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영구 귀국한 재일교포 무기수 권희로 씨가 내연의 여자와 짜고 여자의 남편을 살해하려한 혐의로 구속됐다는 뉴스는 대부분의 독자를 혼란스럽게 하기에 충분했다. 독자들이 기억하는 한 권 씨는 한국인 차별대항에 항의한 ‘영웅’이었기 때문이다. 적어도 지난해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된 권 씨의 모습은 그랬다.
당시 언론은 권 씨를 “한국인 차별대항 야쿠자 살해 인질극” “안중근 의사가 전전의 영웅이라면 권희로씨는 전후의 영웅” “민족적 지사”등의 표현으로 미화하는 데 지면을 아끼지 않았다. 방송사들은 권 씨의 귀국에 맞춰 생중계를 계획하기도 했고, 신문사들은 권 씨의 수기유치를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기도 했다. 이에 대해 일본 언론은 “단순 흉악범에게 왜 그러느냐”며 이같은 우리 언론의 태도가 한일관계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기사를 내보내기도 했었다.
이렇듯 민족 감정까지 자극해가면서 언론이 만들어 낸 영웅이 1년 만에 살인미수로 구속되는 상황을 보고 해당 기사를 작성한 기자들은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독자들보다 더 황당하고, 착잡하고, 쑥스럽지 않았을까.
결국 권 씨는 영웅이 된 지 1년만에 ‘권희로, 40대 여성 집에서 치정 어린 난동’이라는 제목과 함께 언론 지면의 한쪽 귀퉁이를 차지했다. 반면 일본 언론은 이번 사건을 크게 다루며 “그동안 한국에서의 권씨에 대한 평가가 틀렸다는 것을 증명한 것”이라고 보도했다고 한다.
한 개인이 하루아침에 영웅에서 흉악범으로 곤두박질치는 것을 보며 우리 언론의 ‘한건주의’가 낳은 비극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박미영의 전체기사 보기
Copyright @2004 한국기자협회.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