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습교육 받으면서 하루도 술을 먹지 않고 들어간 날이 없다. 그중 대부분은 폭탄주를 먹었다. 그런데 술값은 캡이 어디서 ‘봉’을 잡아와 그 사람이 냈다”
지난달 8일 열린 언론인 윤리의식 확립 토론회에 참석한 한 기자가 전 직장에서 지낸 수습시절을 돌아보며 고백했던 얘기다. 이 기자는 “경찰청 캡이 정말 위대해 보였다”는 말을 덧붙였다. 이런 경험은 비단 이 기자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기자 윤리의식에 대한 비판에는 늘 이 같은 ‘스폰서 문화’가 존재한다.
지난해 겨울 한 신문사에 입사한 k기자는 수습딱지를 떼는 기념으로 부장이 마련한 회식자리에 참석했다. 간단한 저녁식사를 마친 뒤 이동한 술집에서는 어김없이 폭탄주가 돌았다. “술기운이 적당히 오를때 쯤 처음 보는 사람이 술집에 도착했다. 대충 인사해 그냥 부장 친구려니 했는데 그 사람이 카드로 우리 술값을 계산했다. 나중에 선배한테 물어보니 ‘부장 스폰서’라고 말해 그때 처음 스폰서라는 개념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영수증을 가져다가 술값대납을 강요하기도 했다는 과거 기자들의 얘기가 전해지지만 요즘도 역시 이같은 스폰서문화가 이어지고 있는 게 사실이다. 처음엔 그저 단순한 취재원 중의 한 사람이 스폰서의 관계로 맺어지는 것은 보통 ‘계기’가 있어서다.
경기지역 모 일간지 부장은 “보통 기자들과 관계를 맺는 스폰서는 건설업자들이다. 인허가 과정에서 기자들이 뒤를 봐주고 일이 잘 성사되면 업자들은 광고와 스폰서로 감사의 표시를 하는 식”이라고 말했다. 이 부장은 “최근에 스폰서 건설현장의 뒤를 봐주는 대신 현금으로 1000만원 받았다는 한 기자의 얘기를 듣고 씁쓸했다”고 말했다. 이 부장은 “이런 관계가 지속되면서 업자가 망하지 않는 이상 기자들은 계속해서 도움을 받게 되고 부서회식 등 술판이 커질때면 호출을 받고 와서 계산하곤 한다”면서 “일부 기자들은 이런 스폰서문화를 하나의 과시욕을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문제는 기자와 스폰서 모두 아무런 죄책감과 문제의식이 없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업자가 먼저 기자들에게 손을 내미는 경우도 있다. 지난 10월 중순 한 일간지 기자는 건설관련 기사를 쓴 지 며칠 안돼 한 업체 상무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그 기업에 유리한 기사였다. 이 기자는 “만나자마자 반색하며 구독 50부를 해주더니 이후 스폰서를 하겠다고자청했다. 솔직히 흔들렸지만 정중히 거절하고 나왔다”면서 “기자를 하면서 가장 좋지 않은 기억으로 남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스폰서 문화와 관련 가장 문제시 되는게 이같은 방식으로 서로의 이해관계가 형성유지되는데 있다. 서로의 이해를 충족시키기 위해 스폰서와 기자는 서로에게 ‘보험’ 내지는 ‘투자’라는 개념을 가지고 있다. 때문에 기자윤리와 맞물려 이같은 고리를 끊고 언론계내에 스폰서 라문화를 퇴출시켜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한 지역일간지 차장은 “좋지 않은 계기로 만들어진 관계인 만큼 기자와 스폰서가 함께 망신을 당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면서 “기자들이 업자들의 돈으로 술을 먹고 향응을 받는 시대는 지났다”고 말했다. 한 일간지 기자 역시 “공짜점심은 없다. 스폰서와 기자는 서로 손벌리는 관계여서 반드시 언론의 힘을 요구하려 할 것”이라면서 “촌지는 안되고 스폰서는 된다는 언론계 내의 개념도 큰 문제”라고 말했다.
전관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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