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 하수인으로, 거짓말쟁이로 매도•••
"그래도 흔들리지 않을 겁니다"
지난 10일 저녁 7시경 프레스센터에 도착한 스포츠조선 5명의 여성조합원들은 하늘을 쳐다보며 비가 그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종일 내리던 부슬비가 다행히도 멎자 이들은 다시 프레스센터 앞 맨바닥에 깔판을 깔고 침낭을 폈다. 이날로 27일째를 맞는 이들의 철야노숙농성은 비가 그친뒤 불어닥친 차가운 가을바람과 함께 시작됐다.
이들은 지난달 14일부터 프레스센터 앞에서 철야농성을 벌이고 있다. 5명중 3명이 기혼이지만 퇴근과 동시에 태평로로 달려와 하루도 빠짐없이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스포츠조선 사태는 지난 6월 회식자리에서 당시 제작국장이 임신중인 정 모 여사원에게 “(술은)뱃속에서부터 배워 나와야 한다”며 술을 강권했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불거졌다. 이후 다른 여사원인 서 모씨 역시 7월에 노래방에서 어깨위에 손을 올리고 허리를 감싸는 등의 성희롱을 당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같은 사실은 노조의 문제제기와 사태 해결을 위한 언론노조의 개입으로 인해 세상에 알려지게 됐으나 스포츠조선은 사건 자체를 부정하고 있다. 언론노조는 아예 올해 말일까지 집회신고서를 내 매일 오후 조선일보사 앞에서 사태해결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고 있으며 무기한 철야농성도 진행시키고 있다.
정씨는 “회사는 우리를 노조의 하수인으로, 거짓말쟁이들로, 회사의 명예에 먹칠하는 해사행위자들로 매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측과의 갈등속에 조산위기를 넘기며 지난달 2일 둘째 아이를 출산한 정씨는 몸을 풀 겨를도 없이 농성장에 합류했다.
그러나 피해사실 공개라는 어려운 결정을 내린 이들에게 돌아온 건 당사자들의 발뺌과 검찰에서 날라온 소장뿐이었다. 서씨는 “사과는 커녕 가해자로 지목된 전 제작국장은 물론 차장단 부장단 등이 사원들의 연대서명을 받아 우리를 비난하는 대자보를 수십장 내붙였다. 사측의 압력으로 인해 사내에서 우리를 왕따시키는 분위기가 농후하다”고 말했다.
이들이 프레스센터 앞으로 투쟁공간을 이동한 뒤에는 더욱 기막힌 일이 벌어졌다.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들이 되레 이들을 대상으로 거액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낸 것. 이들은 지난 17일 각 5000만원씩의 손해배상청구 소장을 받아들고는 결국 눈물을 떨굴 수밖에 없었다. “가해자가 원고가 되고피해자가 피고가 돼있는 소장을 받아들었을 땐 그 뻔뻔함에 눈물밖에 나지 않았습니다. 적반하장도 어느 정도죠. 처음 사건이 발생했을때 회사가 우리의 말을 조금만이라도 들어줬다면 이렇게 억울하지는 않을 겁니다” 원고들은 “제작국 고참 여사원”이라는 이유로 이번 사건과 아무 관계없는 김모씨를 피고명단에 포함시키기도 했다.
“흔들리지 않을 겁니다. 얼굴 한번 본 적없는 다른 지부 조합원들이 매일 격려방문을 오는 것에도 힘이 나지만 진실을 밝혀지게 마련임을 믿고 있기 때문이죠”
이들은 금명간 결과가 나올 노동부 진정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성희롱 사건에 대해 정씨와 서씨가 진정서를 제출했고 두 사람은 지난 주 피해자 조사를 마쳤다. “뜻밖의 결과가 나오리라는 예상은 전혀 하지 않고 있다”는 정씨는 다시금 눈을 붉히며 말했다.
“저희는 10년 가까이 일했던 사람들입니다. 누구보다 애사심이 높고 회사를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회사가 계속 대화를 거부한다면 우리는 한겨울에도 또 해를 넘겨서도 농성을 계속할 수 밖에 없습니다.”
전관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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