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호 특집]언론마당-나는 이렇게 본다

'위축된 저널리즘부터 되살려야'

"위축된 저널리즘부터 되살려야"



"광주지역 신문시장 이대론 위험...이제라도 '서로 다른' 지면 만들어야 활로 트인다





민형배

전남일보 경제부

기자광주지역신문노조연합 공동위원장



광주지역 언론계는 올해초 '일어나지 않았어야 하는' 사건 하나를 경험했다. 모 신문사의 프로야구 담당기자가 미국 비자를 받지 못한 것이다. 해태구단의 하와이 전지훈련을 취재하기 위해 비자를 신청했으나 불법체류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발급이 거부됐다. 3년차인 이 기자의 지난해 수입이 900만원에 못 미쳤기 때문이다.



이 충격적인 '사건'은 광주의 신문기자와 신문사가 어떤 상태인가를 설명하는 극적인 사례 가운데 하나다. 문제의 심각성은 그 기자의 경우에만 해당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근로자소득원천징수내역표를 근거로 살펴보면 광주의 모든 지방신문사에서 5∼6년차 편집부기자의 지난해 총수입은 900만원을 넘지 못한다. 또 10∼11년차 차장대우 연봉이 1천300만원에 미치지 못한다. 때문에 광주사회에서 신문기자들에게 급여수준을 묻는 것은 큰 실례가 된다. 그나마 정상적으로(?) 지급되는 경우가 그렇고, 모기업이 부도난 일부 신문사의 임금사정은 더욱 열악하다.







몰락하는 광주 기자사회



지난 한 해 광주지역 신문기자들은 말 그대로 혹독한 시련을 겪었다. 97년 늦가을 한국경제가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하에 놓인 이후 경영난을 이유로 모든 지방신문사들이 정상적인 임금지급을 하지 않았다. 기본급이 10∼20%씩 삭감됐고 600%이던 상여금은 전액 지급되지 않았다. 게다가 승호가 정지되고 연월차수당 지급과 자녀학자금보조가 중단됐으며 일부에서는 교통비와 당직비까지 사라져 버렸다. 실질임금 수준이 절반이하로 떨어진 것이다.



취재·제작여건이 열악해졌음은 물론이다. 취재차량이 대폭 줄어 자가용으로 대신하는 것은 다반사이고, 기초적인 통신수단이 기자들의 손에서 회수됐다. 출장비를 지급하지 않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기자인력이 대폭줄어 노동강도는 이전보다 두배가량 높아졌다. 지면이 28면에서 16면으로 줄긴 했지만, 96년말 250∼300여 명이던 주요 지방신문사 인력이 지난해 말 130∼180명으로 줄었다는 사실에서 노동강도의 심화는 쉬이 짐작된다. 무급휴직 중 임금을 받지 못한채 근무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게다가 일부신문사에서는광고영업, 신문판매에 기자들이 동원되기도 했다. 기자 본연의 일과 상관없이 이런쪽에서 능력(?)을 발휘하는 기자들에게 특혜를 주겠다는 방침이 공공연하게 흘러나왔다. '기자사회가 무너져내렸다'는 표현은 결코 과장된 것이 아니다. 이런 기자사회의 몰락현상은 99년에도 계속되고 있다.



광주지역 기자사회의 몰락은 그 자체로서도 문제지만 지면의 파행과 지역사회 커뮤니케이션의 왜곡을 초래한다는 점에서 심각한 양상으로 전개될 위험성이 높다. 지난해 10월 언론개혁광주시민연대 창립기념토론회에서 발표된 지면분석 결과는 이런 문제점을 잘 드러내 준다. 지방신문의 외형적 지면구성에서 신문간 차별성이 거의 없어지고 뉴스의 획일화가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저널리즘 기능의 전반적인 위축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는 지적이었다. 지역사회의 쟁점현안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는 문제제기자로서 언론의 역할과 문제해결 방향제시자로서 언론의 기능이 크게 위축된 것이다. 기자들의 생활과 신문제작의 기초적 여건이 갖춰지지 않는 상태에서 지방신문의 정상적인 저널리즘기능을 기대할 수 없었다는 얘기다.







암울한 지방지 독자시장



광주지역 기자사회의 이같은 몰락은 어디서 비롯되는가. 표면적으로는 신문사의 경영악화가 직접적인 원인인 것처럼 보인다. 광주 지방신문사들은 지난 수년동안 해마다 수십억원씩의 적자를 경험했다. 각사의 재무제표에 대한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광주일보, 전남일보, 무등일보, 광주매일 등 주요 지방신문사들의 95∼97년 사이 누적적자가 64억∼170억원에 이른다. 년간 매출액이 100억∼200억원 수준인 신문사들이 이만한 적자를 냈다면 경영형편을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98년에는 이들 신문사들이 인력을 대폭 감축하고 발행부수를 크게 줄이는 등 초긴축경영에 나서 17억∼40억원 대로 적자폭이 줄었으며, 일부 회사는 자산재평가와 사주의 출자 등을 통해 당기순이익 흑자로 나타난 사례도 있다. 물론 기자들과 신문지면이 긴축경영의 부담을 고스란히 떠맡은 결과라 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도 광주지역의 지방신문은 넘쳐난다. 모두 9개이다. 지방신문사 소유가 어떤 의미함축이 있는지를 논외로 한다면 문제의 본질은 바로 시장의 구조적 취약성에서 비롯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단순비교로 인구규모가 2∼3배인 대구와 부산의지방신문수가 훨씬적다는 사실에서 시장상황에 구조적 문제가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지역신문시장은 지방신문의 존재양식을 규정하는 본질적인 조건 가운데 하나이다.



이런 관점에서 광주지역 신문구독자시장을 들여다 보면 몇가지 특징이 나타난다. 먼저, 지난 94년께 부터 시작된 중앙지의 강력한 지역시장 공략으로 지방지의 절대독자수가 큰 폭으로 감소했으며, 상대적인 시장점유율 역시 갈수록 낮아지고 있는 추세를 보인다. 더불어 개별 신문의 시장점유율도 급격한 하락을 경험하고 있다. 이는 경쟁력 있는 지방신문이 없다는 사실의 구체적 표현이라 할 수 있다. 각종 조사자료를 토대로 살펴보면 지난 92년 지방지 시장점유율은 54%, 중앙지는 43%이던 것이 94년에는 41%와 53%로 역전됐다. 이후 97년까지 지방지시장점유율은 34.6%, 29.9%, 28.7%까지 계속 떨어지고 있다. 반면 중앙지는 96년 65.3%로 확대되고, 이후 70%, 72.3%로 계속 늘고 있는 양상이다. 이런 경향은 지난 4월 전남대 언론홍보연구소 조사결과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났다. 중앙지의 시장점유율이 65%, 지방지는 35%에 그친 것이다. 부산이나 대구지역과는 대조적인 신문시장의 지역적 특수성 가운데 하나라 할 수 있다.



다음으로, 이같은 상황속에서 지역신문시장의 확대가 이뤄지지 않고 있으며, 지방지 시장의 주요 변수라 할 병독독자수도 거의 변화가 없다. 전체가구의 신문구독률이 70%대에 고정돼 있고, 복수 구독 가구도 큰 변화가 없다. 이는 시장규모는 확대되지 않고 있는데 비해 중앙지의 공략이 일정정도 성공을 거두고 있으며, 지방지의 발행이 상대적으로 많아짐으로써 나타나는 구독자 분산 양상을 반영한 것이다. 따라서 구독률과 구독 부수의 확대가 이뤄지지 않는 상황에서 지방지의 상대적 위축은 불가피하며, 이는 지방신문의 경쟁력이 시장상황에 의해 근본적으로 제한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셋째, 병독패턴에 변화가 없는 상태에서 그 절대비율이 낮다는 사실도 지방지의 시장 확보 가능성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다.



결국 독자시장 상황에 근거해 판단한다면 지방지의 경쟁력은 급격히 떨어졌고, 현재상태에서는 개선될 여지가 별로 없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이는 지방신문사의 미래가 어떠할 것인지를 암시하는 대목이다. 또 어떻게 재편돼야 하는지를 가늠케 한다.







경영위기가 지면파행으로



시장에서 실패와경영위기의 인과관계를명확히 밝히는데는 어려움이 있지만 현단계에서 분명한 사실은 잠복돼 있던 시장의 구조적 한계가 경제위기를 맞아 현실에서 지방신문의 경영위기로 구체화하고 있으며 이것이 기자들의 고통부담과 지면의 파행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그동안 광주지역 지방신문들이 타겟시장의 확보 등 마켓팅 전략 도입에 소극적이었고 따라서 신문의 내용과 체제의 변화 없이 관행적인 제작과 판매방식을 고집해왔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경영위기 타개방안으로 광주지역 지방신문사들이 감량경영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나 IMF 관리체제 이전에도 대규모 경영적자를 면치 못했던 사실을 감안할 때 시장상황의 구조적인 압력은 본질적인 문제로 남게 될 것이고, 이 경우 광주지역에서 기존 형태의 지방신문이 다수 존재하기는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가능하다. 결국 시장의 특수성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독자시장에서 일정한 시장점유율이 확보돼야 광고시장에서도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면 지방신문의 독자 흡인요인 창출은 가장 우선적인 과제인 것이다. 지방신문사의 기업성 확보는 역설적이게도 감량경영을 통한 기업적 이윤추구가 아니라 시장 경쟁력을 높일 독자 흡인요인의 개발이라는 저널리즘 기능의 확대로부터 그 단초가 주어질 수 있다. 이것이 추락한 기자들의 위상을 재정립하고 파행으로 치닫고 있는 지면을 정상화하는 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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