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여론조사 보도/믿어야 할 지 말아야 할 지...

조사-보도 시차 크고 표본수는 너무 작아, 동일인 지지율 언론사간 19% 차이날 수도

이필재 중앙일보 이코노미스트 기자





 공직선거법의 여론조사 공표금지 조항에 따라 언론사들의 총선 여론조사 ‘쇼’가 지난 달 27일 막을 내렸다.

 17일간 ‘금지된 장난’은 그러나 예년과 마찬가지로 선거운동 기간과 투표 당일까지 지속될 것이다.차이가 있다면 보도가 원천봉쇄돼 수용자들에게 바로는 제공될 수 없고,따라서 유권자들의 결정에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이번 여론조사 보도가 일으킨 혼란을 떠올리면 국민의 알 권리를 침해하고 언론의 자유를 제약하고 있는 이 ‘독소조항’에 대해 다 나쁘다고만 할 수도 없을 것 같다.

 선거여론조사는 검증이 가능한 거의 유일한 여론조사이다.현행 선거법은 세계서 가장 긴 기간 여론조사 결과의 공표를 차단함으로써 이를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다.병역·납세·전과 등 후보자의 선택을 좌우할 수도 있는 이슈들이 연일 터져 나오는 마당에 적어도 17일 전 득표율을 예측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선거법이 ‘여론조사의 꽃’이라는 선거여론조사의 본격적인 개화를 가로막고 있는 셈이다.보도금지 기간이 길면 상대적으로 인지도가 낮은 정치 신인들이 불리하다.신생 정당과 무소속 후보들에게도 불리하게 작용할 개연성이 있다.

 이 조항은 또 여론조사와 여론조사보도 종사자들의 긴장감을 떨어뜨리는 구실을 한다.사실 여론조사의 품질을 실질적으로 검증할 수 있는 자율규제기구나 외부의 견제장치가 없다는 것도 문제다.

 이번 총선 여론조사는 결과를 그대로 수용한다고 하더라도 몇 가지 문제를 남겼다.우선 일부 언론사들이 조사시점과 보도시점간에 최장 열흘의 시차를 둠으로써 결과의 ‘들쭉날쭉’을 가중시켰다.일주일 새 5% 이상도 왔다갔다하는 판에 열흘이라면 후보간 역전이 일어날 수도 있는 기간이다.여러 날 걸려 실시된 여러 선거구의 여론조사를 한꺼번에 묶어 발표하려다 보니 생긴 결과이다.이 역시 정치 신인들에게 불리하게 작용했을 것이다.

 둘째,표본 크기가 지나치게 작은 조사들이 적지 않았다.중앙 일간지 여론조사 중 심지어 선거구당 표본 크기가 2백여명에 불과한 것도 있었다.2백명이면 95% 신뢰수준에서 표본오차가 ±6.9%이다.비슷한 날짜에 보도된 여론조사의 조사시점간에 시차가 1주일 정도 나고,1주일이면 5% 정도의 등락이 있을 수 있다고 가정할 때,극단적으로 같은 후보의 지지율이 언론사간에 18.8% 차이가 나도 조사방법론상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얘기다.애초에 들쭉날쭉일 수밖에 없는 여론조사를 우리 언론사들이 했다는 뜻이다.이런 조사를 하고 표본오차를 제대로 밝힌다고 책임이 모면되는 것은 아니다.

 조사업계 일각에서는 일부 여론조사 결과와 관련,권력측과 조사회사간의 유착,언론사와 조사회사간의 밀착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정부기관이 최대의 고객인 일부 사회조사 전문회사들이 물량 확보에 눈이 어두워 스스로 공신력을 떨어뜨리고 있다는 것이다.여당 후보가 크게 앞선 것으로 나온 일부 선거구의 경우 여당에서조차 의아해 하고 있다고 들린다.일부 여론조사 종사자들이 정치권으로부터 유혹을 받았다는 얘기도 흘러나오고 있다.

 한 조사회사 관계자는 이런 의혹에 대해 “여론조사 결과가 맞고 틀리고와는 차원이 다른 문제”라며 “사회의 공기로서의 공신력을 훼손하는 것은 스스로 무덤을 파는 행위”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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