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법을 만든 게 문제인가, 악법을 불러들인 게 문제인가.
불공정보도를 처벌할 수 있게끔 한 개정선거법을 둘러싸고 한바탕 소동이 일었다.
이 법은 언론중재위 아래에 있는 선거기사심의위원회가 문제가 있는 기사에 대해 ´사과문이나 정정보도문을 싣도록 명령하고 이를 지키지 않는 발행인을 ´징역이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이 조항은 당시 최대쟁점이던 지역구 조정의 소란을 틈타 개정법의 테두리 안으로 슬며시 끼여들었다. 이것은 언론의 자유를 침해하는 명백한 독소조항이다. 언론계의 강력한 반발에 밀려 결국은 국회에서 통과된 지 단 며칠도 못 가 재개정 쪽으로 가닥이 잡혔지만 여기에는 정치권의 단견 뿐 만이 아니라 우리 언론이 안고 있는 문제점이 그대로 농축되어 있다.
불공정 편파보도는 당연히 시정되어야 한다. 하지만 그것을 언론의 자유를 제한함으로써 막아보겠다는 발상은 빈대 잡겠다고 초가삼간 태우는 꼴 아닌가. 이건 용인될 수 없는 위험천만한 발상이다.
언론의 눈치를 가장 많이 보는 정치권에서 뻔한 반발을 예상하면서도 이런 어처구니없는 조항을 끼워 넣은 것은 무엇 때문인가. 초가삼간을 태워도 좋다는 엉뚱한 발상을 할 만큼 빈대가 극성스러웠다는 이야기는 아닌가.
사실 지금까지의 총선 대선보도에서 신문들의 불공정보도는 정치권의 구태 만큼이나 지탄의 대상이었다. 차라리 드러내놓고 "우리는 누구를 지지한다"며 그 기준으로 선거보도를 한다면 독자들이 헷갈리지는 않는다. 겉으로는 어느 신문이나 불편부당을 내세웠다. 그러나 뒤로는 교묘한 편집기술로 특정정파의 이익에 봉사해온 신문이 적지 않았다. 중앙이나 지역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런 장난에 재미를 붙여 대선때 킹메이커를 자임하는 오만방자한 신문까지 있었다.
평소엔 나라 망친다며 지역감정의 폐해를 역설하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이를 거꾸로 이용하기도 했다. 이것을 준엄하게 꾸짖기보다는 오히려 즐기기까지 했다. 정치권이 반발하면 ´언론탄압´이라는 우산 아래로 숨어버렸다. 독자들의 항의는 무시하면 그만이었다. 그렇다고 이런 불공정보도가 제재를 받았다는 말을 우리는 듣지 못했다. 언론이 사회적 공기니 사회의 목탁이니 하는 말은 ´신문의 날´이나 자사창간일을 맞아 자화자찬할 때나 들어보는 말이 되어버렸다.
선거보도에 관한 한 떳떳하지 못했던 많은신문들에게이번 총선 보도는 중요한 리트머스 시험지다. 그간의 불명예를 떨칠 수 있는 더 없는 기회다. 공명정대한 시각으로 시시비비를 화끈하게 가린다면 법으로 보도를 규제할 수 있다는 한심한 발상이 어떻게 발 붙일 수 있겠는가 .
그러나 우리는 불행히 아직도 떠도는 끈질긴 ´편파의 망령´을 본다. 벌써 지역감정에 기댄 기사가 심심찮게 등장하고 있다.
잊지 말 것이 있다. 신문은 역사의 기록이라는 점이다. 영광이건 오욕이건 그 흔적은 고스란히 남는다.
선거법의 독소조항을 떳떳이 폐기처분할 수 있는 길은 이번 총선보도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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