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대] 남북회담으로 한미관계 새 국면
민족 이익 우선한 언론의 합리적 시각.논리적 접근 필요
정낙근 안민정책포럼 사무총장
분단 이후 첫 남북정상회담이 숱한 화제를 남기고 끝났다. 회담은 우리 사회 구성원에게 커다란 희망을 던졌지만 동시에 많은 숙제를 남기기도 했다.
정상회담 이후 우리 사회의 모든 구성 주체들이 혼란스러워 할 부분은 북한과 미국을 과연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의 문제일 것이다. 정상회담으로 남북관계가 4강 구도의 종속변수로부터 오히려 동북아 구도를 변경시킬 수 있는 독립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외교방식에 있어서도 대결보다는 대화와 협력에 의해 문제를 풀어나가는 방식이 채택될 가능성이 크다. 동북아에서는 아직 경험해 보지 못한 길이기에 더욱 치밀한 각론이 준비되어야 하고 보다 세련된 외교술이 필요하게 된다. 특히 논리가 뒷받침되지 않고 민족주의적 정서에 입각한 어설픈 대미(對美)인식과 정책은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합리성에 바탕을 둔 용미론(用美論)적 시각이 필요하다.
최근 한미행정협정(SOFA) 문제, 노근리 사건, 매향리 사건 등 한미 간 갈등이 조성되고 있다. 그러나 해결책이 쉽게 마련되지 않는 이유는 미국의 입장에서 봤을 때 우리의 주장이 논리적 설득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미국은 논리를 매우 중시하는 나라이다. 논리가 있는 반미주의(反美主義)를 정서적 친미주의(親美主義)보다 더 존중한다. 상기의 문제들에 대한 해결책을 찾고 싶으면 우리 언론은 시민의 목소리만 전달하는데 그칠 것이 아니라 많은 유사 사례를 발굴하여 논리로써 무장된 모습을 보여야 한다. 설득력을 얻기 위해서는 직선적인 주장보다는 사례의 제시를 통한 비교 보도의 방식을 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정상회담 이후 가장 큰 관심사로 등장하고 있는 주한미군 문제를 보자. 주한미군의 존재를 북한의 침략에 대한 억지력으로 설명하는 논리는 현재의 정세로 볼 때 설득력이 떨어진다. 이것이 주한미군 철수 논리의 전부일 수는 없다. 오히려 우리 스스로 주한미군 철수 이후에 대한 각론이 준비되고 이를 제시할 수 있을 때 이 논리는 더욱 힘을 받을 수 있다. 국익의 관점에서 안보상황의 변화 여부에 대한 냉철한 판단을 한 다음 주한미군 문제를 다루는 것이 현명하다. 미국의 정책결정 메카니즘의 특성상 미국은 한국 내의 주한미군 철수 분위기를 미리 예상하고 나름대로 대응할 준비를 이미 갖추었으리라 보여진다. 다양한 시나리오와 치밀한각론을준비한 미국을 상대로 산만한 총론으로써 협상할 경우 승부는 분명하다.
또 잊지 말아야 할 점은 정상회담에 대해 미국이 공식적으로는 환영의 입장을 보였지만 여러 곳에서 불만의 기색을 감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미국이 노골적으로 문제삼지 않는 이유는 아직 한반도 현상을 변경시킬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우리의 대비가 절실히 필요하다.
그러면 그 빌미는 어디에서 제공될 가능성이 있는가. 몇 가지가 있겠지만 바로 합의문 제2항 통일과정에 관한 문제가 유력하다. 미국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신들의 국익을 취한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어떤 형태로든 합법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언론이 고민하는 국익과 알 권리의 충돌이 바로 여기에서 일어난다.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키기 위해 언론은 끊임없이 2항의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민족이익의 관점에서 보면 아직은 때가 아니다. 정상회담의 성과를 훼손시키고 싶은 세력이 우리 내부에도 있겠지만, 오히려 주목해야 할 것은 우리 내부의 갈등을 충동질하는 외부세력이 존재할 수 있다는 점이다. 남북 양 정상이 인정한 것으로 알려져 있듯이 연합제와 낮은 수준의 연방제가 실천되고 통일의 길로 들어서기에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다. 알 권리를 명분으로 언론이 성사도 불투명한 먼 미래의 문제를 논란거리로 부각시키는 것은 민족의 이익을 위해 결코 바람직한 태도가 아니다. 이 문제를 들춰내는 것은 현 시점에서 바람직하지 못하다. 최소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답방이 이루어질 때까지라도 유보해 둘 것을 당부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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