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행이란 이름의 특혜 'STOP'
권-언 유착 고리 끊고 비판.감시기능 충실해야
“언론인 또는 언론사라고 해서 특혜 특권을 기대해선 안되며 어떤 언론이라도 결코 성역일 수 없다. 너나 없이 언론사 경영이나 사업 범위는 국민 앞에 투명하고 떳떳해야 한다.”
언론 세무조사를 둘러싼 논란이 한창인 요즈음, 이를 찬성하는 언론단체나 언론학자의 주장이 아니다. 지난 99년 10월 중앙일보 홍석현 사장이 구속됐을 당시 ‘중앙 홍사장 구속과 언론자유’란 제목의 동아일보 사설의 내용이다. 당시 조선도 같은날 사설에서 “그 어떤 권력도 탈세로부터 면책될 수 없으며 어떤 명분도 탈세를 정당화할 수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1년 9개월여가 지난 지금 세무조사로 인해 사주들이 검찰에 고발당하고 소환조사가 임박하자 조선과 동아의 모습에선 당시의 추상같은 원칙론은 찾아 볼 수 없다.
오히려 이번 세무조사가 신문업계의 관행을 무시하고 세법을 무리하게 적용한 결과임은 물론, 현 정부를 비판해 온 주요 언론사들을 길들이기 위한 정치적 의도가 깔려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세무조사 결과에서 드러난, 허위 주식매매 계약서 작성을 통한 증여세 탈루, 친인척과 임직원 등의 차명계좌를 통한 돈세탁, 공익재단을 이용한 우회 증여 등 다양한 방법을 동원한 언론사들의 탈세 행위는 이런 언론탄압 주장을 무색케 만들고 있다.
때문에 언론탄압을 주장하기 이전에, 관행이란 이름으로 지속돼 온 언론사에 대한 각종 특혜와 “언론사는 세무조사의 예외지대”로 대표되는 언론사의 특권의식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지적이 언론단체와 학자들 사이에서 강하게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한 신문사의 편집국 간부는 “이제 신문사들도 과거 특권의식에서 벗어나 경영활동과 관련한 세무조사를 당연한 절차로 인정하고 경영 투명성 확보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언론이 ‘성역’으로 일컬어지고 일반기업의 경우 5년에 한번씩 정기적으로 받는 세무조사나 공정거래위원회의 부당내부거래 조사를 여태껏 받지 않는 특권을 누려온 데는 권력과의 유착이란 역사적 배경이 자리잡고 있다.
가깝게는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지난 94년 세무조사를 하고도 조사 결과대로 세금을 추징하지 않고 깎아 준 것을 들 수 있다. 김 전 대통령은 “탈세 규모가 너무 엄청나 추징 세액을 깎아줬다”며 특혜를 준 사실을 거리낌없이 밝히기도 했다.
과거 쿠데타로 권력을 장악한 군부는 취약한 정통성을 강화하기위해언론사들을 회유했다. 현행법을 무시한 건물 신·증축을 눈감아 주는가 하면, 윤전기 등 고가 장비를 도입할 때 관세를 인하해주고, 적자가 누적된 상황임에도 은행 대출을 알선해 주는 등 언론사에 다양한 혜택을 베풀었다. 언론은 그 대가로 권력에 대한 우호적인 논조로 ‘공생’관계를 형성했다.
언론노조의 한 관계자는 “이런 특혜로 얼룩진 권-언유착의 고리를 끊고 언론이 권력과의 관계를 올바로 정립해야만 권력에 대한 엄정한 비판과 감시라는 언론 본래의 기능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특권의식은 기자사회에서도 시급히 불식돼야 할 문제로 꼽힌다.
비판적 보도를 우려한 기업체와 관공서 등 출입처로부터 골프 접대를 받는다거나, 명절 때마다 비싼 선물은 물론, 기차표까지 제공받아 온 ‘관행’에 대한 문제제기는 사실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처럼 기자는 뭔가 ‘특별한 대접’을 받아야 한다는 특권의식이 언론과 국민과의 거리를 더욱 멀어지게 하고 있다. 한 기자는 “주된 취재 대상이 기업 임원들이나 고위 관료들이 대부분이다 보니 기자 스스로가 이들과 동류의식을 갖게 되는 지도 모른다”며 “아직 대다수 국민에겐 사치성 스포츠로 인식되는 골프 접대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고 말했다.
또 다른 기자는 “노동현안, 사회복지 등 국민들의 피부에 와 닿는 문제들이 중심이 되지 못하고 뒷전으로 밀리고 있는 것도 이런 기자들의 특권의식과 관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결국 “모든 자유가 그렇듯이 언론의 자유도 지키고 향유하기 위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책임과 의무를 결코 외면할 수 없다”는 지난 99년 중앙 홍석현 사장 구속 당시 동아의 사설은 그래서 여전히 유의미한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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