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 튀기는 뉴스.’
한 방송사 기자가 자사의 메인 뉴스 프로그램을 지칭하면서 내 뱉은 말이다. 어제 오늘의 일도 아니지만, 최근 들어 방송뉴스는 더욱 더 엽기적이고 선정적인 내용들로 채워지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온 식구들이 함께 보기에는 화면이 너무 끔찍하거나 민망하다는 반응도 적지 않다. 영화라면 미성년자 관람 불가 등급이었을 화면들이 버젓이 안방으로 쏟아져 들어오고 있는 것이다.
각 방송사 메인 뉴스의 사건?사고 기사 편향 정도는 최근 들어 그 한계수위를 넘어서고 있다는 것이 많은 현장 기자들의 의견이다. 보통 하루에 2~5개씩 편집되던 사건?사고 뉴스가 최근에는 보통 6개 이상, 많으면 10개 가까이 메인 뉴스에 편집되고 있다. 32면 발행 신문으로 치자면 8~12개 면이 사건?사고 기사로 채워지는 셈이다.
잔인한 범행 현장이 찍힌 CCTV 화면도 아무런 여과 없이 전파를 타고 있다. 얼마 전에는 아파트 승강기 안에서 강도가 여성을 둔기로 마구 내리치는 장면이 방송되는 등 그 예는 수 도 없이 많다.
낯 뜨거운 아이템들도 홍수를 이룬다.
‘너도나도 누드집’, ‘부부 스와핑’ 등의 선정적 아이템들이 메인뉴스 시간에 방송됐다. 우리 사회의 비뚤어진 성문화 등을 비판하기 위한 보도라고 해명하지만, 시청률을 의식한 얄팍한 계산에 따른 편집이라는 시각도 상존하고 있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각 방송사가 한정된 방송 시간에 맞춰 일회적인 사건?사고 기사를 남발하고 선정적인 기사를 끼워 넣으면서 시청률 경쟁에 골몰할 때, 정작 방송되어야 하는 중요한 기사들이 자꾸 외면 받을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우리 사회는 지금 산적한 현안들에 둘러싸여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정치 개혁, 이라크 파병, 부안 핵폐기장 사태, 경기 침체 등 우리 사회가 직면한 문제들은 썩어 곪아터지고 있는데 이에 대한 깊이 있는 보도는 찾아보기 힘들다.
“시청자들은 이런 사태들의 근본 원인을 정확히 짚어내고, 공감할 수 있는 해결책을 제시하는 방송보도를 고대하고 있지만 정작 방송사들은 그 기대를 철저히 저버리고 있다.”는 한 젊은 방송기자의 울분은 공감되는 바 크다. 특히 비정규직 노동자 증가 문제, 외국인 노동자 강제 출국 문제 등에 대해서는 방송사가 의도적으로 외면하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정도라는 것이다.
방송사의 선정적인 보도 경쟁은 ‘안 해도될 보도의 양산과 반드시 했었어야 할 보도의 생략 또는 축소’라는 형태로 나타난다. 이는 결국 방송 뉴스의 하향 평준화로 귀결되고 만다. 시청자들이 당장은 말초적인 보도에 귀 기울일 수도 있겠지만, 방송 뉴스에 대한 이미지와 신뢰도 하락은 피할 수 없다.
방송뉴스에 대한 시청자의 의존도가 언제나 높을 것이라고 믿는 것은 일종의 착각이다. 산적한 현안들에 대한 과감하고 현장감 있는 보도를 통해 신뢰를 쌓아가고 있는 몇몇 인터넷 뉴스가 좋은 반증이다. 이런 변화된 환경에서 무엇이 진정 방송뉴스를 살리는 길인지 방송 관계자들은 다시 한번 생각해 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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