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주·장] 더 이상 추해지지 마라

CBS 권사장 초심으로 돌아가 물러나기를

엄청난 충격적 사건과 급격한 변화가 난무하는 세상이 요즘인지라 우리도 이젠 웬만한 일엔 눈 하나 꿈쩍 않는 고강도의 심리적 방어기제를 갖추고 있다. 하지만 최근 진행중인 CBS 사태는 우리의 인내심과 침묵의 한계를 넘는 경악할 일임에 분명하다. CBS 징계위원회가 최근 보도국 기자 51명 전원을 처벌하겠다며 노조측에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징계방침의 근거는 이들 기자가 권호경 사장의 퇴진을 요구하며 지난달 말 이틀 동안 무단으로 방송제작을 거부했다는 것이다. 지난 19일 열릴 예정이던 징계위는 노조가 징계위 소집 절차에 이의를 제기해 일단 연기됐다.

한국의 언론사가 소속 기자 전원을 징계위에 회부한 것은 과거 서슬 퍼렇던 군사독재 시대에도 없었던 사상 초유의 일로 언론계는 물론 일반 국민들에게 엄청난 충격과 분노를 안겨주는 일이다. 더욱이 과거 민주화와 인권 운동에 남달리 앞장섰던 CBS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컬한 일이다.

이쯤에서 우리는 이번 사태의 모든 근본적 책임이 권 사장 본인의 그릇된 처신에서 비롯된 것임을 다시 한 번 분명히 해야겠다. 올 초 집권여당 사무총장에게 화분을 보내 총선승리를 미리 축하한 정치적 추파나 YS정권 당시 올린 ‘충성 편지들’, IMF체제 시절 사원들이 강제퇴직을 당하는 와중에 한켠에서 정치권에 몰래 후원금을 낸 사실 등은 정도만을 고집해 온 한 언론사에 씻을 수 없는 오점을 안겨준 명백한 해사행위다. 그런 잘못된 사장의 행동을 문제삼는 기자들을 몽땅 처벌하겠다니, 적반하장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는 앞서 자신의 퇴진을 끈질기게 요구해 온 평기자들의 움직임에 동조한 부장단을 징계하고 지방으로 좌천시켰다. 이제 그 후순으로 방송제작 거부를 핑계삼아 보도국 기자 전원 징계라는 한국 언론사에 전무후무한 보복의 칼날을 들이댔다.

권 사장은 94년 2월 CBS 사장으로 부임하기 전 강직한 민주투사인 동시에 훌륭한 목회자로서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의 인권국장, 총무직을 지내는 등 이 땅의 민주화를 위해 온 몸을 던졌다. 그런 그가 최근 보여주고 있는 굴절된 처신은 예전의 그의 모습과는 너무나 큰 대조를 보이는 실망스러운 것이다. 더욱 개탄스러운 것은 권호경이란 한 존경받던 한국 교계 지도자가 정론과 비판을 견지해 온 한 모범 언론사에 들어와 그같은 추태를 재현했다는 점이다.

이제우리는마지막으로 권 사장에게 간곡하면서도 단호하게 촉구한다. 지금 당장 CBS 사장직을 물러나 청년 시절 민주화와 인권 운동을 시작하던 때의 초심으로 돌아가라. 자리에 연연해 계속 악을 쓰며 아무에게나 칼날을 휘두르는 볼썽 사나운 모습은 유서깊은 CBS의 전통과 명예에 먹칠을 함은 물론 권 사장 개인이 평생 동안 어렵게 쌓아온 공든 탑도 물거품으로 돌아가게 하는 자해행위다. 지금이나마 깨끗하게 물러나면 우리는 그가 한 때 조국의 민주화와 인권 신장을 위해 갖은 고생을 마다 않았던 노력의 한 편린은 기억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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