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주장] 스스로 못하면, 변화는 강제된다

돌이켜보면 김영삼 정권 시절부터가 아닌가 싶다. 일부 언론이 대통령 선거 이전부터 시작해 선거가 진행되는 내내 ‘YS 정권 만들기’에 깊숙이 개입했고, YS 당선 이후엔 보란 듯이 정권 실세들과의 밀월 관계를 과시했다. 비교적 점잖았던 다른 언론사들도 집권 이후 계속되는 밀월 관계를 보면서 ‘한 발 늦었다’는 생각을 했는지도 모른다. 언론사들의 정치 개입은 이후 급속히 도를 더해갔다.

이번 선거를 보면, 언론의 정치 개입이 이제는 거의 갈 데까지 갔다는 느낌이 든다. 선거란 정당과 정당이 권력 쟁탈을 하는 판이거늘 이번 선거는 그 사이에 언론이 깊숙이 개입해 양상이 훨씬 더 복잡하다. 정당과 언론 사이에 주먹질이나 다름없는 비방이 오가는가 하면 언론과 언론끼리도 날을 세운 언도(言刀)의 부딪힘이 무서울 정도다. 정파적 이해에 의해 사실이 왜곡되고 가십 기사가 어느 순간에 톱기사로 모습을 바꾼다. 도대체 보도의 어디까지가 언론이고 어디부터가 정치인지 알 수 없을 때가 많다.

대중을 상대로 글을 쓴다는 것, 말을 한다는 것 자체가 어느 정도는 정치적일 수 있다. 본질적으로 언론 행위는 정치 행위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똑같은 사안을 놓고 기자마다, 언론사마다 견해가 다를 수도 있다. 하지만 역시 어느 정도냐의 문제다. 정당과 언론이 같을 수는 없다.

정치적 선전 선동이 대중들에게 미치는 영향력에는 한계가 있다. 대중들은 정치인들이 하는 말을 액면 그대로 믿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정치인들은 언론을 이용하고자 한다. 정치인들이 하는 말이라도 언론이라는 여과의 틀을 거친다면 대중들에게 훨씬 수월하게 먹혀들기 때문이다. 이는 대중이 정치인보다는 언론을 신뢰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언론에게는 정치인들의 주장과 선전을 여과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러나 지금, 17대 총선 보도를 보면 부끄럽고 부끄럽다. 정치권의 이해관계가 얽힌 주장들을 따지고 살피기는커녕 일부 언론이 먼저 나서 ‘미운 놈’과 ‘고운 놈’을 나눴고, 그 분류에 따라 보도의 기준은 널을 뛰듯 오락가락했다. 정책과 공약을 비교하고, 깊이 있는 분석을 시도한 기사들도 많았으나, 각 정당 간에 큰 차이를 보이지 못하는 정책 때문에 빛을 보지 못했고, 무엇보다 탄핵을 중심으로 극단으로 대립한 이번 선거의 구도가 이 모든 값진 시도들을 가려버렸다.

이 때문인지 이번 총선 보도에서는 진보적성향의 신문과 일부 방송까지 대결 구도의 광풍에 휩쓸려 왜곡 보도와 편파 방송 시비에 시달렸다. 물론 더 큰 문제는 여전히, 일부 보수적 성향의 신문이다. 지금 당장 아무 날짜의 신문을 펼쳐보더라도 이 신문이 어느 후보를 좋아하고 어떤 후보를 싫어하는지 금방 알 수 있을 정도다. 그들은 이번 총선 뿐 아니라 훨씬 오래 전부터 정치를 쥐락펴락하고자 했다. 하도 오래 동안 반복되는 시도에 이제는 비평가들조차 지쳐 펜을 놓았을 뿐 달라진 건 없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독자이자 시청자인 유권자들이 ‘정치 언론인’들의 요설의 영향력에서 벗어날 가능성을 내비쳤다는 것이다. 우리는 탄핵 정국에서, 이어진 촛불집회에서 그런 희망의 불씨를 보았다. 안타깝게도 언론이 스스로 변하지 못한다면, 변화는 강제될 수밖에 없다. 우리의 주장의 전체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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