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신기자가 본 한국의 선거보도

후보별 지지도 수치를 왜 싣나, ´유리´´우세´등 표현 신중해야

배수일 아사히신문 서울지국 기자





지난 27일자 신문을 끝으로 선거운동만큼이나 경쟁적이었던 신문사간의 여론조사 보도가 일단 막을 내렸다. 언론사간의 여론조사 경쟁은 양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일본 언론사의 경우에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디테일을 살펴 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일본 언론의 경우 선거 여론조사의 발표시기와 방법 등에 있어서 아무런 제한이 없다. 마음만 먹으면 선거기간 중에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 그런데도 총선의 경우 선거기간 중에는 2회를 넘기는 법이 없다. 이유는 있다. 여론조사에서 최우선 고려사항은 신뢰도인데, 샘플링 등 설계과정에서 최소한의 신뢰도를 확보하기 위한 안전장치에 충실하다 보니 인력과 자금 면에서 부담이 적지 않은 데다, 시간도 많이 걸린다. 따라서 언론사 스스로 여론조사 회수를 제한할 수밖에 없다.

아사히의 경우 선거구마다 최소 500∼700명의 샘플을 추출하는데, 이 과정을 여론조사의 성패를 가름하는 관건으로 간주하고 철저를 기한다. 한가지 특기할 것은 일본의 경우 관청이 언론사의 여론조사에 한해 주민표, 즉 지역주민의 신원정보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표성을 갖는 샘플링이 가능한 것도 이 때문인데, 아마 언론이 그만큼 사회적 공신력을 축적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결과를 보도하는 단계에서는 한국 언론과 완전히 다르다. ´후보별 지지율 23.2% 대 25.4%´라는 식으로 구체적인 수치를 게재하는 일은 결코 없다. 철저하게 기사로만 말한다. 오차범위를 넘어 뚜렷하게 선두를 달리고 경우는 ´有利´ 또는 ´優勢´, 다소 앞서고 있는 경우는 ´한 발 리드´ 등 기사로만 처리한다.

지지율 수치를 보도하는 것은 정당의 경우에 국한된다. 그래도 각 정당은 그 의미를 충분히 판독해낸다. 각 사마다 지지율의 차이를 어떻게 언어로 표현할 것인가에 대한 사내 매뉴얼이 마련돼 있기 때문에 관계자들은 해당 언론사 특유의 표현에 익숙해져 있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한국 정치는 정국의 역동성 못지 않게 정치기사도 대단히 다이내믹하다. 사실 선거보도가 정치권 보도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정치기사에 대해 논하는 것이 보다 본질적일지도 모르겠다.

정치면과 정치기사의 과다, 기사 본문에 비해 다소 과장된 느낌이 드는 제목, 걸러지지 않은 다분히 ´공해´에 가까운 정보의범람….일본 매체뿐만 아니라 서울에 상주해 본 외신기자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지적하는 것들이다.

한국의 한 원로 정치기자가 "정치기사는 일종의 번역작업이다"고 설파한 것을 듣고 수긍한 적이 있다. 복잡다기하게 얽혀 있는 정치권의 이해와 역학관계, 그리고 그것이 국민생활과 국정에 미칠 영향, 역사적 의의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표현해 내느냐가 정치기사의 요체라는 것이다.

하지만 현상의 본질을 짚어내고 그것을 적확하게 표현해내기 위한 작업을 행여 소홀히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나 스스로에 대한 채찍질 같은 말이기도 하다.
배수일의 전체기사 보기

배너

많이 읽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