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다르면, 남과 다르면 죽을 수 있다” 강박
▲ 영화 '괴물'의 한 장면.
개인적·사회적 억압 맞물려 극단화
유니폼 같은 두꺼운 외투와 털모자를 눌러쓴 사람들. 무표정한 얼굴로 오고 간다. 서로가 구별되지 않는다. 머릿속에 품고 있는 생각마저도, 행선지마저도 똑같아 보인다. 그들은 개인이 아니었다. 전체였다.
영화사에 길이 남을 거장 잉그마르 베르히만은 자신의 걸작 ‘베를린의 밤’(원제 The Serpent’s Egg)에서 2차 세계대전 직전 파시즘의 안개가 자욱했던 베를린의 풍경을 이렇게 그렸다.
올해 들어 한국사회를 휩쓴 몇 가지 사건을 열거해보자. 황우석 파동, 월드컵 열풍, 영화 ‘괴물’의 기록적 흥행 등등. 언뜻 연관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조금만 더 복기해보면 이 세 사건에서는 ‘다른 한 편’이 거의 존재하지 않았거나 극단적으로 억압받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진실에 대한 확신보다는 개인에 대한 맹목적 지지가 지배적이었던 황우석 파동, 소수에게 강요된 축제였던 월드컵, 한 국가 인구의 25%가 21일 만에 한 영화를 볼 정도로, 꼭 봐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히게 만든 영화 ‘괴물’의 흥행. 이는 우리 사회의 극단적인 ‘쏠림’현상을 웅변하는 대목들이다. 과장한다면, ‘베를린의 밤’ 풍경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런 ‘쏠림’의 이면에는 무엇이 똬리치고 있으며, 언론은 그 안에서 어떤 배역을 맡았을까.
합리적인 상호 작용과 수렴 과정이 생략된 채 한 극단으로 몰리는 이 현상의 이면에는 우리 사회의 근본적인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그 한 가운데 언론이 있다.
“한국에는 다원주의 문화의 뿌리가 없습니다.” 한겨레 안수찬 기자(문화부)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역사적·집단적 경험에서 ‘쏠림’ 현상의 연원을 거슬러 올라갔다.
한국 현대사의 가장 큰 사건은 역시 한국전쟁이다. 이념 대립이 최고조에 이르면서 전쟁이라는 한계상황을 경험한 사람들에게는 ‘생각이 다르면, 남과 다르면 죽을 수 있다’는 공포가 내장되기 시작한다. 이런 공포는 후대에도 공적·사적 영역에서 학습되고 전수된다. 이런 사회에서 소수자적인 것, 반주류적인 것, 기성 체제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불이익을 감수하고서야 가능하다. 이런 질서를 거스르려면 큰 용기가 필요한 상황이 된다. 급기야 주류와 대세에 따르지 않는 사고와 행위 자체는 꺼려야 할 일이 돼버린다.
인터넷문화 확산으로 ‘쏠림’심화
이런 현상은 90년대 이후 저항 담론의 해체와 이에 대한 불신, 찰나적인 인터넷 문화의 확산을 겪으면서 점점 심화된다. 김대중-노무현에 이르는 이른바 ‘민주주의 정부’의 실패는 민주주의라는 저항 담론에 대한 신뢰가 철회되거나 붕괴되는 과정이었다. 이에 따라 주류담론에 대한 저항담론의 형성 가능성은 현저하게 떨어졌다. 여기서 저항담론의 공백상태가 나타난다. 젊은 세대 담론의 빈 자리에는 영상문화, 인터넷, 게임 등이 대신 채워졌다.
안수찬 기자는 “한국 젊은 세대의 개인주의는 집단과 지배 이데올로기에 저항하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비어있는 상태에서 생겨난 것”이라고 말한다. 즉 반성과 성찰에 의한 담론은 없으며, 그 빈 자리에 무언가가 생기면 곧바로 휩쓸려 들어간다는 것이다. 그것은 민족주의가 될 수도 있고, 국수주의, 국가주의, 보수주의가 될 수도 있다. 이런 불안한 담론 상태를 실어 나르는 것은 인터넷이며, 그 결과 여중생 사건과 탄핵 반대, 황우석 파동이 동일한 사람들에 의해 크게 다르지 않은 양상으로 나타난다.
민족적이고 지정학적인 시각으로 틀을 옮겨보자. 한국이 처한 두 가지 조건은 ‘단일성’과 ‘밀집성’이며 한국인의 다섯 가지 속성은 획일성, 집중성, 극단성, 조급성, 역동성이라고 보는 한림대 김영명 교수(정치외교학과)는 이 같은 성향이 우리 사회의 쏠림 현상을 강화시키고 있다고 해석한다.
한국의 문화를 얘기할 때 흔히 유교적 전통을 말한다. 하지만 김 교수의 시각에서 이는 한국만의 고유한 것은 아니다. 유교 문화는 중국과 일본에도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민족적 단일성, 문화적 단일성에 지배되는 국가다. 또한 분단과 냉전은 남북 각 지역에서 이념적 단일성마저 쌓았다. 국가가 주도한 급격한 압축성장도 한 몫을 했다.
밀집성도 단일성 못지않게 중요한 요소다. 좁은 국토, 지역에 많은 인구가 모여산다는 것이다. 이는 경제성장 과정에서 도시화와 수도권 집중이 이뤄지면서 더욱 심해졌다. 이런 밀집성은 극단적 사고와 행동을 부추기는 조건이 된다.
우리사회 ‘단일·밀집성’도 한몫
김 교수는 우리 사회를 ‘단일·밀집사회’라고 규정하면서 이 같은 사회적 조건이 극단적인 ‘쏠림’ 현상을 강화시키고 있다고 말한다.
공산당으로부터 축출당한 마르크스주의자이자 프로이드의 후예였던 오스트리아 출신의 성(性)경제학자 빌헬름 라이히(1897~1957)의 분석틀도 21세기 한국사회의 ‘쏠림’ 현상을 해석하는 데 시사하는 바가 크다.
라이히의 주장에 따르면, 성욕을 포함한 동물적이고 기본적인 욕구가 충족될 때 인간은 스스로를 책임지고, 불의에 저항하는 등 이상적인 성격구조를 갖게 된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는 대부분 그런 욕구들이 만족되지 못한다. 오히려 억압되면서 개인에 내재되기 시작한다. 억압된 욕망은 계기에 따라 극단적이고 공격적, 자극적으로 표출된다.
라이히의 저작인 ‘파시즘의 대중심리’를 국내에 소개한 황선길 박사는 “이러한 인간적 욕구에 대한 억압과 사회적인 억압이 맞물릴 때 인간의 공격성, 극단성, 가학성이 강화된다는 게 라이히의 이론”이라고 말했다.
억압된 욕구가 극단적 표현으로
한국 사회는 청소년 시절부터 기본적인 욕구를 억압한다. 성인이 되면서 경제 사회적인 억압도 가중된다. 합리적 토론이 거세됐던 황우석 파동이나 묻지마 관람으로 나타나는 괴물의 열풍, 극단적인 네티즌 문화도 결국 이런 축적되고 억압된 욕구의 발현이다. 황선길 박사는 ‘파시즘의 대중심리’의 후기에서 “붉은 악마의 열광적 응원과 성적으로 억압되고 가부장적 권위에 억눌린 한국 대중들의 환호 속에서 라이히가 말한 파시즘적 성격구조를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고 썼다.
이런 현상을 주도하는 것은 사회적으로 가장 불안한 계층이다. 한국사회에서는 중산층이 그 역할을 맡는다. IMF 사태를 겪고 신자유주의 개혁이 강화되면서 중산층은 “위로 올라갈 가능성은 희박해지면서 잘못하면 바닥으로 추락할 수 있는” 불안에 시달리게 된다. 자기 정체성 혼란과 취업난, 불확실한 미래에 허덕이는 젊은 층이나, 가정에서 억압된 주부들이 월드컵과 상관없이 빨간 옷을 입고 광장으로 모여드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그는 “이러한 억압구조를 허무는 문화가 자리 잡지 못하고 우리나라의 경제가 조금만 더 힘들어질 경우 ‘쏠림’ 현상은 더욱 극단적이고 폭력적으로 나타날 수 있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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