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지마 보험료 천국

제215회 이달의 기자상 기획보도 신문·통신부문 / 서울경제 우승호 기자


   
 
  ▲ 서울경제 우승호 기자  
 
‘놀랍고, 놀랍고, 놀라웠다.’
생명보험상품의 보험료 속내를 들여다 보는 과정이 그랬다.

지난해 생보사가 거둬간 보험료만 75조원, 지금까진 누적 보험료는 수백조원에 이른다. 보험은 연간 민원 건수가 3만 건이 넘고, 소송은 1만 건, 소송금액만 3조원이 넘는 대표적 ‘민원(民怨) 산업’이다. 그러나 보험료에 대한 민원이나 소송은 단 한 건도 없다. 놀랍지만 사실이다.

보험료와 관련된 건 전부 비밀이다. 보험료 산정의 기초통계가 되는 ‘경험생명표’부터 대외비다. 단순통계 자료인데 비밀이다. 보험료 구성 내역은 말할 것도 없고, 상품을 몇 개 만들어 팔았는지도 비밀이다. 보험료는 ‘업계자율’이기 때문에 알려줄 것도 없고, 알 필요도 없다는 것이 감독당국의 입장이다. 카드나 펀드ㆍ은행 수수료 1~2%포인트에 칼날을 들이대는 것과는 딴판이지만 사실이다.

보험사에서 20년, 30년을 일했다는 베테랑들도 보험료가 어떻게 결정되는지, 마진이 얼마인지 모른다. 보험상품을 관리 감독하는 관계자들도 “보험료처럼 어려운 건 묻지 말라”며 손사래를 친다. 보험정책을 담당하는 정부기관들은 “보험사가 알아서 할 일”이라고 관심조차 없다. 업계조차 “감독당국은 아무것도 모른다”고 무시한다. 그런데도 각종 보험 관련 정책이 쏟아진다. 어이없지만 현실이다.

생보사들은 매년 수 천 개씩 신상품을 쏟아내고 계약자들은 수십조원의 보험료를 낸다. 보험료와 관련된 문제나 민원은 없고, 모든 게 비밀이지만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아무것도 모른다는 감독당국은 척척 정책을 내놓는다. 신기에 가깝다.

보험사와 계약자들은 매년 1만 건이 넘는 소송을 한다. 결과는 가입자의 완패. 보험사들이 법의 울타리를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넓혀놨기 때문이다. 보험사들은 ‘가입 후 2년이 지나도 자살이면 보험금을 안 준다’며 법을 고치는 중이다. 가입 후 바로 자살하는 역선택을 막기 위해 2년이라는 기한을 뒀지만, 그마저 없애겠다는 것이다. 우울증 등 질병으로 자살해도 보험금은 없다. 하지만 ‘그런 법이 어디 있느냐’고 따지는 목소리는 개미소리 만하다. 계약자의 권익은 그렇게 사라져 왔다.

‘묻지마 보험료 천국’ 시리즈는 시작일 뿐이다. ‘생명보험은 어렵다. 복잡하다. 전문적이다’라는 장막을 거둬 낸 것이다. 누구든 캐내면 캐낼 수 있고, 캐낼 것이 많다는 것을 보여준 셈이다.

개인적으로 기자생활 10년 동안 묵은 숙제 몇 가지를 했다는 것에 마음 한편이 홀가분하다. 마지막으로 ‘이 시리즈는 서울경제신문이었기에 가능했다’는 말을 기록에 남기고 싶다. 서울경제 우승호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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