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쿠데타로 집권한 신군부가 언론인들을 대량 해직시킨 뒤 취업까지 제한한 보안사 내부 문건이 언론에 의해 공개된 데 이어 문화공보부와 언론사가 언론인 대량 해직에 주도적으로 개입한 것을 드러내는 문화공보부 내부 문건이 잇따라 공개됐다. 이로써 그동안 부당 해직과 관련한 물증이 없어 보상 및 명예회복 관련 입법 추진에 어려움을 겪던 해직 언론인들의 입법 추진 움직임에 진전이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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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화언론인 취업허용 건의’라는 제목의 이 보안사 문건은 해직사유에 따라 정화대상 언론인을 A, B, C등급으로 나누고 이에 따라 취업을 제한한 것으로 당시 보안사령관이던 노태우 전 대통령의 결재사인이 기재돼 있다.
이 문건에 따르면 ▷국시부정 행위자, 제작거부 주동자(극렬분자) 및 배후조정자, 특정 정치인 추종 및 유착자는 A급으로 분류, 취업을 영구제한 했으며 ▷제작거부 주동 및 선동자, 부조리 행위자(억대 이상 치부자), 기타 파렴치 행위 및 범법자는 B급으로 취업을 1년간 제한했다. 또 ▷단순 제작거부 동조자, 부조리 행위자, 자체 정화자 등은 C급으로 취업을 6개월 제한했다.
이에 따라 정화대상자로 분류된 언론인은 1차에서 A급 12명, B급 97명, C급 602명 등 711명, 2차에서 A급 5명, B급 13명, C급 53명 등 71명으로 총 782명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에는 A급으로 분류된 박권상 KBS 사장, 서동구 언론재단 부이사장, 표완수 경인방송 사장, B급으로 분류된 노성대 MBC 사장 등 현재 언론계 거물급 인사들이 상당부분 포함돼 있다.
특히 이번에 공개된 문건은 각 개인에 대한 해직사유를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있다. 당시 동아일보 논설주간이었던 박권상 KBS사장의 경우는 ‘김대중 정계 출현부각을 간접지원, 평소 대정부 비판 자세 견지자로서 당시 투위 복직문제에 배후조정’이라고 쓰여 있다.
한편 정화대상자에 대한 해직사유 가운데에는 ‘부조리’도 상당부분 포함돼 있어 이번 기회에 80년 해직 언론인 가운데 옥석을 가릴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문공부가 작성한 4건의 문건은 ▷사이비 언론정화 방안(1980.7) ▷언론정화 중간보고(1980.8.11) ▷언론인 정화 결과(1980.8.16) ▷정화언론인 취업문제(1980.9.10) 등으로 언론인 해직과 관련해 문공부와 언론사가 주도적으로 개입했음을 드러내고 있다.
이 문건들에따르면보안사에서 작성한 1,2차 명단에 포함된 782명 가운데 222명이 구제된 반면 373명이 추가로 포함돼 총 933명이 해직된 것으로 기록돼 있다.
특히 80년 8월에 작성된 ‘언론정화 중간보고’에 따르면 방송협회와 신문협회가 각각 자율결의를 통해 반체제, 비위, 부패 언론인을 제거할 계획이라는 내용이 포함돼 있어 언론사가 조직적으로 80년 언론인 대량 해직에 개입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또 이 문건에는 자율정화 형식과 관련 ▷각 사 책임하에 문제 언론인을 스스로 제거하는 자율정화 형식 고수 ▷1차적으로 각사가 자체 정화위를 통해 대상자 선정 ▷문공장관은 자체 선정 명단을 비공식적으로 협의받아 누락된 문제 언론인을 은밀히 사장에게 통보한다고 명시돼 있어 각 언론사주와 문공부간의 긴밀한 협조가 이루어졌음을 드러냈다.
이경일 해직언론인협의회 회장은 “해직 후 20년이 넘도록 아무런 배상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이번 문건으로 80년 대학살이 보안사와 문공부의 주도로 해당 언론사의 협조하에 이루어진 것이 만천하에 드러난 만큼 정부당국이 80년 해직언론인 국가 배상에 보다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문화부의 한 관계자는 “해직언론인 문제가 장관의 국무회의 발언으로 문화부에서 추진하는 것으로 비춰지고 있으나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국방부, 법무부, 문화부 등 3개 부처의 협의가 필요하고, 여야간 쟁점은 정치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며 “국회 입법 과정에서 추진돼야지 정부입법으로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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