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저널 기자 23인의 파업 1백일 소회

고재열 기자=많이 울었습니다. 그러나 울었던 것보다 더 많이 웃었습니다. 묵묵히 지지해주는 아내와 가족 덕분에, 열일 제쳐 놓고 도와주는 독자님 때문에, 길에서 반겨주는 시민을 보면서도 웃었습니다. 1백일 동안 울었던 만큼의 깊이를 1백일 동안 웃었던 만큼의 에너지를 부활하는 진품 시사저널에 담아내겠습니다.

고제규 기자=벌써 1백일이네요. 파업 시간은 1백일이지만, 이번 사태는 조금 더 있으면 3백65일이 됩니다. 반 팔을 입고 시작했는데, 겨울옷을 입고, 다시 봄옷까지 갈아입었습니다. 옷을 갈아입어도 초심은 잊지 않을 것입니다.

김은남 기자(사무국장)=얻은 것도 많습니다. 사람을 얻었고, 가족을 얻었고, 인생 후반기를 정신 바짝 차리고 잘, 살아가야겠다는 각성을 얻었습니다. 우리를 거리로 내몬 저들을, 저는 언젠가 용서하려 합니다. 증오로 소중한 저의 삶을 갉아먹고 싶진 않으니까요.

남문희 기자=처음엔 쉽게 끝날 거라 생각했습니다. 너무나 명백해 보였기 때문입니다. ‘시사저널’ 17년 역사에서 하룻밤 새 기사가 사라지는 일이 일어나다니…. 그런데 항의하던 국장의 사표가 전격 수리되더군요. 그때 깨달았어야 했습니다. 저들은 이미 언론이기를 포기했다는 걸.

노순동 기자=평소 지인들에게 ‘시사저널’은 어중간하고, 밋밋하고, 때로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잡지라는 핀잔을 받은 적이 많습니다. 그런데 짝퉁이 나온 후 독자들은 그게 너희의 미덕이었다고 얘기해주었습니다. 갈피를 헤집고 사안을 따져보는 일은 지루하기조차 했으나 그걸 눈여겨본 독자들이 많았다는 것에 힘이 납니다.

문정우 기자=언론계에는 오래 전부터 마치 철칙인 양 전해져 오는 얘기가 있습니다. 악독하든, 약간 정신이 돌았든 어쨌든 사주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결국 기자란 족속은 엄정하고 효율적인 내부 규율을 세울 능력이 없다는 얘기가 아닙니까. 파업이 1백일을 넘기면서 우리에게는 과연 새로운 역사를 쓸 능력이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보는 시간이 길어져갑니다.

백승기 기자=산을 좋아하는 제가 산에 왔습니다. 바로 용산에 왔습니다! 이 곳에는 ‘오매불망’보고 싶은 사람들이 제법 많습니다. 저번 금요일. 이 동네 전무로 승진한 이로부터 ‘개××’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것도 ‘지천명’의 나이에…. 개를 키워 본 사람은 잘 알겠지만 개만큼 인간을 행복하게 하는 동물은 없지요. 하지만 사람 중에는….

소종섭 기자=전통적으로 ‘1백일’은 생명의 진정한 탄생을 의미합니다. 그때부터 비로소 한 ‘아기’로 인정받기 때문입니다. 파업 1백일, 이 또한 거듭남의 새로운 출발선입니다. 그 동안 많은 것을 잃었고, 또 많은 것을 얻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내일이 암울하지 않다는 희망을 그릴 수 있는 힘을 키웠다는 것입니다.

신호철 기자=만약 이것이 사장이 기사를 빼서 시작된 싸움이 아니었다면, 만약 삭제된 기사가 삼성과 관련한 기사가 아니었다면, 만약 사장이 그 기사를 빼기 전에 제대로 읽기라도 했었다면, 만약 대체 인력이 만든 잡지가 ‘‘시사저널’의 탈을 쓴 주간중앙’이 아니었다면, 만약 기자들이 ‘시사저널’을 사랑하지 않았다면, 만약 시사모가 없었다면 과연 전 1백일을 버틸 수 있었을까요?

안은주 기자=너무 당연한 요구조차 회사에서 받아들이지 않고, 석 달이 넘도록 취재 현장에 돌아가지 못할 줄 알았다면 이토록 점잖게 싸우지 않았을 겁니다. 상식선에서 합리적으로 이야기하다 보면 어렵지 않게 풀릴 줄 알았습니다. 지나간 시간을 탓해서 무엇하겠습니까. 지금부터라도 더 치열하게 싸우렵니다. 싸우다 보면 길이 보이겠지요.

안철흥 기자=처음에는 상식과의 싸움이라고 생각했는데, 최소한의 상식조차 받아들여지지 않는 이 현실이 갑갑합니다. 세계관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상식조차 통하지 않는 걸까요?

안희태 기자=하루빨리 이 부조리한 상황이 끝나기를 바랄 뿐입니다.

양한모 기자=두 딸 아이에게 해줄 것이 많은데, 이렇게 오랫동안 주저앉아 있으려니 가슴이 답답합니다. 그러나 내 동료들과 나의 투쟁이 내 인생의 더 큰 거름이 되어주리라 믿습니다.

오윤현 기자=얼마 전에 나 홀로 ‘시사저널’편집국에 갔었습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서니 편집국 문은 여전히 굳게 닫혀 있고, 그 문 너머로 어둠에 잠긴 책상과 컴퓨터와 자료들이 보였습니다. 착잡했습니다. 꽤 오랫동안 그 문 앞에 서서 ‘저 자리로 돌아올 수 있을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형편없이 훼손된 ‘시사저널’을 되살리려면, 꼭 돌아와야겠지요?

유옥경 기자=오늘은 여름같은 봄날이네요. 벌써 1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동안 잃은 것도 많고 상처도 많이 받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많은 것을 얻었습니다. 빚도 많이 졌습니다.
이제 빚도 갚고 상처도 치료하고 잃은 것도 되찾으려합니다. 그리고 진품 시사저널 편집국, 제자리에서 여름을 맞이하고 싶습니다.

윤무영 기자=지난 1백일 고되고 피로했지만 양식 있는 시민과 독자 덕에 행복했습니다. 돌이켜 보면, 뉴스의 현장을 누비며 많은 것을 안다고 착각했었습니다. 그러나 정작 파업 노동자가 되고 보니 착각도 그런 착각이 없습니다. 이제부터라도 좀더 겸허히 걷고, 좀더 허리 숙여 살아야겠습니다.

이숙이 기자(부위원장)=이처럼 잘잘못이 분명한 사건이 왜 이리 해결이 안 나는 걸까요? 나름 말발 세다는 23명 기자가 악악거리고, 여기저기 관심 가져주는 분이 많은데도 이 지경이면, 정말 힘없는 사람들은 얼마나 억울한 일을 많이 당할까요? 무거운 책임감을 느낍니다. 저희 23명 파업 기자의 어깨에, 저희를 지켜보는 애독자들의 어깨에 한국 언론의 미래가 달려 있습니다.

이정현 기자(부위원장)=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시간이 갔습니다. ‘시사저널’사태를 영상으로 남기는 일을 자진해서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집에 6mm 테이프가 40개 정도가 쌓이더군요. 참 많이도 찍었지요. 이걸 다 편집해서 1편의 DVD로 만들려니 머리가 다 아프네요. 그런데 앞으로 더 찍어야 하니…. 마지막 장면은 승리하여 편집국에서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찍고 싶습니다.

이철현 기자=한국 언론사에 ‘자본의 대항해 편집권이라는 가치를 지키려고 산화한 기자들이 있었다’는 흔적을 남기는 것 자체로 이 싸움의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엄혹한 시기에 권력에 대항했던 동아투위의 선배들이 그랬던 것처럼. 지긋지긋한 싸움이 오래되다보니 제가 지쳤나봅니다. 하지만 저만 지쳤습니다. 제 선후배들은 갈수록 강해지고 있습니다. 제 나약함이 그들에게 걸림돌이 되지 않길 바랄 뿐입니다.

장영희 기자=대한민국의, 세계의, 아니 우주를 관통하는 상식과 양심이라는 보편적 가치가 저들에게는 부재한 것일까요? 아무리 지난해도 우리는 길이 아닌 길은 가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올라야 할 봉우리가 무엇인지는 ‘시사저널’ 진성 독자들이 매섭게 일러 주셨습니다. 그 길을 뚜벅뚜벅 갈 것입니다.

정희상 기자(위원장)=한국 언론사상 초유의 사태라는 직장폐쇄 조처를 당할 때만 해도 이 싸움은 금방 끝나리라 믿었습니다. 양식 있는 모든 국민이 우리 기자들 편이었기 때문입니다. 올곧은 언론 하나는 건사해야 한다는 사회 각계의 반응도 뜨거웠습니다. 그러나 파업 1백일이 되도록 회사 측은 양심과 한참 거리가 먼 태도입니다. 기자들은 결코 물러서지 않습니다. 우리 힘으로 참 ‘시사저널’을 복구할 것을 뜨겁게 다짐합니다.

주진우 기자=부러질지언정 굽히지 않겠습니다. 부러질 때까지만 싸우겠습니다.

차형석 기자=파업을 시작하면서, 작은 수첩을 펼쳤습니다. 날짜 옆에 파업 일수를 적었습니다. 이제 더 이상 수첩에 파업 일수를 기록하지 않으렵니다. 이 싸움이 다 끝나고 나면 그때 수첩을 펼쳐 날짜를 하나하나 더듬어보려고 합니다. 잊고 싶은 일들, 잊지 못할 사람들, 힘들었던 순간들, 기운 났던 순간들…. 2007년, 인생 공부 제대로 한 셈치죠, 뭐. 아마도 오랫동안 기억할 것 같습니다. 곽선미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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