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연재기획'다시 일어서는 지방언론(2)/경인지역
사정바람 불 때마다 기자들만 '가슴앓이', '사이비 온상' 따가운 눈총 부담...척박한 풍토가 독립언론 가로막아
"초등학교 3학년 짜리 딸의 환경조사서에 아버지 직업을 기자라고 적어 넣기가 망설여진다. '지방신문 기자는 모두 사이비'라는 주위의 시선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열악한 취재환경 속에서도 열심히 일하는 대다수의 기자들은 일부가 흐려 놓은 흙탕물 속에서 허탈함을 느끼기 일쑤다."
경인지역의 한 중견기자가 털어놓은 지방신문 기자의 소회다. 낮은 임금과 부족한 일손으로 인한 어려움보다 자신들에게 쏟아지는 따가운 눈초리가 더 참기 어렵다는 얘기다.
실제로 경인지역은 유달리 사이비언론 단속 사례가 많다. 기자증을 수천만원에 판매하고, 광고수주 과정에서 협박을 가하는 등의 혐의로 사주와 기자들이 검찰의 수사를 받기도 했다. 한 기자는 "경인지역 신문사 대부분이 '사정 노이로제'에 걸려 있다"고 전했다. 이 기자는 "잘못된 언론의 관행을 바로 잡는다는 취지에는 전혀 이의가 없다. 그러나 특정 지역만을 대상으로 마녀사냥식, 한건주의식 사정을 벌이는 것은 찬성할 수 없다"고 말했다. 사정당국에서 정치적으로 큰 부담이 없는 경인지역 언론을 상대로 과시용 사정을 벌이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는 지적이다.
한 사례. 경기일보는 지난 2월 광고수주와 관련해 기자 18명을 포함해 21명이 입건되고 이중 4명이 구속되는 커다란 홍역을 치렀다. 회사에 불만을 품은 한 간부가 광고관련 파일을 통째로 검찰에 넘겨 광고수주에 직·간접적으로 간여한 기자들이 대거 입건된 것이다. 경기일보의 한 기자는 당시 분위기를 이렇게 전한다.
"지방지에서 기자가 광고를 따오는 것은 그다지 낯선 일은 아니다. 물론 옳지는 않다. 그러나 기자들이 자발적으로 광고 영업에 나서겠는가.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자리보전을 하기 어렵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당시 검찰이 편집국을 압수수색하는 등 혼란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솔직히 '왜 우리만, 기자들이 무슨 죄가 있다고&'하는 억울한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사건' 이후 경기일보에서는 조용히 '자정운동'이 벌어졌다. 경영진에서도 '기자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광고에 간여하지 말라'는 지시를 내렸다.
"지난해 경인지역에 언론계 사정이 집중된 것은 이 지역의 낙후된 언론환경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밝힌 입사 3년차의 한 기자는 사정의 '순기능'을 지적하기도 했다. 이 기자는"여전히경영은 전반적으로 어려운 상황이지만 사정 이후 광고수주에 대한 부담이 없어지는 등 상대적으로 일선기자들이 활동하기에 편해진 것은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기자의 본분에 맞는 역할을 수행할 수 있게 전화위복이 됐다는 평가다.
인구 1000만의 경인지역에서 발간되는 일간 신문은 모두 12개다. 이중 기자협회 회원사는 경기일보, 경인일보, 경인매일, 인천일보, 중부일보 5개사. 20면에서 24면 수준을 유지하던 경인지역 신문은 IMF이후 경인지역에서 '메이저급'으로 꼽히는 경인, 경기, 인천, 중부 4개사가 16면을 발행하고 있고, 나머지는 대체로 12면 체제다. 경인매일은 한때 자금난으로 신문발행이 중단되기도 했다.
경인지역을 '사이비언론의 온상'으로 인식하게 만든 주범은 나머지 군소 신문사들과 이름도 잘 알려지지 않은 주간신문들이다. 각종 공장과 건설현장이 많은 지역 특성이 수천만원을 내고 기자신분을 획득한 '사이비 기자'들이 충분히 '본전을 뽑을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줬다.
한 중견기자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근 20년간 장사에 몰두에 돈을 번 친구가 있다. 이 친구가 '돈은 벌만큼 벌었으니 이젠 기자생활을 하고 싶다'고 말하더니 작은 신문사 기자가 됐다."고 '매직' 사례를 들려줬다.
이들이 공채로 입사해 기자 자존심을 지키려 노력하는 다수의 기자들의 얼굴에 먹칠을 하고, 의욕을 꺾는다는 지적이다. 경인지역은 외부 유입인구가 많아 애향심이 강하지 않고, 지역문제에 대한 관심이 낮은 데서 오는 지방신문의 어려움이 크다. 또 많은 수의 지역민들이 서울로 출퇴근하고 있어 '경기도민'이라는 정체성을 갖기가 쉽지 않다. 한 기자는 "아마도 서울시장과 경기도지사 중 서울시장의 이름을 더 친숙하게 느끼고 기억하고 있을 것"이라는 말로 지역민의 특성을 설명했다. 중앙지의 지방시장 공략에 맞설 수 있는 '무기'와 '인프라'가 빈약한 것이다.
기자들은 "살 길은 철저한 지역위주의 신문을 만드는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지역민들의 생활 깊숙한 곳까지 취재영역을 넓히고, 중앙지의 논조를 따라가기보다 나름대로 독특한 '색깔'을 구축하는 것만이 대안이라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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