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고시 시행 1년…변한 게 없다

"특별결의요? 아무도 안믿어요"

[신문지국] 과열자제 공문·지침 받은 적 없다



신문협회가 최근 신문시장질서 회복을 위한 특별 결의를 발표했다. 하지만 시장의 반응은 냉랭하다. 지난 24일과 25일 지국장들 사이에선 “얼마나 오래 가겠느냐”, “강제 수단이 없으면 제대로 지켜지지 않을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이 많았다. 그만큼 본사의 주도로 가열된 과당 경쟁에 대한 불신이 깊은 것이다. 어떻게 이런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일까.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공문이요? 그런 거 없어요. 설사 내려온다 해도 그 속내를 모르는 게 아닌데….”

군포지역에서 이른바 ‘빅3’로 분류되는 한 신문사의 지국을 운영하는 이상훈(가명)씨. 그는 어이없다는 듯 웃음 섞인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신문협회의 신문시장정상화 특별 결의문을 각 신문들이 발표한 후속조치로 관련 공문 등이 내려온 게 없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었다. 오히려 그런 질문 자체가 뜻밖이라는 반응이었다. 이씨는 여전히 발신자표시 전화기를 경품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서울 양천구에 있는 또 다른 ‘빅3’ 신문의 이 아무개 지국장도 비슷한 답변이었다.

“신문에 결의문이 실린 것을 봤다. 하지만 결의문을 2면에 실은 것을 보면 별로 내고 싶지 않았던 모양이다. 공문 같은 것은 없었다. 지금도 여전히 판촉을 위해 경품을 쓰고 있고 무가지 서비스도 제안한다.” 이 지국장은 발신자표시 전화기를 경품으로 주고 있고 무가지는 길게는 8개월까지 넣고 있다고 덧붙였다.

과열경쟁 본사가 더 부추겨



군포지역 지국장 이상훈씨나 양천구의 이 아무개 지국장 모두 이런 특별 결의문에 신뢰를 보내지 않았다. 이상훈씨의 이런 불신은 과거 경험에서 나온 것이다.

지난 2000년도 말 이씨를 포함해 군포와 의왕시를 포괄하는 안양권의 이른바 ‘빅3’ 신문사 소속 20여개 지국 책임자들이 판촉물을 쓰지 않기로 합의한 적이 있다. 이들은 또 위반할 경우를 대비해 각 신문사별로 범칙금 5000만원씩을 적립했다고 한다. 하지만 1년여만에 이 ‘담합’은 깨지고 말았다. 일부 지국장이 부수 확장을 요구하는 본사의 압력을 이겨내지 못한 것이다.

“물론, 과거에 경품을 쓰지 말라는 공문이 내려온 적이 있다. 하지만 지국을 방문한 본사 직원들의 태도는 180도 다르다. 부수확장 독촉을 받으면 경품을 안 쓰고는 못 배긴다. 또 그렇게 하길 바라는 분위기다. 지금도 사정은별로달라지지 않았다.” 이씨의 설명이다.

양천구의 이 아무개 지국장은 “어느 지국장이 출혈이 뻔한데 경품을 쓰고 싶겠나. 문제는 본사다. 본사가 형식적인 게 아니라 진심으로 경품을 쓰지 말라는 입장을 밝힌다면 우리도 안 쓴다. 그것이 더 좋다. 하지만 그런 일은 절대로 자율로 안 된다”고 말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당초 일부 후발 신문사에서 시작된 자전거 경품은 되레 ‘빅3’로 확산되는 추세다.

안산지역에서 지국을 운영하고 있는 김광호(가명)씨는 인근 경쟁사 지국이 자전거를 경품으로 준다는 사실을 확인하고는 이달 초 자신도 자전거로 품목을 바꿔, 맞불 작전에 들어갔다. 당초 문제의 경쟁사 지국을 고발할까도 고민해 봤지만 이전부터 안면이 있는 처지여서 포기했다. ‘구멍가게’식으로 지국을 운영하기는 마찬가지인 처지에 수백만원씩 벌금을 맞게 될 경우 사실상 지국 운영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에 이를 것이란 사실을 그 역시 잘 알기 때문이다.

“신문에 결의문이 실린 것을 봤다. 하지만 무슨 소용인가. 본사 영업 전략은 정반대다. 그냥 놔두질 않는다. 자전거를 쓰고 싶지 않지만 경쟁이 붙은 이상 어쩔 수 없다.”

김씨는 그나마 지난해 신문고시가 제정됐을 때 상황이 ‘좀 나아지겠지’ 하면서 기대를 가졌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심화되는 경쟁에 이제는 지국 운영 자체에 깊은 회의를 느끼고 있으나 그 동안 쏟아 부은 돈 때문에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처지라고 했다.



전화기·자전거 경품 제공 여전



경품과 무가지 과당경쟁은 비단 서울과 수도권만의 문제가 아니다.

대전지역에서 한 후발 신문 지국을 운영하고 있는 정진호(가명)씨는 “우리도 전화기를 경품으로 쓰고 있지만 어떤 지국에선 자전거를 주고 있다”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대전지역에선 또 무가지를 길게는 1년까지 넣어주기도 하고 구독신청만 하면 스포츠지와 경제지 등 2∼3개 신문을 한꺼번에 넣어주는 사례도 있다고 한다. 정씨는 “이런 지국간 경쟁 상황을 알고 있는 어떤 독자는 무슨 경품을 주느냐고 먼저 묻기도 한다”며 “독자 의식도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앞서 안산지역의 김광호 지국장은 “독자들이 처음부터 경품을 원했겠는가. 경쟁지 독자를 뺏어오기 위한 방편으로 이런 저런 경품을 주다보니까 계속 가격대가 높아진 것이다. 신문시장을 이 지경으로 만든 것은 바로 신문사자신”이라고말했다.

전남 여수지역에서 한 신문 지국을 운영하는 김 아무개씨는 “순천에선 자전거를 경품으로 준다고 한다. 여수지역에서는 아직 전화기, 선풍기를 주로 쓰지만 어떤 신문 지국에서는 여름철에 에어컨을 쓸 계획이란 얘기도 들었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은 신문협회 차원의 자정 결의에 대한 일선 지국의 체감지수가 ‘제로’에 가깝다는 것을 보여준다. 현장 지국장들은 본사 차원의 ‘결단’이 없는 한 이런 결의가 현장에선 아무런 영향을 미칠 수 없는 ‘공수표’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사실 이번 결의문에서도 “전 회원사의 자발적인 규약준수 의지”를 다짐하고 “신문사들은 단기간에 가시적인 판매시장 정상화 효과가 나타나도록 강력하고 실천적인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으나 구체적으로 어떤 조치인지는 설명이 없는 실정이다.

때문에 과당 경쟁을 제어하기 위해선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편에선 “정부가 신문고시를 제정한 다음 뭘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불만의 목소리도 있다.

김동원 기자 [email protected]







[신문협 공정경쟁위] 시장질서 제어‘능력밖’



신문협회가 신문시장질서 회복 특별 결의문을 발표한 것과 관련해 주목을 받은 곳이 바로 신문공정경쟁위원회다.

자율규약 체제 아래서 유일한 규제기구인 만큼 신문공정경쟁위원회가 앞으로 어떤 모습을 보이는가가 이번 신문협회 특별 결의의 실효성 여부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와 같은 신문공정경쟁위원회의 위상과 권한 아래선 큰 활약을 기대하긴 어렵다는 지적이 많다.

이미 선을 한참 넘어버린 과열 혼탁상을 제어하기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중국산 자전거가 경품으로 등장한 이후 지난 3월에는 한 신문사 지국에 6000만원에 이르는 위약금을 부과한 것은 물론, 26일 열리는 6월 정기회의에선 위원회 구성 이후 1개 지국에 대해선 최고액으로 기록될 2억4000만원의 위약금 부과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이처럼 고발 접수된 사례에 대해 엄정한 기준을 적용, 제재를 내리고 있지만 과당 경쟁을 주도하고 있는 일부 신문사의 반응은 시큰둥하기만 하다. 한마디로 “위약금을 물면 그만 아니냐”는 식인 것이다. 신문공정경쟁위원회의 한 위원은 “고발 접수된 사례에 대해 충실하게 위약금 부과를 결정하지만 자금력이 풍부한 일부 신문사의 경우는이를 감수하고과당경쟁을 지속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사정과 관련해 신문공정경쟁위원회 내부에선 현재 공정경쟁위원회 회칙 상으로는 공개사과 명령을 거부한 경우에나 가할 수 있는 징계사실 공개 의무를 위약금 부과부터 적용하는 등 제재조치를 강화할 필요성이 이전부터 제기돼 왔다. 신문공정경쟁위원회의 한 관계자는 “지난 4월부터 위약금 부과 사실을 보도자료 등으로 공개하는 방안이 얘기되고 있으며 위원회의 6월 정기 회의에서도 거론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위약금 부과 결정에 대한 공개 문제는 공신력과 이미지 손상 등을 우려한 해당 신문사들의 반발 또한 적지 않을 것으로 보여 실현 여부는 아직 미지수다.

또한 과열 경쟁으로 고발사례가 늘어나고 있지만 이를 맡아 처리하고 위원회 활동을 보좌할 실무 인력은 늘지 않고 있다. 현재 4명의 사무국 인원으로는 고발 사례에 대한 조사활동은 가능하지만 사전 예방이나 마찰 해결을 위한 충분한 조정 기능을 맡기에는 여전히 부족하다.

때문에 현재와 같은 신문시장의 과열 혼탁상을 해결하기 위해선 신문공정경쟁위원회의 위상과 권한에 대한 재조정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신문공정경쟁위원회의 한 판매분과위원은 “형식상 독립기구이긴 하지만 예산과 인원 모두 신문협회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에서 자유로운 위원회 활동을 기대하긴 어려운 게 사실”이라면서 “재정을 독립시킨 사단법인화하는 방안 등도 검토할만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신문공정경쟁위원회 관계자는 “위원회의 기능을 강화한다고 해도 과당 경쟁을 주도하고 있는 일부 신문사들의 태도 변화 없이는 문제 해결이 쉽지 않을 것 같다”며 “위원회 차원에서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울 경우엔 공정거래위원회 고발 등 극약처방을 할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말하기도 했다.







[신문사 판매국] “우리는 억지로…” 책임 전가만



신문시장의 과열 경쟁은 신문사들도 불만스럽기는 마찬가지여서 나름의 입장을 밝히고는 있지만 뽀족한 해결책을 찾지는 못하는 실정이다. 고가 경품과 과도한 무가지 제공이 온당치 못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공동 대응책보다는 다른 사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중앙일보 고객서비스본부의 한 간부는 “신문사들이 스스로 노력해야 한다”는 원칙론을 제기하면서 “대규모 위반사례가 적발된 일부 신문에 대해선 신문협회차원에서강력한 대처할 필요가 필요하다”고 경쟁사를 겨냥했다. 이 간부는 이어 “우선 신문협회 차원에서 자율적으로 처리해야 하지만 심한 경우엔 공정거래위원회로 넘기는 방안도 생각해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동아일보와 조선일보 판매국쪽에선 과당경쟁 문제와 관련해선 “입장 표명을 않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경향신문 판매국의 한 관계자는 “ABC 실사를 앞두고 선두 다툼을 벌이고 있는 ‘빅3’가 과당경쟁을 촉발했다고 볼 수 있다. 사실 경향을 포함에 그밖의 신문사들이야 1등을 하려는 것이 아니지 않느냐. 지국에 공문 발송 등을 통해 경품 사용을 자제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빅3’가 의지만 있으면 상당부분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며 “판매협의회 등을 통해 자정 노력을 지속적으로 제기할 방침”이라고 덧붙였다.

한겨레 독자서비스본부의 한 간부 역시 “회사 차원에선 경품을 쓰지 말 것을 부탁하지만 일선 지국 사정상 어쩔 수 없는 경우가 있다”면서 “신문협회 차원의 결의문이 채택된 만큼 당분간 각 신문사의 움직임을 지켜봐야 할 것 같다. 하지만 각 사가 이후에도 정상화할 의지가 없다면 진짜 심각한 상황이 올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한국일보 판매국 관계자는 “메이저 신문들의 위약금 부과 사례가 가장 많은 것을 봐도 문제가 어디서 비롯됐는가를 쉽게 알 수 있다. 또 이들을 제외한 신문사들은 생존하기조차 힘든 상태이기 때문에 경쟁은 자연발생적으로 벌어질 수밖에 없다고 본다. 안타까울 따름”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특단의 대책이 마련된다고 해도 1건당 100만원의 위약금도 마다하지 상황에서 해결될 문제는 아닌 것 같다”고 덧붙였다.

한편, 대한매일의 판매국 관계자는 “신문사들이 제 살 깍아먹기식의 물량 공세를 자제해야 하겠지만 신문들의 경품 제공 유혹을 과감히 떨쳐버리지 못하는 독자들의 태도에도 문제는 있다”고 말했다. 김동원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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