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당 보스 밀착취재 관행 정치계 타락 원인일 수도'

외신기자가 본 한국의 선거보도

이병종 NEWSWEEK 서울 특파원



언제라고 정확히 밝힐 수는 없지만 과거 언젠가 한국의 대통령 선거에서 서울 주재 외신기자, 특히 구미계 외신 기자들이 다소 빗나간 보도를 한 적이 있다. 당시 각축하던 두 후보 중에서 구미계 기자들이 승산이 있다고 예측 보도한 후보가 낙선한 것이다. 사실 선거 전 각종 여론조사에 의하면 이 후보의 지지도가 상대 후보에 못 미친다는 것은 어느 정도 알려진 사실이었지만 외신들의 보도에는 이런 내용이 별로 부각되지 않았다. 왜 이러한 상황이 발생했을까? 여러 이유가 있었겠지만 아마 가장 큰 이유는 외신 기자들의 다소 고지식한 보도 태도가 아니었나 한다. 여론 조사에서 어떤 결과가 나오든 신경 쓰지 않고 자신들이 직접 눈으로 보고 귀로 들어서 확인한 것만을 집착했기 때문이다. 당시 구미계 외신 기자들의 취재원들은 대개 이 낙선된 후보가 좀 더 우세하다고 믿고 있었고 기자들 자신들도 이 후보가 좀 더 능력이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결국 자신들이 실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얘기만 보도해야 한다는 원칙에 충실한 이들로서는 어쩔 수 없었던 상황이었다.



외신의 이러한 미시적이지만 현장위주의 보도 태도가 옳고 그른지를 논하기에 앞서 확실한 것은 이런 태도가 국내 언론의 보도 행태와는 상당히 다르다는 점이다. 적어도 본 기자가 판단하는 바에 의하면 국내 언론은 좀 더 거시적이고 사령부위주의 탑다운식 보도를 하고 있다. 특히 선거 보도의 경우 유권자 개개인의 의사보다 더 중요시하는 것이 정당 중심부와 당 중심부의 동향이다. 물론 국회의원 선거의 경우 공천권이 이들로부터 나오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상황인지도 모른다. 또 일단 공천이 확정된 다음에는 국내 언론도 현장 유권자의 목소리에 깊이 귀를 기울인다는 점을 인정한다. 그렇지만 공천에 앞서 언론이 각 지역구의 유권자들이 어떻게 생각하는가를 미리 취재 보도하는데 힘을 기울인다면 좀 더 합리적인 공천이 되는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선거의 최종 결과는 당 지도부가 아니라 유권자들에 의해 좌우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국내 언론의 선거 보도 스타일은 아마도 오랜 동안 정치 및 정당 보스들을 밀착해서 취재해 온 국내 정치 보도 관행 때문이 아닌가 한다. 새벽부터 당 총재나 중진급 인사 집에 머물면서 이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취재해 오던 정치부 기자들로서선거시이들의 동향에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그러나 이런 정치 보도 태도가 한국의 정치 지도자들을 타락시키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즉 연일 정치면에 대서특필되는 자신들의 기사와 사진을 보면서 자신들이 정치의 중심에 있는 듯한 착각이 들게 되는 것이다. 정치가 민의에 바탕을 두고 선거가 민의 소재를 묻는 기회라는 점에서 보면 이는 엄청난 착각이다. 도대체가 김종필 명예 총재가 국내 정치 상황을 모택동의 문화혁명과 비교했다는 것이 무슨 큰 뉴스가 되는 것일까. 야당의 중진 인사들이 상도동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과 어떤 대화를 나누었는가 하는 것이 선거 보도에 무슨 도움이 될까 하는 의문이 든다.



최근에 힘을 얻어 가고 있는 시민단체의 선거운동은 결국 이런 한국 정치와 정치 보도의 구태를 타파하는 노력으로 보인다. 이번 낙천 및 낙선 운동의 위법성이나 낙천 및 낙선인사 명단 작성시의 객관성 부족 등 여러 가지 문제에도 불구하고 서울 주재 외신이 이들의 운동에 관심을 갖는 것은 이 때문이다. 한국 언론이 국내의 정치 및 선거 상황을 보도하며 등한시 했던 광범위한 민의의 동향과 소재를 이들 시민단체를 통해 읽을 수 있다면 이런 관심은 아마 선거가 치열해 지며 더욱 커질 것이다. 이병종의 전체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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