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기자상 수상 취재기 / 한국전 직후 양민학살
60년 당시 조사부장이 도와줘, 1보 나가자 유족들 제보 봇물처럼 쏟아져
이종태 매일신문 사회부 기자
"한국전 발발 직후인 1950년 하반기, 영호남 지역을 중심으로 한 전국을 무대로 보도연맹원과 교도소 재소자 등 ´좌익 혐의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광범위한 집단 학살극이 대한민국 군경에 의해 벌어졌다." 이 주장은 사실인가? 대구.경북 지역의 경우 이번에 인골이 발견된 경산시 폐코발트광산을 비롯, 20여 곳에서 한국전 발발 직후 양민학살이 자행됐다는 ´이야기´가 대학가를 중심으로 ´전설´처럼 전해져 내려오고 있었다. 나는 지난해 6월쯤 대구의 한 목사로부터 이 ´이야기´를 듣고 탐문취재에 나섰지만 직접적인 체험자가 없는 상황에서 "부근에서 그런 일이 있었다"는 주민 증언 정도만으로는 안타깝게도 기사화를 시도할 수 없었다.
그러던 지난 1월 첫 제보자인 목사를 통해 1960년 당시 한국전 직후 양민학살사건을 조사했던 경북피학살자유족회 조사부장 이복영 씨가 생존해있다는 것을 알게 돼 학살현장 찾기에 본격적으로 나설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다. 당초엔 학살 현장인 폐광산 위치나 시신이 무더기로 던져졌다는 수직갱도의 흔적만 찾아도 ´다행´이라는 심산이었다.
그러나 폐광산 소재지인 경산시 평산2동에 도착한 뒤 운 좋게도 당시의 참극과 폐광산 갱도의 위치를 알고있는 주민들을 만났고, "젊은 시절 갱도 내에서 인골을 발견한 적이 있고 지금도 있을 것"이라는 증언을 듣게 되면서 생각이 변했다. 과연 동굴 같이 어두웠던 수평갱도 속으로 바닥에 20cm쯤 고인 차가운 물을 헤쳐가다 보니 인골이 돌무더기에 묻힌 채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현장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같은 유골 발견 사실과 주민 증언을 종합해 작성한 기사는 다음날 본보 1면 머릿기사로 게재됐고 이때부터 봇물처럼 터져나오기 시작한 유족들의 제보를 바탕으로 속보를 써나가면서 ´양민학살이 있었다´는 ´이야기´는 비로소 조금씩 ´사실´의 외형을 가지기 시작했다.
엄밀히 말해서 학살사건 소재 기사로 ´이달의 기자상´을 받는다는 것은 그 자체가 참 신기한 일이다. 개인적인 차원에서나마 상을 받는다고 기뻐하기에는 소재가 너무 끔찍하고, 특종이라고 하기에는 이에 대한 ´이야기´가 지난 세월 동안 너무나 무성했다. 오히려 학살사건을 소재로 한 기사가 50여 년이 지난 뒤에야 비중있게 다뤄질 만큼 우리 사회의 이데올로기 지형과 도덕성이 왜곡돼있었다고보는 것이 옳지 않을까.
이 글 첫머리에서 제기했던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마무리를 해야겠다. ´한국전 발발 직후 양민학살´은 아직 ´사실´이 되지 못했다. 이는 폐광산 내 인골이 지금도 쓸쓸히 내팽개쳐져 있고, 책임당사자인 정부와 국방부는 뒷짐만 지고 있으며 신문사로는 가끔 ´색깔 시비´를 제기하는 독자 편지나 전화가 접수된다는 것으로 확인된다. 그러나 권력이 반 세기 전 저지른 처참한 학살사건을 ´이야기´의 차원에서 ´사실´로 캐어올리는 일이 국내 인권상황을 개선시키는데 도움이 된다면 이 작업에 조금이라도 더 힘을 보탤 수 있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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