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검 총선보도 평가교수단]언론 이율배반적 보도 행태 ´여전´

지역주의 사설은 비판-기사는 그대로 소개

김서중(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기존 정치에 신물이 난 유권자들은 선거 시기가 다가오면 정치판 물갈이를 기대한다. 그리고 선거가 끝나면 다시 한숨을 쉰다. 이것이 해방 이후 지나간 우리 선거들에서 유권자들이 반복해서 경험해온 현실이다. 정치는 여전히 정상배들의 놀음으로 끝날 수밖에 없는 것인가. 그래서도 안되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었다. 이번 총선시민연대가 일으킨 바람과 마찬가지로 이전에도 정치판이 거듭 새로 날 수 있는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런데 그럴 때마다 언론은 정치 개혁을 돕기보다는 오히려 개혁의 발목을 잡곤 해 기회를 무산시켰다.



선거가 시작되면 언론은 공정한 선거보도를 다짐한다. 언론이 정치 개혁에 중요한 변수임을 인정하고 부담을 느끼는 모양이다. 공정보도, 지역주의 배제, 바른 선거풍토 조성, 선거에 필요한 정보 제공 등 선거 기간 동안 ´바른 언론´이 지켜야 할 원칙들을 언론사, 언론 종사자, 언론 종사자 단체들이 내놓는다. 기자협회도 총선보도준칙을 제정해 이러한 움직임에 동참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원칙에 대한 공감은 선거 운동이 치열해지기 직전까지의 시기에 한정되는 듯하다. 선거가 임박하면 모든 원칙은 물거품이 된다. 지금 이 시점도 예외일 수는 없는 모양이다.



일반적인 선거보도 원칙, 공정 보도를 한다거나 후보자의 자질과 정책 제시를 분석한다든가 타락선거를 감시하고 유권자의 선거 참여를 유도하도록 보도하는 등의 원칙이 잘 지켜지지 않고 있는 것은 물론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특히 문제가 되는 지역감정 조장 보도는 더욱 심각하다. 지역감정이 선거를 좌우한다는 우리 현실과 이를 ´충실히´ 보도하여 지역 감정을 조장하는 언론의 현실은 우리의 불행이다.



최근 선거 보도 기사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문제점은 두 가지로 압축할 수 있다. 그 첫째는 지역 감정 조장 보도이다. 두 번째는 판세 분석 위주의 경마저널리즘 식 보도다.

지역 감정을 조장하는 보도는 언론사의 이율배반적인 모습을 전형적으로 느끼게 하는 예이다. 공익을 내세우면서 상업적이고, 개혁을 주장하면서 기존 질서에 안주하고, 공정할 것을 주장하면서 편파적인 측면을 그대로 담고 있다. 사설과 컬럼을 통해 지역감정을 자극하는 발언을 하는 정치인들을 비판하면서, 보도 기사에서는 지역감정 발언을 여과 없이 실어 지역감정을자극하는보도 행태가 바로 그것이다. 이는 사설과 컬럼을 통해 공익을 추구하는 듯하면서 자극적이고, 흥미를 끄는 지역감정 조장 발언을 그대로 실어 독자의 관심을 끌려는 언론의 상업성이 그대로 드러난 모습이다. 또 지역감정을 선거에 악용하는 것은 이제 그만 하자고 개혁을 요구하면서 사실은 지역감정을 촉발하는 지역구도를 ´적절히´ 보도하여 새로운 정치 집단의 진입을 막고 있는 언론의 보도가 그러하다. 지역감정 악용을 비판하는 사설이나 컬럼에서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지역 감정 악용을 못하게 하기 위해서는 그 발설자를 엄벌해야함에도 지역 감정의 시초가 어떻다, 혼자만의 잘못이 아니다 등 양시양비론으로 일관하는 논조에서 지역감정이 선거판에 더 이상 발붙이지 못하게 하겠다는 의도는 찾아 볼 수 없다.



<나라찢는 선동정치 … 또 지역감정 부채질 이번엔 유권자가 심판하자>라는 사설을 게재하였으면서도 <10대 요직 절반 / 호남출신이 차지 - 한나라 거들기>, <호남민심 바뀌나 … 현지르포-인물이 아깝고 짠한께 … 무소속 동정론 만만찮아/"어차피 같은 편"/DJ에 대한 애정도 여전> 등의 기사에서 정치인들의 발언, 지역감정에 치우친 유권자들의 반응 등을 여과 없이 보도하여 지역감정을 사실상 조장하는 J일보의 보도 행태는 전형적이다. 지역 감정의 연원을 소상히(정확하지도 못했지만) 다루면서도 현재의 지역감정 발언에 대한 비판을 외면한 D일보, 지역감정의 원인을 양시양비론으로 다룬 H, M일보 등도 예외는 아니었다. 과거보다는 현재 지역 감정 발언자의 책임을 정확히 지적한 또 다른 H, D 신문들의 사설은 그래서 돋보였다고 할 수 있다.



선거 때마다 지적되는 경마저널리즘 식 보도 또한 예외 없이 나타나고 있다. 여론 조사 결과를 빌미로, 각 후보에 대한 지지도의 차이가 왜 발생하는가에 대한 설명 없이 판세 분석만 하는 보도, 지역 구도와 관련하여 특정 당의 우세라는 결과만을 알리는 보도 등이 그대로 반복되고 있다. 여론 조사 결과 보도의 부작용에 대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여론조사 결과 보도가 부적절하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그러나 언론이 여론 조사 결과를 통해 유권자의 판단을 돕고자 한다면 우선은 유권자가 후보자를 판단할 수 있는 자료를 먼저 제공하고 난 후 조사해야 되는 것은 아닐까? 기존의 잘못된 인식, 잘못된 정보에 의존하고 있는 유권자들의´표심´을제공하는 것이 기존 정당과 기존 질서를 재생산하는 것 외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언론은 영원히 기득권 층의 대변자에 머무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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