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신문, 방송의 기사표절이 도를 넘어서고 있다.
한국신문윤리위원회(위원장 안용득·이하 윤리위)가 2002년부터 5년간 조사한 자료를 살펴보면, 언론들의 기사표절은 지난해에만 2백50여건이 적발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5년전인 2002년 25건에 비해 무려 10배 이상 늘어난 수치다.
올해 1월 출판물 전재와 인용 부문에서 적발 받은 사례도 18건이나 됐다. 이중 경고를 받은 사례는 2건, 나머지는 주의 조치를 받았다.
경고를 받은 경기지역 일간지인 서울일보와 시민일보는 각각 데일리서프라이즈(1월23일자 오피니언란 ‘이슈/정동영 대 사수혁신파의 대격돌, 그들의 노림수는?’)와 머니투데이(1월23일자 ‘동아제약 ‘박카스’ 父子, 표 대결 불가피할 듯’, ‘지난해 은행 당기순이익 13.5조원, 전년수준 유지’) 기사를 토씨 하나 고치지 않은 채 그대로 전재했다.
주의를 받은 사례들은 브라질, 미국, 이라크 등 해외에서 일어난 일을 마치 현장에서 직접 취재한 것처럼 쓴 경우다.
실제 이들 기사는 서울에서 해외 뉴스 사이트 등을 통해 번역해 실었음에도 자사 기자 이름이 넣어 게재했다. 지난 1월 한달 동안 이런 이유로 적발된 중앙언론사는 스포츠지와 경제지를 포함해 13곳에 달한다.
오래된 관행 언론사들의 기사 베끼기는 관행처럼 굳어진지 오래다. 통신사인 연합뉴스의 기사를 그대로 베껴 쓰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기사 베끼기 문제는 국제부 기사에서 두드러진다. 한 경제지 기자는 “기사 베끼기는 비단 국제부에만 국한된 문제는 아니지만 현실적으로 직접 취재가 어려운 국제부에서 많이 일어나는 것은 사실”이라며 “국제부에서는 외신을 일종의 보도자료, 혹은 출입처로 보고 그 속에서 의미를 찾고 논리를 부여해 기사를 만들어 내는 일을 또 하나의 창작행위로 간주한다”고 밝혔다.
보도 기사 표절을 넘어 특정 언론사가 특정인을 상대로 인터뷰한 내용이나 논평을 표절하는 경우도 있다.
문화일보는 지난 2005년 11월2일 ‘강정구교수 사법처리 파문 두 주역 요즘…길에서 만난 사람도 격려/김종빈 前 총장 “강교수 구속 소신 변함없다”’라는 제하의 기사를 게재했다. 그러나 이는 같은날 동아일보가 기자가 단독 보도한 ‘김종빈 前 검찰총장의 ‘못다 한 얘기’’라는 제하의 기사를 크레디트를 밝히지 않은 채 그대로 베껴 적은 인터뷰 형식의 기사였다.
또한 지난 2004년에는 연합시론을 그대로 베껴 쓴 경향신문 사설이 문제가 돼 당 언론사는 징계위원회를 열고 해당 논설위원을 정직4개월에 처하는 등의 중징계를 내린 바 있다.
기사표절 왜? 윤리위원회 문명호 심의위원은 이처럼 기자들의 기사 베껴 적기 관행이 뿌리깊게 자리한 것은 기자들이 기사 표절이 무엇인지도 인지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문위원은 “기사 표절은 출처를 명확히 밝히지 않은 모든 경우에 해당된다”면서 “해외언론의 경우 크레디트를 밝혔더라도 자사 기자가 직접 취재하지 않은 내용은 모두 표절로 간주하는 등 더욱 엄격하게 검열하고 있다”고 밝혔다.
현재 윤리위원회 심의 기준에는 △연합뉴스나 뉴시스, 인터넷신문, 외신 등이 제공한 기사를 전면 인용하면서 출처를 밝히지 않거나 △내·외신 기사의 리드를 약간 수정하거나 문장 중 일부를 들어낸 뒤 전면 인용하면서 자사 기사의 이름을 붙인 경우 △연합뉴스, 뉴시스 등 타 언론사 사진을 무단 전재하는 경우 △해외 기사를 무단 게재하는 경우 △해외에서 다른 해외의 기사를 무단 전재하는 경우에 기사표절로 해당된다고 보고 있다.
윤리위원회 최형민 심의실장은 “각 언론사에서 어떤 것이 기사 표절에 해당되는지 사례 교육이 전혀 없고 데스크를 포함한 간부들이 표절을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지 않는다는 것도 표절을 계속 양산하는 주된 이유”라고 말했다.
해외 언론은 엄격 제재 일본 아사히신문은 최근 지방 주재 사진기자가 요미우리신문 기사를 도용한 책임을 물어 도쿄 본사의 편집국장 등을 경질한 바 있다.
아사히신문은 지난달 30일 “자사 기자가 요미우리신문 기사를 도용했다”며 사과 기자회견을 연 뒤 기사를 표절한 기자를 해고하고 본사 편집국장과 편집국 사진센터 매니저 등을 경질하는 중징계를 내렸다.
해외 언론사의 표절 대응에서 대표적인 예는 2003년 미국 뉴욕타임스 제이슨 블레어 기자 사건이다. 당시 뉴욕타임스는 제이슨 블레어 기자가 7개월 동안 39건의 광범위한 조작과 표절을 일삼았던 것을 자체 조사로 밝혀내고 2003년 5월11일자 1면 톱기사를 통해 “1백52년 역사에서 대단히 부끄러운 순간이자 독자 신뢰에 대한 심각한 배신”이라고 고백했다.
한국언론재단 김영욱 박사는 “기자수가 1천여명 이상에 달하는 해외 언론과 국내 언론의 제작환경이 현격한 차이가 있기 때문에 해외 사례를 일반화할 수는 없겠지만 표절에 대한 자체 검열은 증대돼야 한다고 본다”며 “표절과 인용을 쉽게 생각하는 문화도 점차 고쳐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곽선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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