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의 언론통제, 시사저널만이 아닌 언론계 전체 문제"

[특별좌담]시사저널 사태가 남긴 의미와 가야 할 길

지난해 6월17일 삼성기사삭제 사건으로 촉발된 시사저널 사태가 1년여의 투쟁 끝에 마침내 종지부를 찍었다. 노조원 22명은 지난 2일 회사와 결별을 선언하는 동시에 시사저널 창간정신을 이어받는 새매체를 창간하겠다고 선포했다. 이들은 6일 사표를 낸 뒤 참언론실천시사기자단을 출범, 새매체 창간 작업에 힘을 쏟고 있다.
본보는 9일 전 시사저널 노조 정희상 위원장과 참언론실천시사기자단 문정우 단장, 장영희 부단장, 독자 모임인 시사모(시사저널을사랑하는사람들의모임) 조형근 부회장을 초대, 시사저널 사태가 남긴 의미와 앞으로 걸어갈 길에 대해 듣는 자리를 마련했다.


◇좌담회 참가자(가나다순)
문정우 참언론실천시사기자단 단장, 장영희 참언론실천시사기자단 부단장, 정희상 전 시사저널 노조위원장, 조형근 시사모 부회장, 사회=본보 김신용 국장

사회=1년간 힘겨운 가시밭길을 걸었다. 시사저널 투쟁의 의미를 말해 달라.



   
 
  ▲ 정희상 전 시사저널 노조위원장  
 
정희상(전 시사저널 노조 위원장)=
군사정권 시절, 언론은 정치권력에 대항해 지난한 자유언론 투쟁을 벌인 바 있다. 1997년 IMF(국제통화기금) 사태 이후엔 자본권력으로부터의 생존이 화두로 떠올랐다. 독립 언론 정신 또한 이런 세월 속에서 많이 훼손되었고 학계와 언론계로부터 ‘위기’라는 진단을 받기에 이르렀다.

지난 1년간의 투쟁은 그러한 진단의 선봉에 서 있었다. 모든 언론이 가진 문제가 시사저널 사태로 인해 비로소 곪아 터진 셈이다. 때문에 이번 시사저널 사태는 언론계 전체의 문제로 규정돼야 옳다. 이제 전 시사저널 기자들이 만드는 새매체는 자본 권력으로부터 독립 언론을 지키는 사명과 소명을 지녔다.

조형근(시사모 부회장·서울대학교 사회발전연구소 사회학 박사)=시사모를 통해 소시민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일각에서는 1987년도 이후의 민주주의 투쟁 동력이 약화되고 민초들 저변으로 확대되는 것 역시 약화됐다는 평가가 있다.

하지만 이번 사태를 겪으면서 지난 20년간의 성과가 산산이 부숴진 것이 아니라, 서민 문화 속에 깊숙이 자리하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시사모 회원들은 민주사회의 건전한 독자의 일원으로 지속적으로 활동하겠다는 소망을 가지고 있다.

문정우(참언론실천시사기자단 단장)=이번 사태를 겪으며 두 가지를 느꼈다. 하나는 우리의 생각보다 자본 권력 힘이 엄청나게 강력하다는 것이다. 과거 동아투위 때보다 시사저널 문제에 대해 일간지를 위시한 메이저 언론들의 관심이 매우 적었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 못지않게 자본에 언론이 짓눌려 있다는 우려도 굉장했다. 노조통장이 화수분이라고 불릴 정도로 평범한 독자들이 투쟁을 지지한다며 많은 후원금을 보내왔다. 우리 사회가 잘못 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민초들의 의식이 강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 장영희 참언론실천 시사기자단 부단장  
 
장영희(참언론실천시사기자단 부단장)=
자본권력에 의한 언론통제는 시사저널 사태에서 구체적인 증거를 남겼다. 우선 언론 소유주의 자의적 개입이 상당히 문제가 되고 있으며 이 부분에 대해 언론계가 논의를 해야 할 때라는 것이다. 여기에는 삼성이라는 대형 광고주에 의해 길들여진 기자들이 스스로 자기검열을 강화했다는 문제도 지적됐다.

사회=자본권력에 맞선 편집권 독립이라는 가치가 왜 중요한지, 국가권력에 이어 자본 권력에 대한 편집권 독립이 왜 화두로 떠올랐는지 논의해 달라.

장영희=한국언론은 30년, 20년 전과 달리, 자본권력에 통제를 받아들이는 식이다. 특히 자본의 통제는 과거 정치세력에 의한 통제와는 다르게 해직되고 쫓겨나는 등의 탄압을 통해 펜이 꺾이는 것이 아니라 구부러지는 식으로 전개되고 있다.

펜을 꺾는 것보다 구부리는 것은 훨씬 나쁜 결과를 가져온다. ‘돈이 되는 기사, 돈 주인이 좋아하는 기사, 돈 주인이 제공하는 기사’만 나오게 된다. 언론이 추구해야 할 가치에 비해 정 반대로 가는 것이다.

정희상=수십 명의 기자들이 국회, 사건사고 현장에서 재벌기업의 피해 사례를 취재한다. 하지만 어느 곳에서도 기사는 나오지 않는다. 한국 사회가 굉장히 큰 위기로 가고 있다는 증거다. 해악을 끼칠만한 것은 무엇이든 어젠다 세팅을 해야 하는데 공론의 장을 죽일 수 있는 힘을 자본이 가지게 됐다. 이 상황이 지속될 경우 10년 안에 한국 언론은 큰 위기를 맞을 것이다.

장영희=시사저널은 굉장히 상황이 좋지 않았던 2005년 데이터만 놓고 보더라도 구독료 대 광고 비율이 5.5대 4.5였다. 광고가 안돼서 그런가하면 그도 아니다. 광고는 시사주간지 시장에서는 매번 1위를 차지했다.

2004년 데이터를 가지고 통계를 내니까 시사저널은 광고 수익의 6.6%가 삼성 광고였는데, 언론계 평균은 8%로 나타났다. 또 15~16%에 이르는 매체도 많았다.

광고수입을 줄여야 한다기 보단, 판매수익을 잡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이야기다. 자본의 힘이 방대해지는 시대에는 재정난 극복 방법이 없다.

사회=새매체 창간을 선포했다. 어떤 매체를 만들 것인가. 창간배경부터 창간 방법, 매체의 정체성 등은 무엇인가.



   
 
  ▲ 문정우 참언론실천 시사기자단 단장  
 
문정우=
기본을 지키는 매체를 만들고 싶다. 현 언론은 기본마저 무너져 있다. 기본을 지키면 상업성은 자연스레 따라올 것이다. 기본이라는 것은 외부의 어떤 조건을 생각하지 않고 편집국 내부에서 자유롭게 안건을 정하고 정해진 안건에 따라 성실히 취재하고 그 내용을 독자에 전하는 것이다. 이렇듯 이성적 판단에 따른 것에 대해 자본 등 외부의 세력들이 굴복하는 체제가 가장 기본적인 것이다.

장영희=기존에 몸담았던 시사저널의 성역없는 보도, 정치나 자본권력으로부터 독립, 사실과 진실의 추구 등 저널리스트라면 누구나 추구해야 할 가치는 높이 받들 것이다.

이러한 대원칙 아래에서 시장이 바라고 독자들이 원하는 것, 어떠한 새로운 매체를 할 것인가 하는 고민은 계속 해 나가야 한다.

또 사실상 사라진 자유언론의 기치를 좀 더 내세울 것이다. ‘파르레시아(자유언론)’의 첫 시도로 읽어주면 좋겠다. 파르레시아는 ‘솔직함’ ‘진실’ ‘위험’ ‘비판’, 그리고 ‘의무’ 등 5가지로 구성돼 있다. 권력에 비판적인 것을 솔직하면서도 지적으로 다루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파르레시아 그 자체인 매체를 만드는 것이 소망이다.

광고 없이도 발행할 수 있는 매체 만들어야

정희상=싸움을 거쳤기 때문에 다른 역할도 규정할 수 있으리라고 본다. 자본 권력으로부터 완전히 독립적으로 갈 수 있는, 광고 없이도 갈 수 있는 매체여야 한다.

규모가 크지 않기 때문에 더 자유롭게 발언할 수 있는 매체가 될 것이라고 자부한다. 또 자본에 대한 견제와 감시 기능이 더 많은 매체가 될 것이다.



   
 
  ▲ 조형근 시사모 부회장  
 
조형근=
섭섭해진 이름이지만 시사저널이 가진 장점들, 사실과 진실 깊이 있는 분석, 좋은 우리말에 대한 고집 등은 당연히 지켜나가리라 믿는다.

또 시사저널을 읽는 독자층이 좀 더 횡적, 종적으로 넓어지길 바란다. 기존 시사저널 매체가 더 굳건히 자리 잡기 위해서는 젊은 세대들의 고민과 문제를 더 큰 한국사회의 문제로 이끌어낼 수 있어야 한다.

사회=새매체를 시작하기에 앞서 가장 큰 문제는 단연 투자자금 확보다. 현재까지 진행과정, 주주모집 방법은 어떻게 모색되고 있는가.

장영희=기자들이 잠정적으로 합의한 것은 세 그룹의 주주를 모으자는 것이다. 이들은 퇴직금을 약정한 사원 주주, 소액주주, 대형 투자자들이다.

큰 덩어리의 투자자들은 내용적으로 우리들이 앞세우는 기치를 공감하는 한편 앞으로 정관이나 편집규약 등에서 제도화되는 가치에 대해 공감하는 건강한 자본가여야 한다.

이른바 소액주주라고 부르는 분들, 구체적으로는 ‘50만원 이상 1천 만원’ 이하 소액 주주들을 모을 것이며 시사저널 지원자 겸 감시자가 되도록 할 예정이다. 현재로서는 생각보다 상황이 낙관적이라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소액주주 키우는 것이 자유언론 만드는 길

문정우=건전한 대형 자본유치는 해야겠지만 되도록 소액주주와 기자들의 퇴직금으로 토대를 마련할 것이다. 소액주주를 키우는 것이 자유로운 언론을 만드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사회=가장 힘들었던 점 밝히지 못한 이야기들.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해 달라.

장영희=경제적 고통이 가장 심했다. 그나마 제 경우엔 외벌이에 비해 나았다. 집도 없는 외벌이 후배들은 정말 힘들어 했다.

이번 사태를 통해 혹독한 대가를 치렀지만 소득도 크다. 새매체는 ‘시사기자단 양심으로, 독자의 힘으로 취재현장에 돌아가자’는 것이 모토인데, 예전에 비해 독자들의 눈높이 의중을 읽은 매체를 만들겠다는 각오가 더욱 단단해졌다.

문정우=다음에 만든 ‘블로그-거리 편집국’에서 특종도 했다. 한 기자는 밤이건 새벽이건 전화해서 데스크 보라고 하고, 신경질 내고 그랬다. 새벽에 그 짓을 하는데 ‘미친 자들이다. 이들이니까 시사저널 사태가 여기까지 왔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다.

독자들의 눈높이 의중 읽는 새 매체 창간

마지막에는 집행부가 단식을 하는 모습에서 너무 화가나 욕도 했다. 이 사람들이 그렇게 까지는 하기에는 너무 소중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동료들에게 감사하고 고맙다.

조형근=시사모 회원들과 기자들이 심상기 회장 집 앞에서 1인 시위, 기자회견 등을 하면서 사측이 고용한 용역 직원들과 충돌하고 촬영을 저지당하고 했다. 그 때마다 “참 한국의 언론 자본가, 복도 없다. 이렇게 진심 전달하려는 독자가 많은데 스스로 쌓아올린 힘을 이렇게 내 차는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의 언론은 자본가보다 독자, 민초에 희망을 걸어야 할 것 같다.
정리=곽선미 기자 [email protected] 곽선미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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