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은 한건주의' '정부는 구멍 투성이'

대북보도 혼선 여전...정부-언론간 세분화된 보도원칙 필요

“언론이 여전히 한건주의에 매달려 기사를 남발하고 있다.” “흘릴 건 다 흘리고 다니면서 보도 자제를 요구하는 데 급급하다.”

전환기 남북관계 속에서 보도 혼선이 우려된다는 목소리가 현실화하고 있다. 이미 20일자 중앙일보의 ‘북 노동당 규약 개정 약속’ 보도로 청와대가 무기한 출입정지 조치를 내려 파문이 일고 있는 가운데 청와대 출입기자단은 22일 ‘노동당 규약 수정 김정일 위원장 밝혀’ 제하 기사를 보도한 조선일보 기자를 무기한 출입정지시켰다. 박준영 청와대 대변인이 중앙일보 보도가 사실과 다르다고 해명한 후 관련 보도를 자제키로 한 결의를 어겼다는 것이다.

이에 앞서 16일 청와대 지방기자단은 지방사가 방북취재단에 3명만이 배정된 데 항의하며 참가거부를 결정했으나 경인일보, 광주일보, 부산일보 3사가 이를 어기고 취재단에 합류했다는 이유로 제명 결정을 내린 바 있다.

정부는 이같은 혼란이 남북관계를 특종대상으로 여기는 언론 보도에서 비롯된 바가 적잖다는 불만을 내비치고 있다. 청와대측은 “남북 정상회담 관련 내용을 오피니언 리더층에게 비보도를 전제로 일정 부분 설명하는 것은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며 “그러나 몇 사람이 알고 있는 것과 언론에 보도되는 것은 다르다”고 언급했다. 하지만 기자들은 흘러나오는 정보의 ‘범람’이 수위를 넘어섰다고 말한다. 보도되지 말아야 할 사실이라면 애초 철저하게 보안을 유지했어야 한다는 논리다. 한 기자는 “국정원장이 자신이 다니는 교회에서 정상회담 얘기를 하는 판에 오프에 오프를 건다고 한들 정보가 새어 나오지 않겠는가”라고 반문했다.

물론 남북관계의 특수성을 감안해 당국의 비보도 요청이 있을 경우 필요하다면 철저히 지켜줘야 한다는 원칙론을 제기하는 입장도 있으며 여전히 추측보도 남발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한 기자는 “주요 사안은 어차피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만이 알고 있을 것이다. 방북단 관계자들이 하는 말도 대부분 1차, 2차로 전해들은 말 아닌가”라며 “또다시 ‘카더라 통신’만 보도되고 있다. 이러다 북측이 다른 입장을 보이면 약속을 어겼다고 비판하고 나설 것”라고 지적했다.

문제는 현재의 난맥상을 극복할 원칙 마련과 그에 대한 합의다. 주동황 광운대 교수는 “이번 중앙일보 사례를 보더라도 한쪽을 편든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라며 “정부와 언론 차원에서향후보도방향 등에 대한 입장이 정리돼야 한다. 아울러 사안별로 보도자제 여부를 판단하는 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실제 청와대 기자단에서는 22일 열린 회의에서 이른바 ‘포괄적 비보도’ 요청에 대한 논의가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한 기자는 “앞으로도 계속될 정부의 비보도나 엠바고 요청을 어떻게 수용할 것인가에 대한 의견들이 오갔다”면서 “보다 세분화된 보도원칙 등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는 데 공감대를 이뤘다”고 말했다. 기자들 스스로 어떤 원칙들을 세워나갈지 관심을 끄는 대목이다.

김서중 성공회대 교수는 이와 관련 “일차적으로 역대 정권이 대북정보를 독점해 이를 악용해 왔다는 점을 고려할 때 언론과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정부의 노력이 선행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부의 대북정보 ‘관리 시스템’에 대한 문제제기, 개선 요구와 아울러 언론 보도태도의 변화 필요성이 뒤따르는 형국이다. 남북관계를 둘러싼 정부방침과 언론보도가 어떻게 정리될 것인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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