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범환 YTN 사회2부 차장대우 | ||
“어떻게 70대 어민이 젊은 여성 셋을, 그 것도 건장한 청년까지 있었는데…” 공포의 해상 연쇄 살인사건 취재는 이렇듯 원초적 회의에서 시작됐다.
보성으로 놀러간 뒤 바다에서 잇따라 떠오른 남녀 대학생 시신 2구. 여학생은 외상 하나 없는 전형적인 익사체였고 남학생도 1차 부검결과는 직접 사인 불명. 다만 발목의 골절은 외부의 가격보다는 추락에 의한 것으로 보인다는 부검의의 소견이 나왔다.
이렇듯 띄엄띄엄 발견된 시신은 언론의 관심대상이 아니었지만 체육교육과에 다니는 남학생은 만능스포츠맨이어서 그렇게 쉽게 죽을 리가 없다는 얘기가 들렸다. 그 때부터 이번 사건에 대한 취재가 시작됐다. 행적 수사를 맡은 보성경찰서에 계속 상황을 문의하고 정확한 사망원인 등 여수해경의 수사진척 여부를 지켜봤지만 추락에 의한 익사로 굳어지는 분위기였다.
초기 취재에서 건진 것은 남학생의 발목 골절과 여학생이 마지막으로 119에 전화를 걸었다는 것. 그러나 112가 아니고 목격자도 없어 범죄관련 가능성은 낮다고 봤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한 달 가까이 지난 추석 연휴에 같은 바다에서 20대 여성 여행객 2명이 실종됐다가 1명이 숨진 채 발견됐다. 게다가 한 여성은 긴급한 상황을 알리는 구조요청 메시지까지 보냈다.
이건 뭔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4명의 휴대전화 마지막 위치가 같은 율포해수욕장 앞바다였기 때문이다. 곧바로 보성에 가 보니 경찰은 여성 2명을 배에 태웠다는 70대 어민의 신병을 이미 확보해 놓고 있었다.
경찰은 용의자가 안전사고라며 혐의사실을 부인해 아무 것도 말해 줄 수 없다고 했다. 그런데 취재결과 실종된 곳과 시신 발견 장소가 같을 뿐만아니라 여자 시신에서도 발목 골절상이 나온 것으로 확인됐다.
진짜 고민은 그 때부터 시작됐다. 뭔가 냄새는 나는데 어떻게 두 사건의 관련성을 캘 것이며 범행 동기는 무엇이었을까. 가장 큰 문제는 70대와 여성 2명, 특히 건장한 1학년 남자 대학생을 연결시키는 것이었다. 동기는 성범죄 밖에 없을텐데 아무래도 무리였다. 그래서 용의자의 주변 취재에 들어갔다. 그런데 용의자가 뱃일을 오래해 나이나 체격에 비해 힘이 장사이고 자주 부인 대신 단골 식당 아주머니 등을 배에 태우고 어장에 갔다가 한 나절 만에 돌아오는 등 여성 편력이 심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제 중요한 것은 물증확보, 경찰서 주변 사진관을 뒤졌다. 역시 거기에 결정적 단서가 있었다. 경찰이 조서에 넣기 위해 현상을 맡겨 놓은 용의자의 알몸 사진을 보게 된 것이다. 촬영은 하지 않는 조건으로 설득해 어렵게 본 용의자의 알몸 사진에는 곳곳에 상처가 있었다. 상처는 타박상 뿐만 아니라 전형적으로 여자들에게 꼬집혔을 때 나타나는 상처가 많았다. 그리고 어선에서 여성들의 머리카락도 다수 발견됐다는 것을 확인했다.
이런 취재결과를 토대로 과감하게 두 사건의 관련 의혹을 제기하고 성범죄 가능성을 내비치며 기사를 쓰게 됐다. 리포트가 나가는 날까지도 용의자는 범행을 강력하게 부인하고 있었고 경찰은 성범죄 가능성은 말도 꺼내지 않고 있었다.
게다가 2차 피해자들과의 관련성만 캐고 있었지 1차 피해자 2명까지는 엄두도 못 내고 있었다. 희대의 해상 연쇄살인 사건이 백일 하에 드러나긴 했지만 2차 피해를 막지 못한 점, 보성의 관광객 감소, 노인의 성 등 많은 것을 생각케 하고 아쉬움도 남는 취재였다.
김범환 YTN 사회2부 차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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