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건호 선생님의 쾌유를 빌며

'평생 지켜오신 ´기자 혼´후배들에게 전해주시길...', 선생님의 땀 희생 잊은 채 살아가는 건 아닌지 반성하게 돼

한겨레 사회부 이상기 기자





청암 송건호 선생님께.

지난 3월 초순, 한겨레신문을 떠난 선배님들을 모시는 ´홈커밍데이´ 개최소식을 전하려 조연현 후배

와 역촌동 선생님댁을 찾을 때만해도 좀체 새싹을 움튀울 것같지 않던 나목들에 어느새 파릇파릇한

기운이 감돌고 있습니다. 산수유, 개나리 등 이른 봄꽃들이 제법 화사하게 봉오리를 터트리는 중입니

다.

파킨슨증후군이란 어려운 병환을 얻어 벌써 몇년째 병상에 누우신 노선배님을 대하는 저희는 경외

감과 함께 안타까운 마음 뿐이었습니다. 지난 1950년대 이후 40여년 오직 한길, 이땅의 바른언론을 위

해 온몸을 던지신 선생님께서 만년을 이토록 괴롭게 맞으셔야 하다니요? 신을 원망하고 싶기도 합니

다. 아직도 멀기만 한 민주언론의 길에서 선생님의 손길이 너무 아쉽기 때문에 더욱 그렇습니다. 지

난 88년 봄, 신문다운 신문을 만들겠다는 열정 하나로 선생님을 중심으로 뭉쳐 창간한 한겨레신문조

차 이러저러한 문제들로 당신을 힘들게 한 적이 한두번이 아닌 것도 안타깝고 죄송스럽기만 합니다.

지금 선생님께서 안고 계신 고통은 저희 후배들을 위해 대신 짊어지시는 십자가인지도 모르겠습니

다.

저희들은 정말 염치도 없는 후배들입니다. 그토록 애써 일구신 길을 무임승차하면서도 감사의 염조

차 갖지 못하고 있으니까요. 선생님을 비롯한 선배님들의 땀과 희생을 잊은 채 저희가 잘난 것으로

착각하는 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오는 7일 또다시 신문의 날을 맞습니다. 기자 생활을 시작한 뒤 13번째 맞는 ´생일´입니다. 그러나 부

끄럽기만 합니다. 과연 기자 초년병의 첫마음을 얼마나 간직하고 있나 생각하면 너무 초라해지고 얼

굴이 달아오릅니다. 나태와 안일, 타협과 자기합리화, 아집까지…. 저 개인 뿐이 아니겠지요.

기자사회가 뭔가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듯한 느낌을 받을 때도 한두번이 아닙니다. 물론 일반사

회가 변하는 만큼 기자들 역시 바뀌어야 하겠지요. 스스로 주체적으로 바뀌면서 사회의 변화를 이끌

어 나가는 것도 기자의 중요한 사명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변질과 변화는 분명 구분이 되는 것일진

대, 지금 기자사회가 과연 바람직한 방향으로 변하고 있는지 의문이 들 때가 많습니다.

´의미´는 슬며시 밀려난 채 ´재미´에 치중하는 편집태도도 그 가운데 하나입니다.언론이지켜나가

야 할 기본적인 가치와 책임이 점점 사라져가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어느새 우리나라엔 언권(言

權)이란 말이 보통명사가 되고 말았습니다. 말 그대로 언론이 권력, 그것도 `브레이크없는 ´벤츠´식의

권력으로 치닫고 있는 것이 아닌가 우려되기도 합니다.

그뿐 아닙니다. 불과 2년전 IMF의 지원을 받게되자 그동안 한솥밥 먹던 식구들을 언제 봤냐는 듯 내

쫓던 언론사가 이젠 증면경쟁에 뛰어들고 백화점식 사세확장에만 열을 올리는 현실을 어떻게 이해해

야 합니까? 여러가지 사정이야 있겠지만 ´대박´을 찾아 고달픈 기자생활을 접는, 젊고 영악한 기자들

은 또 어떻게 이해해 주어야 하는 건지요? 애정어린 질책과 이를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선후배간의 모

습은 좀처럼 찾기 힘든 게 지금 우리 언론사의 현주소가 아닌가 합니다. 인간애 넘치는 따스한 정과

서로 토닥거려줌이 그리워지는 요즘입니다.

송 선생님, 걱정스런 이야기만 늘어놓아 송구스럽기 그지 없습니다. 선생님, 넓으신 마음으로 이해

해 주실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선생님, 새봄을 맞아 숨죽였던 생명들이 다시 활력을 얻듯 당신께서도 병상을 박차고 저희 곁으로

돌아와주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리하여 이땅에 다시한번 선생님이 평생을 지켜오신 ´기자혼´을

후배들에게 아낌없이 전해주십시요. 선생님, 다시한번 쾌유를 빕니다. 안녕히 계십시요.



2000년 새봄 이상기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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