자들과 최대한 가까이 밀착해 한국인들끼리 학술대회를 어떻게 진행하는지 확인하는 일이 남았다. 학술대회를 주관하는 학회가 국내 IT 분야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고, 대회운영도 가장 잘 한다고 평가가 나 있었기 때문에, 이런 외유 일정이 포함된 게 놀라울 뿐이었다.
우즈베키스탄 학술대회 현장에 가보니 놀라움은 눈앞의 현실로 나타났다. 참석자들 상당수가 발표장에 나타나지 않았고, 단체 관광을 즐기고 있었다. 일부 교수들은 이른 새벽부터 골프장으로 향했다. KBS 취재진임을 밝히자 모두들 황급히 자리를 피했고, 자신은 교수가 아니라고 발뺌하는 참가자도 있었다.
어떻게 방송국 취재진이 골프장에 들어올 수 있었느냐며 골프장 측에 항의하는 바람에 취재진은 쫓겨나다시피 골프장을 나올 수밖에 없었다. 본의 아니게 우리를 골프장에 안내했던 가이드가 곤경에 빠져 매우 난감한 상황도 발생했다.
우리가 ‘빛바랜 BK21’ 시리즈를 통해 지적하고자 했던 것은 막대한 국가연구비를 사용하는 교수들의 연구윤리 부재였다. 실적 부풀리기에 국가연구비가 줄줄 새나가고, 학문 후속세대 양성이라는 BK21의 당초 취지와는 거꾸로 교수들의 윤리 불감증은 그대로 대학원생들에게 스며들고 있어 안타까울 따름이다.
성과가 있어 보람도 있었다. 무엇보다 제도개선이 곧바로 이뤄졌다는 것. 교육과학기술부는 이례적으로 즉각 후속 조치 계획을 내놓았고, 학부모단체의 감사청구에 의해 감사원의 감사가 곧 실시될 예정이다. 전국 대학 산학협력단협의회는 사과 성명을 내놓았다.
교육팀의 팀워크도 빛을 발했다. 단순히 엉터리 국제학술대회 현장을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실적 부풀리기의 원인과 그로 인한 폐해까지 연속 보도할 수 있었던 건 개인이 아닌 팀의 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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