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지난달 22일 발표한 ‘취재지원 선진화방안’에 대해 기자사회의 비판 여론이 거세다.
이러한 비판여론 속에 경찰청, 환경부, 통일부, 외교부 등을 출입한 바 있는 연합뉴스 이충원 기자(현 스포츠부)의 글이 눈길을 끌고 있다. 그는 5월31일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글에서 “이번 취재 제한 조치는 순서상으로나 기자사회 현실을 볼 때 잘못됐다”고 비판하고 나섰다.
이충원 기자는 ‘기자실 폐지-시시비비’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통일부가 특정 언론사에 대해 왜곡 보도라며 출입 제한 운운 지경까지 이르렀다”며 “일부 관료들은 늘 저런 식으로 ‘지뢰’를 밟는다. 저러면 ‘충성’인줄 아는지, 이번 기회에 미운 털 박힌 기자들을 혼내 줄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라고 운을 뗐다.
그는 “현 정부가 들고 나온 이른바 ‘취재 지원 선진화 방안’은 아무리 생각해도 순서가 잘못됐다”면서 “현재의 기자실 취재 시스템은 분명 문제가 있지만 그런 문제 있는 시스템이 지금까지 남아있는 이유도 있는 법”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법원, 검찰청이 서초동으로 옮겨갈 당시에도 법원 측이 미국의 예를 들어 법원 기자실을 폐지하고 검찰만 남겨두자는 주장을 폈었다”면서 “그러나 당시 취재환경은 경찰, 검찰의 사전 취재만으로도 법원의 판결 결과를 알 수 있을 만큼 판사들이 ‘허수아비’ 노릇을 했으며 빠른 보도를 원하는 기자들의 속성상 이같은 주장은 ‘억지’였다”고 꼬집었다.
이 기자는 이와 함께 기자협회에서 발간한 바 있는 ‘기자통신’의 미국 사례를 덧붙여 예로 들며 “(미국은) 기자나 일반 시민은 전화상으로 경찰에 사전 정보를 요구하면 간략한 정보를 요구할 수 있을뿐더러 이를 관료들이 거부할 경우 법원에 정보공개가처분신청을 내서 하루만에 결정문을 들고 정보공개를 받아 낼 수 있을 정도”라고 강조했다.
이어 이 기자는 “관료들은 기자들의 꼴을 보기 싫다면 기자실 지었다, 브리핑룸 지었다, 통합브리핑룸 지었다 하며 국민 혈세를 낭비하기 전에 정보공개 제도부터 손질하라”고 지적했다.
그는 “관료주의와 대중주의(포퓰리즘)의 기묘한 예를 보여주는 현 정부는 현 기자실 제도가 갖고 있는 문제점을 강조하면서 임기 내내 이용해온 네티즌들의 반(反) 언론 정서를 이용하며 그것이 여론인양 ‘언론만 반대하고 있다’고 선동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다음은 이충원 기자의 글 전문이다.
'기자실 폐지' 시시비비
통일부가 특정 언론사에 대해 왜곡 보도라며 출입 제한 운운하는 지경까지 이르렀네요. 일부 관료들은 늘 저런 식으로 '지뢰'를 밟습니다. 저러면 '충성'인줄 아는 건지 아니면 이번 기회에 미운 털 박힌 기자를 혼내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지.
현 정부가 들고 나온 이른바 '취재 지원 선진화 방안'은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순서가 잘못됐습니다.
현재의 기자실 취재 시스템은 분명 문제(어떤 문제인지는 글 뒷부분을 보시길.)가 있지만 그런 문제 있는 시스템이 지금까지 남아있는 이유도 있는 법이죠.
그런데도 임기 내내 지키지 않는 정보공개 약속은 이번에도 "추진하겠다"고만 해놓고는, 기자실은 '일단' 없애겠다는 건 사실상 취재를 막겠다는 뜻에 다름 아닙니다. 게다가 공무원 접촉 시에는 공보관실 허가를 받으라는 둥 가관입니다.
순서에 대해 얘기하자면 법원과 검찰의 예를 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도 언론사 선배 기자들에게 전해 들은 얘기일 뿐이니 정확성은 담보하기 어렵지만 판사들 중에는 2001년 전후까지도 이런 주장을 하는 분들이 있었던 걸 보면 완전히 틀린 예는 아닐 듯합니다.
원래 서소문에 있던 법원.검찰청이 서초동으로 옮겨갈 당시의 일이라고 합니다. 당시 일부 판사들이 주장하길 "미국에선 기자들이 검찰이 아니라 주로 법원을 취재한다. 우리 법에도 기소 전(前) 피의사실 공표 금지 조항이 있다. 그러니까 기자실은 검찰에는 두지 말고 법원에만 두면 된다"고 했다고 합니다. (혹시 이런 옛날 얘기를 꺼내들면 이 판사들과 비슷한 생각을 하는 현 정부 사람들이 '기소 전 피의사실 공표 금지 원칙'을 없애겠다며 검찰 기자실을 없애겠다고 들지는 않을까요? ) 물론 결과적으로는 언론사의 엄청난 반발에 부딪혀 지금처럼 검찰과 법원 양쪽에 기자실을 두는 형태로 귀결됐습니다만.
이 얘기를 들은 뒤 저는 그 판사들의 신념에 가까운 미국 숭배와 미국과는 전혀 다른 우리 현실에 대해 생각하면서 조소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사실 기자들이 법원에 취재하러 가지 않고 자꾸만 검찰청으로 몰려드는 건 다른 누구보다 법원 판사들 잘못이 큽니다.
지금은 그래도 많이 달라졌지만 서초동으로 법원.검찰청을 옮길 때만 해도 판사들은 영장실질심사제도를 제대로 활용하지 않았습니다.
당시는 검찰이 청구하는 영장이 거의 일사천리로 '통과'됐습니다. 더 노골적으로 얘기하면 검찰도 '지겟꾼'에 그칠 때가 많았고, 경찰이 신청하는 영장 내용이 검찰에서 재탕 되고, 구속 때 재탕 되고, 심지어 1, 2심 판결문에서마저 재탕 되는 일도 비일비재했습니다.
당시 경찰 형사계 반장들은 "우리가 영장에 '아'라고 쓰는지, '어'라고 쓰는지에 따라서 구속기간은 물론, 판결 내용도 바뀐다"라고 자신 있어 했고, 그 말이 일반 국민 눈에 신빙성이 있어 보였는지 당시 법조 브로커 사건에는 경찰관들이 종종 포함되곤 했죠.
이런 상황에서 속성상 조금이라도 빠른 보도를 원하는 언론에다 대고 "검찰 가지 말고 법원 가서 취재하라"는 건 '억지'일 뿐입니다.
우리도 미국처럼 불구속재판이 확립돼있다고 해봅시다. 왜 기자들이 구속 여부가 결정되기도 전에 검찰이나 경찰 가서 취재하겠습니까. 아무리 취재해봤자 나중에 어떻게 뒤바뀔지 모르는데...
판사들이 자기 권한도 행사 못한 채 '허수아비' 노릇을 해놓고는(그 당시에 국한된 얘기입니다.) 자기들 잘못은 모르고, (요즘 그 누군가처럼) 만만한 기자들보고 "미국에서 어찌하는 줄도 모르면서, 후진적인 언론이 검찰 가서 취재한다"고 비난한 셈이라는 게 제 개인적인 소감입니다.
판사들이 우리 법률에 의해 부여받은 권한, 즉 영장 기각 권한, 적부심 권한, 보석 권한, 공판중심주의 재판을 진행할 권한, 편견 없이 재판할 권한을 충분히 발휘한다면 기자들 등을 떼밀어서 검찰로 좀 가라고 해도 다들 기를 쓰고 법원에서 취재할 것입니다.
정부도 마찬가지입니다. 언젠가 기자협회에서 발행한 <기자통신>이라는, 지금은 폐간된 잡지에서 옛날 일부 판사들이 그렇게도 좋아하던 '미국' 어느 주(州)의 사례를 본 적이 있습니다.
그 주 한 신문사에는 경찰서 출입 기자가 따로 있는 게 아니라 한 명의 사건 담당 기자가 20개(숫자는 정확하지 않습니다만) 경찰서를 상대로 취재한답니다. 기자 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이 전화상으로 경찰서에 사건 정보를 요구하면 주요 사건에 대한 간략한 정보를 구할 수 있다고 합니다. 기자는 이 정보를 기초로 추가 취재를 하는 것이고요. 그 과정에서 기자나 일반 시민이 정보를 요구했는데 경찰이나 관료들이 합당한 이유없이 거부하면, 법원에 정보공개 가처분 신청을 내서 하루 안에 법원의 결정문을 갖고 합법적인 정보공개를 받아낼 수 있다고 합니다. 이 정도 되면 왜 쓸데없이 우리 형사님들 일하는 데 가서 '죽치고 앉아 기사 담합이나 하고"(요즘 칸 여우주연상 수상작을 만들고 한참 예술가로도 잘 나가시는 이창동 전 문화관광부 장관의 "쓰레기통 뒤져서 취재하라"는 말이 생각하는군요.) 있겠습니까.
관료 여러분, 기자들 꼴 안보고 싶으면 기자실 지었다가, 브리핑룸 지었다가, 통합 브리핑룸 지었다가 하면서 국민 혈세 낭비하기 전에 정보공개 제도부터 손질해보세요. 그래놓고 기자들 보고 "기자실은 놔둘 테니 가든지 말든지 마음대로 해라"라고 해보세요. 그때도 여러분들 일한다는 그 사무실에 무단 출입하는 기자들이 있다면 그들은 사이비거나 성격 이상한 분들일 겁니다.
관료주의와 대중주의(포퓰리즘)의 기묘한 결합의 예를 보여주는 현 정부는 현 기자실 제도가 갖고 있는 문제점을 강조하면서 임기 내내 이용해온 네티즌들의 반(反) 언론 정서를 이용합니다. 그게 국민 여론이라며 "언론만 반대하고 있다"고 선동하는 거죠.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언론이 이렇게 신뢰를 잃었나 싶습니다. 일부 네티즌들의 반(反) 언론 정서야 그렇다 쳐도 한나라당과 기자협회 등 일부 단체를 제외하고는 언론의 자유를 적극 옹호하는 목소리가 일반 국민 사이에서 별로 나오지 않는다는 건 참 당혹스러운 일입니다.
어느새 국민은 언론을 보호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현재의 언론에 대해 신뢰가 떨어졌나 봅니다. 진보의 탈을 쓴 관료주의자들은 참 재빠르게도 이를 포착하고 언론을 자기 입맛대로 길들이려고 합니다.
또 이런 황당한 일을 추진하는 이들의 의도는 뻔히 들여다보이지만 말 자체로 보면 맞는 부분도 없지 않습니다. 현재의 출입처 제도로는 미처 커버하기 어려운 부분이 분명히 있는데도 기자들이 출입처-기자실 시스템에 얽매여 있느라 여러 부처를 넘나드는 기사를 제대로 쓰지 못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환경 분야가 그렇습니다. 과거 두산 페놀 사태 전후만 해도 우리나라 환경 문제의 중점은 수질 문제였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떻습니까. 제 개인적으로는 현재 환경 문제의 중점은 어느덧 대기-에너지-기후변화 문제로 넘어갔다고 생각합니다.
이 문제는 수질 문제와 달리 일부 부처 취재로는 제대로 커버하기가 어렵습니다. 기후변화는 당위적인 차원에 그치는 문제가 아닙니다. 석유가 고갈돼가는 상황에서 기후변화 문제는 에너지 안보 문제와도 연결돼있고, 향후 산업구조 재편 문제와도 연결돼있습니다.
그렇다면 현재의 환경 쟁점을 제대로 취재하려면 적어도 환경부, 산업자원부, 자동차.석유업계, 외교부(국제경제국), 총리실 등을 취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게 언론사 내부로는 정치부와 사회부, 경제부 출입처를 넘나들어야 하는 것이어서 사실상 기삿거리가 보여도 취재하기가 쉽지 않은 형편입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정.경.사회부를 넘나들며 각 출입처에 출입하는 기자를 두면 될까요? 아니면 이 출입처를 모두 경험해본 기자를 양성해야 할까요? 모두 쉽지 않은 방법입니다.
하지만 해결책이 아주 없는 건 아니겠죠? 현재의 정.경.사라는 구분 자체가 취재 필요를 위해 생긴 것인 만큼 현실의 변화에 따라 바꾸면 되는 것이죠. 경우에 따라서는 부를 모두 없애고 팀제로 개편하는 것도 생각해볼 만한 합니다.
문제를 정리해보면 그리 복잡할 것도 없는데, 통일부처럼 '지뢰'를 밟는 일부 관료들과, 이때다 싶어 분연히 떨쳐 일어선 정치인과 일부 언론사들, 언론에 대한 피해의식과 증오감정으로 똘똘 뭉친 대통령과, 이 대통령의 언론관을 '언론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추켜올리다 이제는 슬그머니 꼬리를 감추거나 입장을 바꾼 이른바 '진보' 단체들, 그리고 남의 결점만 강조할 뿐 자신의 문제점은 들여다 보지 않으려 하는 우리 자신의 습관까지 겹쳐 사태는 어느새 코미디로 흘러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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