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보는 9일 지병으로 타계한 고 임동석 서울경제 기자를 기리는 추도사를 싣는다. 이 글은 고인의 후배인 산업부 김호정 기자가 작성했다.
▲ 고 임동석 기자
임동석형을 보내며
‘지금 거신 전화는 없는 번호입니다. 다시 확인하시고 걸어주시기 바랍니다.’
형에게 건 이동전화에서 흘러나오는 자동안내 음성이 형이 더 이상 같은 하늘 아래 살고 있지 않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주네요.
형은 지난 반년간 의식 없이 중환자실에서 투병하고 있었죠. 혹시나 전화를 받을 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 여러 번 걸었지만 한 번도 형의 목소리를 듣진 못했습니다. 지난해 가을 수술 이후 의식을 잃기 전 짧게 나눈 통화가 형과의 마지막 대화가 되고 말았네요.
2004년 9월 처음 뇌종양 진단을 받았지만 형은 회사 누구에게도 자신의 병을 사실대로 이야기하지 않았죠. 뇌수막염으로 당분간 회사를 쉬지만 곧 복직할 수 있다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습니다. 방사선 치료를 마친 이듬해 형은 자신의 말대로 복직해, 서울경제 동료들 모두 형이 그 무시무시한 병과 처절하게 싸우며 외로운 밤들을 견뎌왔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어요.
복직하고 나서도 이전과 다름없이 밝은 모습의 형에게선 무시무시한 병마의 희미한 그림자도 찾아 볼 수 없었죠. 이전처럼 다시 한 번 같은 부서에서 근무하며 즐겁게 회사 생활하자는 다짐이 곧 실현될 거라고 믿고 나름의 상상을 펼쳐보기도 했습니다.
지난해 봄 형이 ‘회사를 그만둬야겠다’고 말했을 때 좀더 자세히 붙잡고 물어보지 못한 게 지금도 후회가 됩니다. ‘몸이 예전 같지 않다’는 그 말을 ‘그 나이에 무슨 큰 일 있겠냐’며 흘려 보낸 게 말입니다.
국제통화기금(IMF) 경제위기 발발 직전인 97년 가을 입사해 99년 여름 2년만에 후배들을 맞은 형이 잘 먹지도 못하는 술을 먹어가며 선후배 상견례 치르던 날이 생각납니다. 잔뜩 긴장한 우리들의 어색한 분위기를 풀어주려고 거푸 화장실을 다녀오면서도 폭탄주를 들이켜던 그 모습.
동석 형. 당신은 누구보다 예민하고 섬세한 성격을 지녔으면서도 자신의 아픔과 고통을 드러내지 않으려 무던 애를 쓰곤 했지요. 회사 내부에서나 출입처 등과 업무상으로나 인간적으로 갈등이 벌어지더라도 언제나 자신이 좀더 참으며 문제를 해결하려 했지요.
형을 죽음으로 몰고 간 그 병이 찾아왔을 때도 마찬가지였어요. 그런 굳은 심성으로 유언조차 남기지 않았죠. 마지막까지 부모님과 형에게까지 부담을 주지 않으려 애쓴 형의 따뜻하고 깊은 마음이 저에게는 무엇으로도 갚을 길 없는 미안함으로 남았습니다.
형 저 높은 곳에서 누구보다 행복하게 지내리라 믿어요. 사랑합니다.
서울경제 산업부 김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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