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출입정지 조치는 부당'

언론계 '기자 제재는 기자단 몫...취재 원천봉쇄로 언론통제 우려', 중앙 비보도 요청 파기 대응조치 파문

청와대가 비보도 요청을 어기고 보도했다는 이유로 중앙일보 기자에 무기한 출입정지 조치를 내려 파문이 일고 있다.

박준영 청와대 대변인은 20일 중앙일보의 같은 날자 ‘노동당 규약 개정’ 기사가 “보도내용은 사실과 다르고, 비보도 요청을 어겼다”며 중앙일보 기자의 청와대 출입을 무기한 정지한다고 발표했다. 청와대는 발표 당일 중앙일보 출입기자의 출입증을 회수했다.

언론계에서는 중앙일보 기사에 대한 가치판단이나 엠바고 파기 여부를 떠나 정부 부처 그것도 청와대가 무기한 출입정지 조치를 취한 것은 원칙에 맞지 않는 과잉대응이었다는데 입장을 같이 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정부 부처 취재 활동을 막는 선례가 될 것으로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한 신문사 기자는 “출입증을 회수해버린 것은 취재를 원천적으로 봉쇄한 조치다. 무엇보다 기자에 대한 제재는 기본적으로 기자단 차원에서 결정할 문제”라고 지적했다. 한 언론사 간부도 “지금의 대북관계를 의식한 불가피한 결정이라는 해석도 가능하지만 해당 출입처에서 직접 기자를 출입정지시킨 것은 유례를 찾기 힘든 일”이라며 “청와대의 과잉 대응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고 말했다.

또다른 언론사의 전 편집국장은 “정부가 자신들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기자의 출입을 금지해 취재를 봉쇄한다는 것은 어떤 이유로도 용납될 수 없다. 다른 정부 부처가 청와대를 선례로 본받는다면 어찌 되겠는가. 남북 문제라는 국민적 여망을 업고 정부가 언론 길들이기를 하려는 것이 아닌가 의심스럽다”고 밝혔다.

김주언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총장은 “만약 엠바고를 깼다면 기자들의 자율 조직인 기자실에서 징계를 결정하면 된다. 청와대 대변인이 취재를 원천 봉쇄하는 출입금지를 시킨 것은 문제”라고 말했다.

중앙일보의 반발도 계속되고 있다. 중앙일보 공정보도위원회(위원장 전영기)는 22일 긴급모임을 갖고 박준영 청와대 대변인은 20일자 기사가 ‘민족에 죄를 짓는 보도’라는 발언을 즉각 취소.사과하고 출입정지 조치를 철회하라고 요구했다. 공보위는 “남북관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는 근본 요인은 일부 방북 대표단의 무분별하고 무원칙한 발언”이라고 규정하며 정정이나 반론 등 사전 절차 없이 출입정지를 결정한 것은 납득할 수 없는 조치라고 비판했다.

지면으로는 21일 취재 경위를 공개한 데 이어22,23일 잇따라 사설을 통해 입장을 밝혔다. 야당 대표와 언론사 사장들에겐 비보도를 전제로 설명하면서 기자가 제3의 뉴스원을 통해 취득한 기사를 문제삼아 출입정지시킨 것은 온당한 처사가 아니라는 것이다.

박 대변인은 20일 출입정지 조치를 취하면서 “중앙일보가 19일 저녁 언론사 사장단과 가진 청와대 만찬에서 임동원 국가정보원장이 비보도를 전제로 브리핑한 내용을 보도했다”면서 “남북관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일로 판단, 이같이 조치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중앙일보는 21일자에 방북단에 수행원으로 참가했던 모 교수가 19일 민주당 의원 4명과 만난 자리에서 이 사실을 취재했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청와대는 ▷사장에게 비보도를 전제로 설명한 다음날자에 기사화했고 ▷”고위 당국자” 소스를 인용했으며 ▷모 교수도 비보도를 요청했다는 점을 들어 여전히 ‘정보 유출’ 혐의를 두고 있다. 실제 일부 기자들은 모 교수의 설명이 중앙일보 보도에 못 미치는 내용이었고 사장단 만찬석상에서 브리핑한 내용과 상당 부분 일치한다고 지적했다.

중앙일보의 한 기자는 “굳이 청와대 만찬 석상이 아니더라도 그 내용은 야당을 포함한 국회의원, 관계부처 전반에 다 나돌고 있는 얘기였다. 특별한 원칙 없이 포괄적 엠바고 운운하며 정작 보도가 나오면 막기 급급하다는 게 문제”라고 밝혔다.
김상철의 전체기사 보기

배너

많이 읽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