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독 정상회담 때도 취재갈등
동독 ´내정간섭´명목 특파원 추방하기도, 이우승 방송진흥원 연구원 밝혀
이번 적십자회담에서 북측의 거부로 결국 조선일보 기자의 취재가 무산된 가운데 지난 70년 당시 동서독 정상회담 준비과정에서도 언론을 둘러싼 ‘실랑이’가 벌어졌던 사실이 공개돼 주목된다.
지난달 9일 방송진흥원 주최로 열린 간담회에서 이우승 방송진흥원 책임연구원은 ‘남북 당국자회담에 관한 뉴스보도 분석’ 발제를 통해 동서독 정상회담 보도사례를 분석했다. 이 내용에 따르면 언론에 대한 동서독 당국의 태도는 70년 3월 열린 1차 실무접촉회의에서부터 엇갈렸다.
당시 서독정부는 ▷취재진 숫자를 제한하지 말고 ▷취재활동을 무제한 허용할 것이며 ▷정상회담 개최를 전후해 24시간 체류 및 취재를 허용할 것 등을 요구했다. 반면 동독은 입국을 희망하는 서독 언론인이 개별적으로 비자를 신청해 취재허가를 받도록 하자고 맞섰다. 이같은 방침은 회담장소와 연계해 취재진 규모를 결정하려는 동독정부의 전략에서 비롯됐다. 애초 회담 장소가 동베를린으로 결정될 경우 대대적인 행사를 준비해 서독언론에 대규모 취재진을 허용, 대외적으로 적극 홍보한다는 방침이었으나 실현 가능성이 없어지자 취재진을 최소화하려 했기 때문이다.
동독정부의 이같은 방안은 결국 관철됐고 3월 13일 동독 외무성에 접수된 언론인 비자신청은 2000여 건에 달했다. 이 가운데 약 1200건이 서독 기자였다. 동독정부는 이를 ▷동독정부가 신문사 발행인을 초청하는 형식 ▷서독 수상이 이용하는 특별열차에 동행하는 기자들을 초청하는 형식 ▷개인자격으로 비자를 신청한 언론인 그룹 등 3개 그룹으로 나눠 처리했다.
여기서부터 선별작업이 진행됐다. 정상회담 이틀 전인 3월 17일까지 수상과 동행하는 소수 취재진만이 비자를 받았고 대부분의 기자들은 입국이 거부됐다. 아울러 개인자격으로 신청한 경우, 진보성향의 신문사 기자 2명은 취재를 허용한 반면 일련의 보수 언론사 기자들은 입국이 거부되는 등 실제 동독정부는 정치적 입장과 기존 보도태도를 근거로 선별작업을 벌이기도 했다.
서독측은 수상 동행취재진 48명을 최종적으로 제시했고 결국 회담 하루 전인 3월 18일 47명의 기자들이 입국허가를 받을 수 있었다.
이우승 연구원은 “74년 동베를린에 서독언론 특파원 사무실이 마련되면서 주로 기사내용에 관한 문제가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당시 동독측이 대외 이미지를 중시해 특파원 신청을 낸 언론사는다받아들였으나 이후 일부 보도를 놓고 ‘내정 간섭’이라는 명목으로 경고를 주거나 추방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이 연구원은 “특파원을 추방시킬 때에도 서독정부나 언론은 항의의 뜻을 전달하는 것 외에 별다른 대응방안이 없었다”고 전했다.
아울러 북측의 조선일보 기자 취재거부와 관련 “현재로선 뚜렷한 해법이 없어 보인다. 언론도 사소하고 주변적인 사안을 확대 보도하는 양상을 피하고 우리 정부도 남북 양측의 언론역할이 다르다는 점을 꾸준히 이해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김상철의 전체기사 보기
Copyright @2004 한국기자협회.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