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에 대한 확신 없어 불안"

기자들, 왜 기업으로 가나
육체적·정신적 소모 많고 고용불안도 심각 '복합적'




   
 
   
 
“10~20년 후 기자로서 내 모습을 생각해보니 그림이 잘 그려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런 불안을 상쇄할 만한 자부심이나 애사심을 갖기도 힘들어졌다. 기자의 숙명인지도 모르겠지만 육체적인 소모와 정신적, 시간적인 쪼들림 역시 갈수록 심해졌다.”

현재 대기업 계열사의 홍보파트에서 일하고 있는 한 전직 기자는 이렇게 기자 기업체 이직 현상의 실마리를 찾았다. 이직의 이유는 개인별, 회사별로 다양하다. 꼭 무엇 하나 때문이라고 말하기 힘든 구석이 있다. 한마디로 복합적이다. 그러나 자리를 옮긴 기자들은 모두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을 꼽는다.






“기자는 장기적으로 불안”

금융권에서 일하고 있는 한 기자 출신자는 “연차가 쌓이면서 기자를 계속할 것인지, 다른 일을 할 것인지 고민했다. 기자는 나이를 생각할 때 장기적으로 불안했고, 개인 사업은 위험 부담이 있어 가족들의 반대가 컸다. 기업체는 평소 관심도 있었고 마침 기회가 닿아 일하게 됐다”고 말했다.



최근 전직하는 기자들은 7년차부터 20년차 이상까지 다양하다. 그 중에서도 10년차 안팎의 중견기자들이 많다. 인생의 중요한 기로에 서있는 나이다. 이들은 대부분 “기자 일을 하면서 40~50대 이후 나의 모습이 잘 그려지지 않았다”고 털어놓았다. 미래에 대한 확신을 주면서 자신이 전문성을 가질 수 있는 분야를 찾는 것이다. 사회의 중심이 ‘시장’으로 옮겨지면서 자기가 실제 주체로서 일해보고 싶다는 욕구도 한 몫 한다.



기자로서 자부심도 더 이상 버팀목이 되지 못한다. 많은 이직 기자들의 경우를 보면 ‘기자는 천직’이라고 여기는 자부심과 매력을 포기할 수 있을 때 이직을 결심하게 된다. 요즘 기자가 그럴만한 여건이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한국언론재단 최광범 미디어진흥팀장은 우리나라 기자들의 달라진 지위가 기업체로의 이동을 부른다고 분석했다. “한국 언론사를 살펴봐도 기자는 거시적인 전망을 제시하는 엘리트 중의 엘리트 집단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각사의 경영 위기로 고용 자체가 불안해졌다. 기자들도 자사 이익에만 집착하게 되고 질도 낮아진다. 한마디로 기자의 지위가 떨어진 것이다.”



기자들이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고개를 돌리는 한편, 기업은 자신들이 필요로 하는 전문가 집단들을 영입하기 위해 물색한다. 홍보파트 등 필요한 업무부서 등에서 요구하는 전문 인력을 찾다보면 기자들이 자연히 눈에 들어오기 마련이다. 둘 사이의 이해와 요구가 맞아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기업체로 진출한 기자들은 “기자 출신들이 기업에서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고 입을 모았다. 기자 시절 구축해놓은 인적인 네트워크나 대인관리 능력은 발군이다. 현안에 대한 본능적인 판단력, 복잡한 사안의 핵심을 꿰뚫고 단순화시키는 종합적 분석능력 또한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다. 평소 마감으로 단련돼있기 때문에 업무의 속도가 빠르고 시간 엄수가 철저하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출입처를 옮기면서 키운 적응력과 순발력은 기업 문화를 이해하는 시간도 단축시킨다. 특히 홍보 부문의 일에서는 그 누구보다도 언론의 생리를 잘 알기 때문에 업무 완성도가 보장된다. 금융업계에서 근무 중인 한 기자 출신자는 “기자들은 대부분 일을 위해 개인을 희생하는데 익숙한 업무지향적인 사람들”이라며 “자기 일에 집중력이 뛰어나고 열정적인 점도 일반 기업 출신들보다 뛰어나다”고 말했다. CJ 그룹의 한 관계자는 “기자 출신 경력사원들은 네트워킹 능력, 종합적 판단력 등에서 업무 전문성이 높다”며 “조직 내에서도 높은 평가를 내리고 있다”고 말했다.





심적 부담 줄고 근무환경 향상

본보와 연락이 닿은 전직 기자들은 대부분은 기업체 이직 후의 만족도도 비교적 높은 편이었다. 우선 경제적인 대우가 나아진 것은 분명하지만 남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프리미엄이 따르지는 않는다는 게 한결같은 반응이다. 업무 강도도 크게 줄지는 않는다. 그것보다는 자기 전문성이 강화되는 데 따른 성취감이 뛰어나다. 마감에 따른 심적인 스트레스에서 자유롭고, 적정한 휴가와 휴일이 보장되는 등 향상된 근무환경에도 큰 점수를 줬다.



기자 출신이라고 해서 모두 기업체에서 좋은 결실을 보는 건 아니다. 기업체로 들어와서 성공 여부는 주로 개인 성향 차에 달렸다는 지적이다. 결정하기 앞서 자신의 성향을 꼼꼼이 점검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기업체 생활을 경험해 본 한 기자는 “어느 정도 예상은 하더라도 실제 부딪혀 보면 하루 종일 사무실에만 묶여있어야 하는 업무 스타일 등이 잘 맞지 않을 수 있다”며 “이직하면서 달라질 환경 등에 대한 정보를 사전에 자세히 알아보는 게 좋다”고 말했다. 기자가 갖는 사회적 메리트를 포기할 수도 있어야 한다. 기자로서의 특권의식에 젖어있는 사람은 기업체에서 자리 잡기 힘들다. 기업체 진출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나 거부감도 버려야 한다. 기자 출신인 한 대기업 계열사의 간부는 “기자 출신자가 기업 문화에 적응하려면 먼저 오픈 마인드를 갖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기업체로 이직한 기자들에게는 곱지 않은 시선도 따른다. 기자 출신들이 기업체에서 주로 진출하는 분야는 홍보파트. 그곳에서 주로 자사에 불리한 기사 막기 등 ‘대 언론 로비 활동’을 벌인다는 것이다. 자신이 담당하던 출입처에 취업하는 경우도 도마에 오른다. 그러나 현업에 있는 기자 출신 기업 홍보 담당자들은 적극적으로 반박한다.



한 기업체 홍보담당 전직 기자는 “기사를 하루는 막을 수 있어도 한 달 두 달까지 막기란 어렵다”며 “정보지, 인터넷 등 언론환경이 광범위하게 변해 일일이 관리하기란 사실상 불가능”이라고 말했다. 오히려 자기 기업에 대해 잘못되거나 부정적인 기사가 나왔을 때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한다. 그것은 기자 출신이 아니더라도 누군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이라는 것이다. 이들은 “만약 기업들이 부정한 관계로 언론과 거래를 하려고 한다면 파급효과가 큰 거대 신문이나 지상파 방송사 출신들만 뽑지 않겠냐”고 되물었다. 한 전직 기자는 이전 담당 출입처 취업 문제에 대해서도 “언론이 반드시 출입처와 적대적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 아니라면 이것이 굳이 왜 문제가 되는지 모르겠다” 고 주장했다.



과거와 달리 언론과 기업의 관계도 달라졌다. “이제 언론과 기업은 갑을관계가 아니라 서로 주고받는 수평적, 윈 앤 윈의 관계”라는 말이다. 과거처럼 기업이 언론의 눈치를 봐야하는 시대는 지났기 때문에 굳이 불필요한 로비를 하거나 작업을 할 필요도 없다는 주장으로 풀이된다.





기업체 이직 계속 늘어날 듯

앞으로도 기자 출신들의 기업체 이직은 계속될 전망이다. 한 대기업 인사 담당자는 “예전에는 기업 내에서 기자 출신이 필요하다는 요구가 있어도 ‘기자가 여기 오겠냐’는 분위기였다”며 “최근 들어서는 기자들이 직업에 대한 위기의식이 크고 대안이 될 수 있는 비전을 찾기 때문에 제의에 훨씬 개방적으로 임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미디어가 우리 사회의 주요한 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 자리잡은 상태에서 기업이 이에 대한 전문가를 원하고, 기자들이 자기 신분 불안에 따라 장기적인 전망을 찾지 못한다면 이는 더욱 가속화될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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