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노조 "신문법 투쟁은 FTA 저지 전초전"

"신문법 위헌-FTA 관철은 공영방송체제 붕괴" 주장

전국언론노동조합은 13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저지는 신문법 사수투쟁에서부터’라는 성명서를 통해 헌법재판소가 신문법을 위헌으로 판결할 경우 한미 FTA 미디어 부문 협상에서도 미국의 요구가 대부분 반영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언론노조는 신문사의 방송 및 통신 겸영을 금지한 신문법 15조가 위헌 판결을 받으면 미국이 요구하고 있는 지상파 방송 지분 외국인 참여 금지 해제, 지상파 방송 국내 제작 편성비율 철폐 등도 관철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는 공영방송체제의 무력화로 이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 “지금 필요한 것은 겸영 금지 해제가 아니라 소유규제의 강화”라며 “지금의 소유 규제는 여론 다양성 보장과 국민의 알권리를 보장하기에는 턱없이 못미친다”고 밝혔다.
언론노조는 “한미 자유무역협정 체결 저지는 길고 지루한 싸움이 될지도 모른다”며 “신문법 사수 투쟁은 그 시작”이라고 주장했다.
다음은 성명서 전문.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저지는 신문법 사수 투쟁에서부터!

- 단결투쟁만이 겹겹이 쌓이는 지금의 비상한 국면을 돌파할 수 있다 -


‘문제는 안에 있다.’

한국 사회의 현 주소를 보여주는 잇단 굵직한 사건들을 접하며 새삼스레 되새기게 되는 명제다.

정부가 2002년부터 추진하던 의약품 가격 인하 정책이 좌절된 배경을 보자. 한-미 자유무역협정 체결에 목을 매고 정부가 미국의 요구에 알아서 기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내부에 호응하는 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다국적 제약업체만이 아니라 고가의 신약을 생산하는 국내 제약업체들도 이 정책에 반대했다. 값싸게 의약품에 접근할 수 있는 다수 국민의 권리가 국내·외 자본 모두에 의해 거부된 것이다.

사모펀드여서 인수자격도 없던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인수할 수 있게 된 배경은 또 어떠한가. 금융감독 당국과 재정경제부 고위 관료집단이 국제결재은행(BIS) 자기자본비율 전망치를 8% 미만으로 후려쳐 부실금융기관으로 낙인찍은 파렴치한 행위가 주요한 원인임임이 감사원 조사결과 밝혀지고 있다. 하지만 이 역시 이강원 당시 외환은행장을 비롯해 정부의 구도와 계산을 읽고 알아서 긴 일부 세력이 외환은행 내부에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앞으로 검찰 수사에서는 더 실체적인 내용이 드러날 것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저지하기 위한 언론노동자의 투쟁에서 이런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통해 미국이 노리는 효과의 하나가 한국 공영방송체제의 무력화임을 우리는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무역대표부의 ‘2006년 해외무역장벽들에 관한 국가보고서’를 보면, 한국방송광고공사(코바코) 체제의 해체를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한국 정부는 다양한 공기업, 지상파 사업자, 케이블 및 위성방송 사업자를 포함한 많은 형태의 미디어, 학교와 쇠고기 도매업에 대한 투자에서 외국인 소유제한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며 폐지하거나 완화하라고 강요한다. 지상파·케이블·위성방송을 통해 송신·재송신되는 외국산 콘텐츠의 방송 상한선도 폐지 내지 확대하란다.

미국 정부는 출판물 및 영상물의 저작권 보호기간을 ‘작가의 생존기간+50년’에서 ‘작가의 생존기간+70년이나 95년’으로 늘릴 것도 요구했다. 현행 49%인 통신 부문에 대한 외국인 소유 상한선을 철폐하라고 압박하고 있다. 분기별로 열린 2005년 한-미 통상정례점검회의에서 통신 부문의 추가 개방과 외국인 소유 제한을 폐지하라고 “강력히 촉구했다”고 밝히며, 한국 정부에 이를 계속 요구하겠다고 못 박아둔 상태다.

언론노동자는 한-미 자유무역협정에 대한 개별 이해관계를 뛰어넘어야 한다

미디어 관련 분야에 대한 미국의 요구 각각에 대해 방송사마다 신문마다 이해가 엇갈릴 수 있다. 실제로 코바코 해체와 완전경쟁체제는 국내 방송계 일각의 꾸준한 요구이기도 했다. 저작권 보호기간의 대폭 연장은 콘텐츠 판매로 짭짤한 수입을 올리는 방송사나 신문사들이 내심 좋아할 수도 있는 사안이다. 그동안 난마처럼 얽힌 미디어 분야의 실타래를 푸는 계기로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삼자는 그럴싸한 논리를 펴는 언론학자들도 조만간 등장할 것이다.

단언할 수 있다. 우리가 원하는 대로 한-미 자유무역협정에서 미디어 관련 부문 협상이 이뤄질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착각이다. 한국 정부가 모든 통상 분야에서 미국이랑 맞장을 뜰 각오가 돼 있어도 이뤄지기 어려운 바람이다. 이를 뒷받침하는 대표적인 예로 미국의 반덤핑 조처 남용에 대한 비판을 꼽을 수 있다. 한국 정부는 도하라운드 협상과정에서 미국의 반덤핑 제재 남용에 대해 강한 비판의 목소리를 크게 높여온 나라의 하나다. 하지만 미국은 지난 2월 이런 요구를 수용할 뜻이 없음을 일찌감치 선언했다. 그도 그럴 것이, 미국의 반덤핑 제재는 1974년 무역법의 일부인 ‘스페셜 301조’에 근거한 세계 통상전략의 중추를 이루는 요소다. 미국이 한-미 자유무역협정 협상에서 한국의 주장을 받아들여 반덤핑 남용을 방지하는 내용을 담은 수정법안을 의회에 제출하리라 기대하는 건 순진함의 극치를 이루는 발상이다.

아니 정직하게 말하자. 맞장을 뜨는 걸 한국 정부에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다. 과연 2005년 한- 통상정례점검회의에서 한국 관료들은 미국의 미디어 관련 개방 요구에 대해 어떤 태도를 보였던 것일까. 미국의 통신 부문에 대한 외국인 소유 상한선은 20%로 한국보다 훨씬 더 엄격하다는 사실이나, 우리와 마찬가지로 지상파 방송에 대한 외국인의 직접 소유를 금지하고 있고, 간접소유도 25%로 막고 있다는 사실을 언급이라도 한 것일까. 불행하게도 우리는 한국 정부에 그런 믿음과 기대를 하고 있지 않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한국의 경우, 지상파 방송에 대한 외국인의 직접투자는 미국과 마찬가지로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지상파 방송의 모기업이나 할아버지 기업의 지분을 갖는 방식의 간접소유에 대해서는 무려 49%까지 소유할 수 있다. 이미 국내의 대표적인 지상파 방송인 SBS의 경우 모기업에 대한 외국인 지분은 37%에 이르러 외국인의 간접지배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간접소유 한도를 20%로 묶어둔 미국이었다면 초과지분을 팔아야 했을 것이다.

헌재 결정에 따라 ‘외국자본-족벌(가족소유신문)-재벌’ 3각 편대가 날개를 달 수 있다

각자의 이해관계에 충실할 때 어떤 결과가 빚어지는지 거대신문들의 행보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신문법에 대해 위헌심판청구를 한 두 신문인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그리고 중앙일보는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지지하는 분명한 보도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는 이들 세 신문의 이해관계에 맞는 쪽으로 국내 매체환경을 바꿀 수 있다고 계산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지긋지긋할 정도로 억지를 부리는 이들 신문은 일간신문이 보도전문채널을 소유하고 지역 지상파 방송을 겸영할 수 있다는 결정을 헌법재판소가 내려주기를 갈망하고 있다. 두 신문이 낸 위헌심판청구서에도 이런 속내는 그대로 묻어난다.

이런 계산에 놀아나지 않을 정도의 현명함이 헌재에 있을 것이라고 우리는 믿는다. 언론 자유를 언론사 소유주의 자유로 강변하는 신문들이, 엄청난 불법 경품 및 무가지 살포를 통해 신문시장을 “약탈”해 시장지배력을 키워온 신문들이 지상파 방송과 보도전문채널을 소유할 수 있게 된다면, 그 자체로 ‘사회적 흉기’를 쥐어주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 여파는 한-미 자유무역협정에 고스란히 반영될 것이고, 결국 공영방송 체제의 붕괴로 이어질 것이다.

과장이 아니다. 현행 신문법상 외국인은 일간신문의 지분을 최대 30%까지, 국내 주요 재벌은 50%까지 소유할 수 있다. 한 마디로 헌재 결정 여하에 따라, ‘외국자본-족벌신문(가족소유신문)-대기업집단’ 3각 편대가 매체환경을 지배하는 길이 열릴 수 있다는 얘기다. 이는 마치 외국인이 49%까지 소유할 수 있는 국내 통신자본이 지상파 방송에 진출하는 것에 버금가는 효과를 갖는 것이다.

오히려, 지금 필요한 것은 겸영 금지의 해제가 아니라 소유규제의 강화이다. 지금의 소유규제는 여론 다양성 보장과 국민의 알권리를 보장하기에는 턱없이 못 미친다. 이런 상황이 빚어진 데는 ‘신문-방송 겸영금지’라는 대전제를 유지하면서 외국자본과 국내 주요 대기업집단이 소유할 수 있는 상한선을 점점 높여온 사정이 작용했다.

오히려 지금은 교차소유 허용이 아닌 소유규제를 강화해야 할 때다

아울러, 우리는 신문법에 등장하는 ‘겸영’ 및 ‘상호겸영’이라는 애매한 표현을, ‘소유’ 및 ‘교차소유’라는 분명한 개념으로 이해할 것을 헌재에 촉구한다. 신문법의 겸영 및 상호겸영 개념은 방송법에서 일간신문은 지상파 방송, 보도전문채널, 종합편성채널을 소유할 수 없다고 못 박고 있는 맥락에서 이해해야 하기 때문이다. 국회 역시 “겸영할 수 없다”는 신문법의 애매한 표현을 “소유할 수 없다”로 확실하게 바로잡는 작업에 당장 나서야 한다.

지상파 방송의 모기업에 대한 외국인의 소유지분을 현행 49%에서 미국과 같이 20%로 낮추는 법 개정에 즉각 나서야 하는 것도 국회의 몫이다. 국내 주요 재벌의 일간신문 소유 상한선도 현행 50%에서 30% 이하로 낮춰야 한다. 위성방송에 대한 외국인 직접 소유지분 한도 역시 현행 33.3%에서 미국처럼 20%로 낮추고 모기업이나 할아버지 기업을 통한 간접소유 한도도 신설해 미국처럼 25%로 규정해야 한다.

한-미 자유무역협정 체결 저지는 길고 지루한 싸움이 될지도 모른다. 2007년 대통령선거에서 결판이 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도 우리가 열심히 잘 싸워야 가능한 일이다. 신문법 사수 투쟁은 그 시작이다. 느긋하게 마음을 먹을 일이 아니다. 이미 우리는 겹겹이 쌓인 단일한 국면을 맞고 있다. 국내의 한 민영 방송광고판매대행사는 지난 4월11일 코바코의 지상파 광고판매가 위헌이라는 헌법소원을 헌재에 냈다. 미국의 코바코 해체 요구와 맞물려버린 것이다. 어떤 의도와 목적에서 매체균형 발전을 거스르는 이런 헌법소원이 이뤄졌는지도 분명히 밝혀져야 한다.

자기 속한 언론사에 대한 유·불리를 따지기에 앞서 한-미 자유무역협정 저지 투쟁은 언론운동과 노동운동의 근본으로 돌아갈 것을 우리에게 요구하고 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쌓아온 소중한 언론노동운동의 성과가 한 방에 날아가 버릴지도 모른다. 언론노동자가 각자의 작은 이해관계를 놓고 주판알을 튕기는 모습, 이야말로 미국과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밀어붙이는 국내 세력이 원하는 것이다.

문제는 안에 있음을 직시하자. 각자의 작은 이해에 손해가 가더라도 전체의 이해에 정직하게 대면하자. 그럴 때 우리는 이길 수 있다. 언론노동자여, 싸우자! <끝>
장우성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배너

많이 읽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